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의식하고 관리해야 한다.
제가 증권사에 재직하던 시절, 신입사원이었던 저에게 지점장님과, 지점을 총괄하는 부장님, 심지어 저의 팀장님까지 저와 마주칠 때마다 "별일 없어?" 하고 물으시곤 했습니다. 나중에 심각해진 우울증으로 인해 퇴사를 결정하며 위 세 분과 각각 면담했을 때, 놀랍게도 모두 같은 얘기를 하셨습니다.
"내가 '별일 없냐'고 물었던 건, 진성이 너한테만 물어본 거야. 어느새부턴가 얼굴색이 잿빛이어서 정말 무슨 일이 있는가 했어."
하며 말입니다. 세 분 모두 똑같이 말씀하시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그 말씀들의 의도는 위와 같았습니다. 퇴사 직전 동기들에게 물어보니, 정말 제 동기들은 한 번도 '별일 없냐'는 안부 인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여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점진적으로 커져가는 우울감이 얼굴에 드러났고, 세 분은 그 모습을 인생의 선배로써 쉽게 알아챈 것이었겠죠.
지금은 그 반대입니다. 친구를 만나도, 선배를 만나도, '얼굴이 폈다'는 말을 제일 먼저 듣습니다. 형식적인 인사치레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 저는 회사에 다니던 시절과는 완전히 상반된 감정으로 가득 차 있거든요.
저는 최근에서야 알아챘습니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의 내면은 가장 먼저 그 감정을 인식하고 외부로 표출해낸다는 것을 말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있으면 길을 거닐기만 해도 얼굴이 어둡고, 긍정적인 감정이 있으면 실수했을 때도 밝은 얼굴로 능청스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왜 스스로가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들에 인색할까요? 우울에 빠지면 그 우울에 온갖 집중을 더해 그 크기를 키우는 반면, 한 번씩 굴러들어 오는 행복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자 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아마 행복 다음에는 불행이 닥칠 가능성이 크다는 학습된 사고 때문이겠죠.
우리는 모든 감정들을 알아채 주고 인정해주며, 보듬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울감이든, 행복감이든 말입니다. 슬플 때 충분히 슬퍼해야 하고, 기쁠 때 충분히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것은 비로소 스스로의 내면과 친근감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 결과는 곧 밝은 빛의 얼굴을 불러낼 것이고, 그 밝은 에너지가 다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테니까요.
더불어 '내가 지금 기쁘구나.', '내가 지금 슬프구나.' 하며 감정을 알아채 주는 것은 그 감정들을 관리하는 데에 큰 효과를 가져옵니다. 그야말로 생각 속에 '빅 데이터'가 쌓이며, 지금 느끼는 감정의 정도와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테죠. 그로 인해 기쁨을 빙자한 충동적인 행위를 막으며 그저 순간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우울을 빙자한 극단적인 비관을 막으며 우울을 조금씩 덜어내고자 노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계좌의 입출금에는 그토록 민감하면서, 감정의 입출금에는 무딘 경향이 있습니다. 통장 정리하듯 감정도 정리하고 관리하는 습관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