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이 엄마가 되기 전에 나는 다른 아이들의 엄마였다.
보육교사 10년 했다고 하면 다들 놀라던데, 천직은 아니었고 아이들은 너무 예뻐 죽겠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학부모들과의 관계(그때는 진상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맘충이라 하더라고요), 또 서류는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진짜 힘들었지만 처음 2년까지는 그냥 그냥 버텼던 것 같다. 그만두면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배운 게 이 일이니까. 그런데 갑자기 3년째 되던 해부터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태 몰랐지만 내가 한 개를 주면 열 개로 돌려주는 아이들의 마음이 그때부터 보였던 것 같다. 그저 아, 예쁘다 가 아니라 이 아이가 훗날 자라나는 것도 보고 싶어질만큼 예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랬다.
처음 만나 쭈뼛거리며 낯설어하던 아이들과 봄 여름 가을 겨울까지 사계절을 함께 보내고 다시 봄이 오려는 2월이 되면 그동안 정이 들대로 들어버려서 마음 아린 작별을 한다. 그때마다 내 안에 피지 않았었던 작은 열매가 조금씩 싹도 틔우고 꽃도 피고 열매까지 맺혀 다시 꽃을 피우게 하는 거다. 그렇게 나는 10번의 예쁘고 소중한 꽃들을 피워내고 교사 생활을 그만두었다.
정말 내 아들 딸하고 싶어요
하고 말하면, 어머님들도 선생님들도 한 목소리로 아이고 나중에 선생님 자식 낳아봐. 지금 예쁜 것보다 백배 천배 더 이쁠 테니까 하셨었다. 근데 정말 그 말이 맞았다. 금동이는 내가 10년간 피웠던 꽃들 중에 제일 예뻤다.
그냥 바라만 봐도 좋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이 노래 가사 속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내가 이 아이를 안 낳고 오빠랑 그냥 둘만 살았으면 어쩔 뻔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낳길 잘했지, 내가 너 때문에 사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는지. 고슴도치병은 고칠 수가 없다던데 날이 갈수록 심각한 단계에 이른 것 같다.
난 운이 좋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받고 바로 실업급여도 받았다. (금동이 9개월 즈음 이사를 하였고, 근무지와 거리가 멀어진 이유로) 원래는 1년만 휴직하고 만삭까지 다녔던 어린이집에 다시 돌아가겠다고 동료 교사들과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했는데, 그때 원장님 말씀이 자리 비워둘 테니 꼭 돌아와. 근데 선생님 그게 안될 거야.라고 하셨었다.
그때는 원장님이 내가 다시 돌아오는 게 싫으신 건가 해서 서운하기도 했는데 원장님은 너무도 아셨던 거다.
내 자식을 떼 놓고 다른 아이들을 온 마음 다해 돌볼 수가 없다는 걸.
근무지가 멀어진 건 핑계였고, 그냥 금동이 엄마로만 살고 싶어 졌다. 그렇지만 더 나은 환경 속에서 금동이를 키우기 위해 이사를 와서 받은 대출금과 또 금동이에게 부족함 없이 쏟아주고 싶은 것들, 우리가 소소하게 누리는 모든 것들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금동이 아빠에게만 떠 넘기고 있을 수는 없기에, 복직을 준비해야만 한다.
84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가 금동이가 아주 아기였을 시기에 개봉을 했다. 육아맘이라면 꼭 보아야 할 영화라기에 너무 보고 싶어서 개봉하고 이틀 만에 보러 나갔다. 영화의 포커스가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경력을 단절하고 육아를 하는 게 당연한 사회의 시선, 막 말하자면 여자는 집에서 애나 보는 게 자연의 순리인 것 마냥 그려놓은 영화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보는 내내 불편한 부분도 있었고, 공감이 되지 않았던 부분 속에 또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던 그런 영화였다. 아마도 소설을 먼저 읽었다면 내가 느꼈던 부분이 달라졌겠지만 영화를 보고 내가 공감이 되어서 눈물이 났던 장면은 친정엄마 이야기였다.
잠시 벗어나서 이야기를 하자면,
남매 셋을 키운 우리 엄마는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으셨을까
우리를 키우시느라 그 좋은 시절을 다 보내시고 말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엄마가 그동안 하소연을 해오셔서가 아니라 지금 하시는 일을 할 때 열정이 대단하시기 때문이다.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이름으로서 커리어를 쌓아가시는 모습이 자식 입장에서 보는 것도 참 멋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훗날 금동이에게도 난 그런 엄마이고 싶다. 물론 우리 엄마처럼 멋져지기까지는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그렇다. 난 교사생활을 하기에는 금동이가 눈에 밟히고 일을 하지 않자니 그저 금동이 엄마로서만 지내기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것.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일도 너무도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이고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저버리고 싶지 않기에 모두가 잠든 밤에 나의 이야기를 꺼내 끄적이는 이 순간이 참 벅차고 뜨겁다는 것.
수익을 바라면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를 쫒아가는 게 맞고, 이제 와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커다란 모험이겠고, 또 금동이 엄마로서의 역할도 잘 해내고 싶고 어쨌든 욕심이 그득그득하다는 얘기다. 내가 이 모든 걸 다 잘 해내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큰 고민이 되지만, 당장은 이렇게 하루의 잠깐이라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에
나 스스로에게 오늘도 수고했다고 다독일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린 내가 그렸던 20년 뒤 나의 모습
오늘도 고생했어 애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