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걸어 나가야 한다.
당신에게 있어 삶을 정의할 수 있는 한 가지 단어는 무엇입니까? 사랑, 일, 행복, 경쟁, 그 무엇도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의하는 삶이란 '의연함'입니다. 공교롭게도 매섭게 불어오는 불행의 바람에도, 그 바람이 멈추었을 때 느껴지는 꽃내음에도 우리는 멈춰 서지 않고 걸어 나가야만 하니까요.
제가 직장을 그만둔 후, 상당히 큰 심적 위기가 찾아왔었습니다. 생사의 경계가 한없이 희미해 보이고, 죽는다는 것의 의미가 한없이 가벼워 보였습니다. 이것은 물론, 어릴 때부터 만성적인 우울증을 지니고 살아온 저로써는 특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걸음을 포기하고 눈을 가린다는 것입니다.
눈을 가린다는 것은, 올바른 길을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조금씩 나아가면 될 것을, 외줄을 타야 하는 지름길을 택하거나 히치하이킹을 바라게 됩니다. 그것이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드뭄에도 불구하고요.
이렇게 걸음을 멈추는 것이 왜 위험할까요?
바로 포기에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걷는 것에 아무 의미를 찾지 못해 멈춰버리는 순간, 그 관성은 져버리고 다시 걸을 의지가 바닥나게 됩니다. 그러나 가만히 서서 뒤쳐지기는 싫으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지름길을 찾거나 요행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설령 인생을 내건 도박이 될지라도요. 그 도박은 결국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 도박이 실패하더라도, 난 어차피 이미 실패했으니까 포기할 수 있어.
이 악순환의 고리는 안타깝게도 반복될 가능성이 99%입니다. 남은 티끌만큼의 여유가 바닥날 때까지 반복됩니다. 결국 가만히 서있으니만도 못하게, 100보, 1000보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적어도 제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모진 삶에도 굴하지 않는 '의연함'을 갖출 수 있을까요?
제가 찾은 정답은 '걸으면서 계속 주위를 둘러보는 것'입니다. 작은 행복들을 지속적으로 의식하는 것, 말로는 쉽지만 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비가 오는 날보다는 푸른 하늘이 개어있는 날이 더 많습니다. 친구들과 만나면 짜증 나는 날보다는 유쾌한 날이 더 많고요.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기차는 직진만 하여도 정신 차리고 보면 동쪽에, 서쪽에 있는데. 우리에게는 기차가 멈추지 않았다는 것만 중요합니다.
물론, 안 좋은 일이 더 적다 한들 그 체감 강도가 다른 것은 분명합니다. 이미 비가 내려 젖어버린 몸을 무엇으로 말릴 수 있을까요?
저는 비가 그친 직후, 비는 오지 않지만 젖어 있는 바닥과 풍겨오는 비 내음을 좋아합니다. 그 냄새를 맡으면 강렬한 꽃 향기를 맡은 것처럼 무언가 살아있음을 느끼거든요. 불행과 행운의 경계도 그렇게 느낄 수 있을 듯합니다. 불행 뒤에 바로 행운이 오지는 않지만, 불행이 떠나간 직후에 오는 그 고요보다 안도와 안락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심리학 도서 <굿 라이프(최인철, 2018)>에서는 이것을 '고요의 희열'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사람마다 작은 행복을 의식할 수 있는 대상은 모두 다르겠으나, 그 가짓수의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만지고 느낄 수 있는 행복이 가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의연함을 찾아 속도에 상관없이 앞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 무엇에도 내색하지 않고 걸어갈 힘을 항상 비축해놔야 합니다. 그 힘은 사소한 '의식(Consciousness)'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구면> : https://brunch.co.kr/@donping/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