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관희 Nov 16. 2020

당신이 존경하는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존경이라는 감정이 존재한다. 주로 이 감정의 대상은 부모님 아니면 스승이거나, 어떠한 특정분야의 권위자, 혹은 발군의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이처럼 누군가로부터 존경이라는 감정을 끄집어내려면 자신을 우러러보게끔 만드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교사상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친구나 손아래 사람에게 존경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윗사람이라 해도 존경을 표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만약 누군가를 존경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존경합니다.”라고 표현할 자신이 있는가. 상상만으로는 쉬워 보일지 몰라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실천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존경이란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다분히도 점잖고 엄숙하며 경건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부모님을 존경한다. 나에게 영향을 주는 작가들이나 철학자들, 그리고 뮤지션들을 존경한다. 이외에도 존경을 표하고 싶은 사람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부모님을 포함한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존경을 드러낸 적은 없다. 존경을 표현하는 것은 마치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만큼이나 부끄러운 일이니까. 한데 그런 나에게 언젠가 친한 친구가 존경을 고백한 일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물론 정신이 똑바로 박혀있는 친구이다.     

 

 우리는 단골 횟집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술잔을 기울였다. 당시 나는 마치 프로이트의 수제자쯤은 되는 것 마냥 인간 심리에 관해 떠들어 댔다. 즐거웠다. 그 분위기는 내가 딱 좋아하는 진지함 속에 애정이 섞여있는 분위기였다. 아무튼 우리는 그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고 내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 짓던 친구가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건넸다.     


“난 너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 새끼가 술이 취했나’ 한 달에 두어 번은 술자리를 갖는 친한 친구의 고백이었다.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아니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인데, 너 술 취했냐고, 나 따위한테 무슨 존경이 어울리느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친구는 머쓱해하면서도 진지하게 말했다.     


“언제가 한 번쯤은 말하고 싶었는데, 그게 오늘 인가 봐.”     

 

 그리고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들을 나열하기 시작했지만 내 귀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다소 벅차고 붕 뜬 마음을 붙잡고 “에이, 내가 무슨, 아니야”라고만 기계처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나에게 호의적인 친구였고 그 친구의 직장 스트레스 이야기도 들어주고 했다지만, 그건 서로가 매한가지 아니었나.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끼면서도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전쟁 영화 속 나라를 구한 주인공이나 팬들에게 사랑받는 연예인들이 느끼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낯부끄러웠던 그날, 내 마음은 눈앞에 놓여있던 붉은 방어회만큼이나 빨갛게 물들었다.


 횟집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러 가지 상념들이 나를 휘저었다. 내가 진정 존경스러운 행동을 했는지, 존경받을 만한 사람인지, 와 같은 생각도 그 일부분에 해당되었지만 그보다는 ‘내가 참 멋있는 친구 놈을 두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관통했다. 나에게 용기를 내어 존경을 표현한 내 친구가 너무나도 멋있고 존경스러워 나도 그놈처럼 누군가에게 존경을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존경이라는 표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도 쉽게는 못하는 일이다. 영어로는 단지 respect일 뿐인데 그 표현이 왜 그리도 어려운 건지.


 이 세상을 도덕적 가치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러한 사람들, 혹은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지위나 권위, 명예 따위를 불문하고 누구나 마땅히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때문에 존경이라는, 이 무겁고도 고상한 개념의 진입장벽을 조금은 낮춰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쓸데없는 자존심은 버리고 서로가 자유롭게, 그리고 진솔하게 존경을 표현하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친구는 나에게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일깨워 주기 위해 일부러 존경을 표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하고, 한 사람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서로의 마음에 따뜻한 불씨를 넣어 주는 방법을.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유명한 광고가 있는데 사실 말하지 않으면 잘 모른다. 지레짐작할 뿐이지. 그래서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존경한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우리는 누구나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전 08화 가벼운 글의 매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