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을 왜 그리 좋아하세요.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에만 몸을 맡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마철 빨래가 마르지 않아 화내지만 겨울철 빨래가 잘 말라 기뻐했던가요.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벌 받았다고 하지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상 받았다고 하던가요. 출근길 비가 쏟아지면 불쾌하지만 맑은 날에는 유쾌했던가요.
무엇이 이렇게 부정을 앞세우게 하였는지 그 단추는 궁금할 필요 없습니다. 이 현상에서 사소한 긍정을 낚아챌 순간을 그려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생각보다 부정보다 긍정의 순간이 지배적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와 반대로 생각하는 것이 어떨까요. 밖에 나갔을 때 태풍 같은 바람이 불지 않고 파란색 하늘이 보인다면. 보일러가 터지지 않고 따뜻한 물이 줄줄 나온다면. 휴대폰이 잘 고장 나지 않고 제 기능 다 해준다면. 죽을병 걸리지 않고 몸이 건사하다면. 목돈 나갈 일 없이 통장이 평화롭다면. 우리는 충분히 감사해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반성도 해야 하겠습니다. 왜 그리 긍정에 인색하였냐고. 왜 그리 부정을 사랑했느냐고. 그 순간만큼은 자책해도 됩니다. 스스로의 팔을 꼬집어도 됩니다.
도처에 깔려있는 긍정적인 일들을 알아채 주어야 합니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 (-) 라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0이 아니라 (+) 임을 의식해야 합니다. 0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장의 고요한 하늘을 쳐다보세요. 당신이 기뻐하기를 바라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 가혹합니다. 그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시겠습니까.
안 좋은 일은 순간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은 지속입니다. 안 좋은 일들은 시간이 지나 그라데이션으로 사라집니다. 그러나 좋은 일들은 우리가 알아주기만 하면 항상 우리 곁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가 단지 의식하지 못해 주고 그들의 기대를 저버렸을 뿐입니다.
저의 시 <구면>에서 쓴 표현을 빌려봅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반가울 수 있다면', '구면이지만 초면인 듯'. 모든 것은 구면일지라도, 적어도 우리의 지친 마음에게는 초면이어야 합니다. 그것들을 우리에게 다시 소개시켜주어야 합니다. 오늘 공기가 좋네. 바람이 선선하네. 해가 따뜻하네. 오늘도 힘차게 달리며 향한 결론은 역시 동일합니다.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구면> : https://brunch.co.kr/@donping/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