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시하이야기
10.
운동회를 마치고 시하는 집으로 돌아왔다. 시하의 반은 전체 성적이 가장 높아 1등을 했다. 한아름 학용품 선물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그저 손만 무거울 뿐이다. 적어도 집에 돌아왔을 때, 부모님이 계시기를 바랬다. 예상대로 기대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구나. 시하가 씻고 나오자 할아버지는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나니 어느새 잠 잘 시간이 되었다. 몸이 고된만큼 눈꺼풀은 무거웠고 금방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시하는 눈을 떴고 침대 옆에는 아빠 엄마가 지그시 보고 있다. 그리고 스케치북에 “ 미안하다 시하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라는 글자가 쓰여있다. 부모님은 조심그럽고 긴장한 얼굴의 아들의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시하는 침대 옆에 있는 간이 메모장으로 손을 뻗어 글자를 써내려간다. 그리고 종이를 부모님이 볼 수 있도록 돌렸다. “ 시간이 필요해요. 기다려 주세요.” 아들이 적은 글에 부모님은 알겠다는 의미를 담아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시하네 집에만 있는 대화방식이다. 미안한 일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직접 으로 말하기 싫을 수도 있으니 이렇게 먼저 의사를 묻는 것. 그리고 어떠한 말이든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존중하는 것.
학교로 등교한 시하는 복잡하다.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서운한 것도 존재한다. 그리고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자 같은 반 친구인 영준이가 찾아와 물었다. 영준이와 시하는 같은 동네 친구이자 유치원 동기다. 사회생활을 같이 시작한 것도 있고 그의 부모님도 시하와 비슷하다. 그래서 통하는 부분이 많다. 쉬는 시간에 복도를 거닐면서 이런 저런 마음의 응어리를 털어내니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얼마전 영준이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긴 하지만 썩 내키지도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하교를 한 시하는 학원투어 중이다. 웬일인지 오늘은 빨리 마쳤다며 학원 앞으로 가도 괜찮겠냐는 부모님의 문자에 시하는 긍정의 답을 보냈다. 실제로 학원 밖에는 엄마 아빠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집까지 걸어가며 서로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사람 모두 하루를 살아내느라 얼굴에 고됨이 묻어있지만 함박웃음은 가득하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취침 준비를 끝낸 시하는 메모장에 글을 쓴다. 그리고 거실에 놓인 가족 칠판에 자석과 함께 붙였다. 다음날 아침, 아들의 글을 확인한 부모님은 웃으며 시하의 방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