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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Jan 10. 2024

평범함, 그 무거움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을 읽고

제목이 기억나진 않지만 어떤 글쓰기 관련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그 책의 저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매일을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하루에 3권씩 그렇게 1년에 1,000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글을 냈다.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고 여전히 매일 직장으로 출퇴근한다. '하루에 3권은 힘들어도 한 달에 3권씩 읽어야지!'라고 했던 다짐도 지키기 힘든 다짐이었다. 그래서 2024년 신년엔 한 달에 2권 읽기로 목표를 조정했다.






그중 1권, <편의점 인간_ 무라타 사야카>


소설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는 '보통 인간'을 흉내 내며 매일을 살아간다.


모태솔로에 대학 졸업 후 취직 한 번 못 해보고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서른여섯 살의 주인공


책은 게이코를 이렇게 정의한다.



서른 여섯, 나에게 멀지 않은 나이다.

스물의 나는 막연히 드라마에 나오는 젊은 나이에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사는 젊은 실장을 보며, 이십 대 후반 즈음의 나도 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삶을 살 줄 알았다. 스물 여덟이 되면 스포츠카를 타고는 뻥 뚫린 직선도로를 달리다 빨간불에 멈춰 서고는 창문을 내려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켜는 나를 상상했다. 뜨거운 태양이 반사되어 비치는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길가에 늘어선 상록수의 녹음을 감상하는 나.

철이 없었다. 현실 감각이 지나치게도 모자랐다. 스물 여덟에 밤마다 울며 매일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했고, 운전은 무서워서 하지도 못했다.



게이코는 확실히 '보통 인간'이 아니긴하다. 사회에서 정의하는 '보통'에 들어가려면 남들과 비슷한 루트를 따라야 했다.

어린이집, 초, 중, 고를 거치는 유년기, 청소년기를 거쳐 스무살에 접어들면 대학에 갈지 취직을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보통'에 속하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는 삶을 택했다면 이십 대 중후반이 되면 취직하는 삶을 따라야 했고, 거기서 벗어나면 역시 '보통'은 아니었다. 서른이 되면 사귀는 사람은 있냐, 결혼은 언제 하냐라는 질문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서른 초중반엔 결혼.

그나마 요즘에는 비혼주의가 늘고 결혼 나이대 자체가 늦어지다 보니 수용이 조금 유해지긴 했지만 그 역시 '보통의 범위'가 넓어진 것뿐이지 '보통의 기준'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결혼하지 않는 삶을 택해도 이상하게 보거나 나와 다름으로 간주하는 시선은 적어졌지만, 여전히 왜 결혼을 안 해? 왜 혼자 사는 게 좋아?라는 질문을 받아야 할 거다. 결혼을 했다면 아이를 가져야 하고, 은퇴하는 오십 혹은 육십 대까지 직장을 다녀야 하며, 그 후에는 자식들을 결혼시켜야 한다. 그게 '보통'의 삶이다.



이 어떤 '보통의 기준'에도 게이코는 속하지 못한다. 원인은 감정이다. 게이코에게는 '보통 인간의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 남들이 새가 죽어서 안타까워하며 묻어주려고 할 때 게이코는 구워 먹자고 하고 주위에서 남자아이들 싸움을 말리라고 하자 삽을 들어 싸우는 아이를 후려친다. 게이코는 태어날 때부터 '보통'에 속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게이코에게는 '보통의 기준점'이 필요했다. 남들의 말투, 단어를 따라서 말했으며, 30대 보통 여자인 편의점 동료가 입는 옷, 신발, 가방을 따라 산다. 그런 게이코에게 편의점은 정해진 '매뉴얼'대로만 일하면 '보통'이 아님을 들키지 않는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였다. '점원'이라는 균등한 존재로 사회에 속할 수 있는 유일한 곳.



하지만 결국 사회의 시선에 굴복한 게이코는 남자와 동거도 시작하고 편의점을 떠나 취직을 준비한다. 하지만 면접장으로 향하는 길, 게이코에게 편의점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편의점을 향한다. 편의점과 몸은 떨어져 있어도 정신은 연결되어 있었다. 편의점과 함께한 18년이란 시간은 게이코를 편의점으로 존재하게 했다. 



나는 게이코와 다르게 감정이 지나치게 풍부한 편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남의 스쳐가는 말 한마디에도 모두 의미를 부여하며 목적을 파악하려 한다. 가끔 그게 지나칠 때면 행동 하나로 비롯해 몇 년 뒤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사회생활에 맞지 않는 '보통 인간'이 아니지 않을까 싶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나는 게이코와 다르게 남들의 시선에 맞추어, 즉 사회가 강요하는 '보통의 기준'에 따라 초, 중, 고를 나와 대학에 진학하고 취직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보통이 뭘까. 평범함이란 뭘까.' 고민하고 자책한다. 



'평범함'에 내가 집착하고 있다는 걸 우연히 내 블로그를 보다 다시금 깨달았다.

'행복의 기준이 아득히 먼 현대. 평범하기가 가장 힘든 요즘. 일상 틈에서 찾아낸 잠깐의 쉼과 미소로 24시간 행복해지기.' 내 블로그 소개글이다. 

브런치북 <6년차 직장인, 2억 모은 저축법>, <어른 아이, 서른의 독후감>도 평범한 인간의 저축법, 평범한 인간의 독서 감상을 기저에 두고 시작했다. 



아파 보니, 돈을 벌어 보니, 헤어져 보니 평범함의 가치를 더 절실히 느꼈다. 그런데 갈수록 평범하기가 힘든 세상이 된 것 같다. 그 원인이 SNS의 발달이든 일인 가구의 증가와 맞물린 개인주의의 성행이든 평범함의 도달치가 높아진 건 분명해 보인다. SNS 속에 넘쳐나는 성공과 부, 아름다움이 가끔 나를 불행으로 몰아넣었다. 집이 없는 걸 자책하고, 예쁜 걸 부러워하고, 명품이 탐나다 보면 결국 나의 존재자체에 대한 의문과 부정으로 귀결되곤 했다. 부끄럽지만 가끔은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게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책이 필요했다. 책 속에는 해답이 있을 거라고 믿고 일단 펼쳤다. 펼쳤다 그대로 여러 번 덮기도 했고 해답을 찾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당장의 도피처와 희망이 내게 필요했다. 그러다 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문득 어떤 감상과 깨달음이 찾아왔다.



평범함이란 게 말이다. 기준을 만들어내자면 100개 1,000개 그 이상도 될 텐데. 게이코도 나도 우리 모두 조금씩 '보통'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을 텐데. 왜 본인만의 '유니크함'을 벗어던지고 타인의 잣대에 맞추어 '보통'이 되어 그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려 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에게는 게이코처럼 보통이 아닌 삶이 안정을 가져다주기도 할 텐데. 나는 집이 없지만 든든한 지지자인 엄마가 있고, 엄청나게 예쁘진 않지만 사지가 멀쩡하며, 명품은 많이 없지만 그것보다 돈을 모으는 것에 가치를 둔다. 이것 또한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게 아닌 부단히 노력해서 도달해야 하는 혹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높은 가치임을 느끼며.



평범함, 그 무거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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