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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관희 Nov 11. 2020

사랑의 매

 떠올려 보면 나는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따뜻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피땀 흘려 열심히 장사하신 덕분에 크게 부족함도 없었다. 부모님은 철없는 아이, 나쁜 길로 들어설 때마다 옳은 길을 열어주셨고 적절히 매도 들 줄 아셨다. 정해진 막대기로 잘못한 만큼의 매를 맞고는 엉엉 우는 나를 포근히 안아주시곤 했다.     

 

 중학교 시절에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가난이라는 파도는 쌓아 올린 행복을 무너뜨리고 평화를 휩쓸어 가족의 시간을 삼켜버렸다. 친한 지인에게 꾸어준 수 천만 원, 무턱대고 사버렸던 집의 잔금과 이자, 거기에 맞물려버린 일수대출로 우리 가족은 어느새 바퀴벌레가 득실대는 축축한 어느 집 쪽문 딸린 곳에 살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안은 웃음소리 대신 잦은 다툼과 어머니의 울음소리만이 떠다녔고, 그마저도 들리지 않을 때는 지쳐 잠든 공허한 밤들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흘렀다.

 그 시절 나는 자그마한 행복이 하나 있었다. 등하교 차비를 이틀 삼일 모아 PC방에서 보내는 한 시간. 꿀맛 같은 한 시간이 끝나면 돈 많은 친구가 게임하는 옆자리에 앉아 구경하며 여운을 이어가곤 했다.     

 

 어느 날 밤이었다. 녹초가 되어 잠드신 부모님 옆에 돈주머니로 사용하는 앞치마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생선 비린내와 부모님의 땀 냄새가 밴 앞치마. 어스레한 불빛 사이로 앞치마 속의 은빛 동전들과 알록달록한 지폐들이 반짝였다.

 오랜 고민 끝에 500원짜리 2개를 조심스레 집어 들고는 행복한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다음날은 빨간 지폐, 그다음 날은 노란 지폐, 그다음 날은 푸른 지폐. 죄책감보다는 조바심이 컸었고, 조바심보다는 다음날을 꿈꾸게 만드는 기대감에 설렜다.

 

 그런 나날들이 얼마나 지났을까. 뻘건 대낮에 장사를 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집에 오셨다. 항상 지쳐 잠드신 얼굴이 익숙했는지 밝은 날의 아버지의 얼굴은 상당히 낯설었다.


“우리 얘기 좀 하자”


순간 숨이 덜컥 멎어버렸다. ‘아 걸렸구나!’ 초등학교 때 학교 숙제를 안 하고는 다 했다고 끝까지 거짓말을 치다가 매를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매를 맞겠구나, 매를 마지막으로 맞은 적이 언제였지? 무엇으로 맞을까? 여기 매로 만들 만한 물건이 뭐가 있을까? 아프겠지?’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리 와서 여기 앉아봐라” 나는 멍하니 땅바닥만 응시한 채 조심스럽게 앉았다.

 “앞치마에 돈이 사라지는 것을 알고 있어, 네가 가져간 것 맞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인 채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는 그 길고도 짧은 순간의 정적을 깨는 아버지의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아빠가 미안하다.”     

 

 나는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고개를 살며시 들어 힐끗 아버지를 보았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들. 너는 잘못한 게 없단다. 모두 아빠의 잘못이지. 가난 때문에 착한 아들이 돈에 욕심내게 만들어서 미안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가장 중요한 시기임에도 신경 써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예전처럼 오붓하게 밥 한 끼 먹을 시간도 못 내서 아빠가 진심으로 미안하구나.”

 

 어느새 눈물이 내 눈시울을 적셔 슬픔이 서려있는 아버지의 옅은 미소가 점점 희미하게 번져갔다.

 

“아들 얼굴 마주 보면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 이 집 마음에 안 들지? 아빠가 돈 열심히 벌고 있으니까 빨리 좋은 집으로 이사 가자.”


 결국 나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한없이 울었다. 아버지는 어린애처럼 울면서 제대로 말도 못 하는 나를 살며시 안아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다 괜찮다. 괜찮아.” 어렸을 적 매를 드시고는 엉엉 우는 나를 안아주셨던 그때 그 사랑과 포근함이 느껴졌다.     

 

 삶을 살아오면서 옳지 못한 수많은 욕심들과 상황들을 마주칠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날이 떠올랐다. 그럴 때면 가장 쓰라리고 따뜻했던 그 시절 아버지의 미소가 나의 가슴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빛이 밝혀 주는 길을 따라서 걸어왔고 앞으로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던 아버지의 사랑, 그 사랑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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