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금동이네 10화

금동이네 열 번째 이야기

모든 날이 빛나길

by 금동이엄마

우리가 연애할 때 아기 이름을 오빠는 외 자로 짓고 싶어 했다. 나도 크게 반감은 없었기에 그러기로 했는데 막상 금동이가 생겼는데, 이름을 짓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평생 불려야 할 이름이기 때문에 막 지을 수가 없기도 했고 오빠 성씨에 어울리는 단어가 많지 않았다.


에이, 그냥 금동이로 해?



하다가도 놀림받을 것 같아서 금동이만은 참기로 했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선택한 글자가 현 이었다. 보통 이름으로는 어질 현(賢)을 많이 사용한다고 하는데, 오빠가 어릴 때 엄하게 자라서인지 금동이는 그냥 밝게만 자랐으면 좋겠다고 해서 밝고 빛날 현(炫) 자를 쓰게 되었다. 신생아실에서 처음 만났던 금동이는 정말 밝았다. 꼭 금동이에게만 빛을 비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금동이가 자라나면서 마주하게 될, 그 어떤 곳이라도 그저 밝았으면 좋겠다.


20190725_180950.jpg 잠들기 전 눈에 꾹꾹 눌러 담아 꿈에서도 만나고 싶은 내 아들. 아 이건 딸인가.


금동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몰랐을 감정들은 대부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이다. 한글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정말 많은데도 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가끔씩 그런다. 너 아기 낳고 나서 너무 아기에게만 메여 사는 것 아니냐고. 그 들의 눈에는 내가 육아에만 치중해서 살기에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었겠지만 그 들은 아직 겪지 않아서 모른다. 아기를 키우면서 얻는 이 표현 못할 감정을.

분명한 건 아기를 키우기 전, 본래의 내 삶에서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부분들이 참 중요했었고 어쩔 때는 그때가 간절해지기도 하는 건 맞다. 그래도 이 모든 걸 다 알았음에도 다시 그 순간이 온다면 난 또 금동이를 낳고 같은 시간들을 보낼 것 같다.


20190814_124704.jpg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현이야 천천히 자라 주라



오빠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금동이를 가지기 전 아픔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막상 그때는 서로가 꾹 참고 숨기고 있는 상처를 건드리게 될까 봐 괜찮냐고 묻기도 조심스러웠는데, 지금은 그때 그랬던 이유가 이렇게 예쁜 금동이를 만나게 해 주려고 그랬나 보다고 웃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금동이는 4번의 아픔 이후 찾아왔다. 첫 번째 아픔이 있었을 때 아기에 대한 욕심이 강해졌고 노력했지만 그 이후에도 쉽게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자주 아픔을 겪게 되니까 가족, 주변 지인들 모두가 나를 딱하게 바라보는 게 싫었다.


참 우습게도 내가 일부러 찾는 것도 아닌데 유독 임산부가 내 눈에 더 잘 띄었고, 그때마다 누군지도 어떤 것 인지도 모를 무언가가 원망스럽고 난 많이 울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빠한테 참 미안하다. 3년이라는 신혼 기간 동안 우리는 연애 때 하지 못했던 것 실컷 하면서 즐겁게 보냈어도 됐을 텐데 예민하고 감성적인 내 성격 탓에 마음껏 그러지 못했으니. 그렇게 보내던 날들 중 문득, 내가 왜 한 번도 안아보지 않고 보지도 못한 아기 때문에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었다. 매 월마다 숙제를 하듯 어플이 알려 준 날짜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 의미 없는 행위들이 오빠랑 나를 지치게 했다. 그렇게 나는 어플도 지우고 병원도 더 이상 가지 않았다.



그리고 첫 이야기에 적었듯이 그런 마음을 먹은 지 한 달 만에 금동이가 찾아왔다. 정확하게는 3주 되었을까. 마음을 편히 가지니 그토록 기다렸던 아기가 찾아왔다. 그렇지만 우리는 꽤 오랫동안 주변에 알리지 못했고, 오빠는 금동이가 생겼을 때 그 전처럼 뛸 듯이 기뻐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오빠한테 서운함을 느꼈을 나였지만 딱히 오빠가 설명해주지 않았어도 나는 알았다. 이 아이도 아픔이 될 수 있기에 마냥 기쁘지만은 못했다는 걸. 그렇게 우리는 조심스럽게 임신 초기를 겪고 드디어 안정기가 들어서서야 주변에 임신 소식을 알렸다. 안정기에 들어섰을 때도 두 번의 위험이 있었다. 출근길에 어지럼증에 쓰러져 지하철 역무관 부축을 받고 실려간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오빠는 출근길에 놀라 달려왔고 난 유산 증세가 있다는 말에 울고 불고. 참 생각해보면 그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기에 만삭 때까지 잘 견뎠던 거다. 내가 임신했을 때 오빠의 속을 열어봤다면 아마 새카맣게 타 있었을 거다.



그렇게 우리는 금동이를 지켜냈다.


20191021_173709(0).jpg 무수히 예쁜 순간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금동이 사진.


이 이야기를 마지막에 자세하게 끄적인 이유는 혹시나 내 이야기를 지금 아기를 기다리는 예비 아빠나 예비 엄마가 읽고 있다면, 제발 어플이나 병원이나 점집이라던지 가르쳐 준 날짜에 연연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과 둘 일 때는 지금 뿐이니 지금을 아주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라는 것. 그러다 보면 정말 우리에게 온 것처럼 말로 표현 못하게 예쁜 아기가 반드시 찾아올 거라는 이야기다. (여기 유산 4번 한 아줌마가 호언장담 합니다?)



현이는 현이 스스로만 밝게 비추는 게 아니라 우리 부부의 삶에도 형광등을 켜 주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힘들어 죽겠는 육아를 하면서도 이 예쁜 것이 어디서 나왔을까, 이 예쁜 걸 안 낳고 내가 여태 살았으면 무슨 행복함을 느끼며 살았겠냐고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며 금동이와 쭉 함께 할 거다. 아, 오빠도!


20190913_203022.jpg 금동아 우리 멋대로 너를 낳았지만 네가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고 느낄 만큼 좋은 부모가 될게.


너의 모든 날이 밝게 빛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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