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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Nov 09. 2020

예? 제가 사투리를 쓴다구여?

어쨌든 잘못 들은 것이 분명함.


    아빠가 돌아가시기 두어 해 전의 일이었다. 아빠는 그때 여러 해 계속해 온 학원 통학차량 운전기사 일을 그만두고 이런저런 일을 전전한 끝에 버스 기사로 취업한 차였다. 어딜가나 소년 같은 인상에 순진하고 점잖은 성격이라 선후임 할 것 없이 사랑받는 아빠였지만 그런 아빠의 발목을 잡는 태생적 조건이 하나 있었다. 우리가 사는 곳은 경상남도 한구석에 위치한 울산, 그러나 아빠의 고향은 전라남도 광주라는 점. 군대 탈영 후 연고없이 흘러들어와 엄마를 만난 계기로(*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참고) 그대로 울산에 정착하게 된 아빠는, 광주에서 살아온 날보다도 울산에서 살아온 나날이 더 길었을 것이다. 거기에 말투조차 표준어에 가깝게 나긋나긋했으나, 그럼에도 기저엔 어쩔 수 없이 광주 사투리의 자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나 보다.


    어느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가 저녁을 먹다가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얼마 전에 교대를 마치고 대기실에 들러서 쉬고 있는데, 대화 중에 동료가 끼어들어 전라도 사투리     없냐고, 기분 나쁘다며 역정을 냈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아빠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의기소침해 보였다. 그때 맞섰어야 했나, 하지만 이제  들어온 신입의 입장에서, 버스 운행 중에조차  차선의 선배에게 고개 숙여 인사  마디  하면 욕을 들어먹는  사회 안에서 제대로 맞설  있기나 했을까, 그러나 그냥 삭이자니 그런 자신이 너무 배알도 없는  아닌가, 그런 것들을 아마도 오래 생각하셨겠지. 그리고 그때의 자조는 이런  고작 한두번 겪어 생긴 체념도 아니었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전라도, 그것도 광주 사람으로서 지역 차별이 상당히 남아있던 그 시기의 울산에서 살아온 아빠의 마음을 모른다. 나는 내 부친의 출신지가 광주라는 것을 드러내는 데 한번도 망설여 본 적 없다. 그런 일로 불이익을 받을 거라고도 생각해본 적 없다. 나는 그래도 상식이 상대적으로 통하는 사회에 사니까, 나의 말엔 광주 사투리가 제대로 배인 적 없으니까, 사투리를 쓰더라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니까. 나는 광주가 아니라 경상도, 울산 사람이니까. 아마 그런 이유도 클 것이다.


    하지만 지방 거주민으로서 서울에 살기 시작하면서 내겐 문득, 나의 경상도 억양이 배인 말씨로 인해 움츠러드는 일이 종종 생겼다. 아빠의 경험처럼 노골적인 천대는 한번도 받아본 적 없음에도.




진부한 비유지만,  나에게는 너무 익숙해져 인지할 수 없는 내 집의 냄새 같은 것 (스틸컷은 기생충)


    울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농담삼아 표준어에 가까운 내 얌전한 말투를 놀리는 애들이 있었다. 잡담을 하다가 "그 버스정류장에..." 하고 이야기하고 있으려니 정색하면서 "너 왜 뻐쓰라고 안 해? 왜 버스라고 해?" 하고 이상한 사람인 양 몰아가는 식으로. 나 역시도 상대적으로 얌전한 말씨의 부모님에, 태생적으로 조용한 억양, 거기에 책만 들입다 읽어선지 표준어에 가까운 단어와 문장을 구사하는 덕에 내가 사투리를 그다지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서울에 와보니 나도 모르고 있던 나의 일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도 사투리를 꽤 쓴다!


    입학 직후 막 동기들과 친해지기 시작할 무렵, 내가 말을 할 때면 그들이 종종 내 말을 끊고서 웃는 얼굴로 묻곤 했다. 근데 너 사투리 귀엽다. 어디서 온 거야? 학과 내 잡담 톡방에서는 새터니 정모니 하며 직접 얼굴을 보고 얘기하기 전부터도 누가 어디 출신이라느니, 만나서 얼른 그쪽 사투리를 듣고 싶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사투리를 강하게 쓰는 사람들은 그게 매력포인트라며 그들의 말투를 따라하며 모두 웃었다. "아 맞나" 따위의, 대구 출신 학생들이 자주 쓰는 추임새도 소소하게 화제로 올랐다. 초반엔 그런 분위기가 기꺼웠다. 그런 식으로라도 60명에 육박하는 동기들 가운데 조금이나마 눈에 띄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야.


    기대감 어린 눈으로 "나 사투리 쓰는 것 같아?" 하고 은근하게 물으면서, 그렇다는 답변을 들으면 억지로 분한 척 발을 동동 구르면서, 나는 반쯤은 그 상황을 즐겼지만 한편으로는 초조했다. 정말로 내가 사투리를 티나게 쓰고 있나.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니, 라고 생각하는 순간에조차도 친절한 서울 아이들이 맞아, 넌 사투리를 쓰고 있어, 하고 단언해주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 의지나 통제로 바꾸지 못하는 부분이 타인에게는 너무도 쉽게 눈에 띄어 버린다는 것이, 내가 원하지 않을 때조차 나도 모르게 나의 어떤 면을, 뿌리에 가까운 구석을 드러내 버리곤 한다는 것이. 그게 때로는 낙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


    서울에 올라온 후로 울산의 집에는 거의 내려가지 않았다. 따져봐야 고작 해마다 두 번, 통틀어 한 해에 일주일이나 될까. 어머니와 전화통화도 달에 한번 할까 말까 하니 내 억양에는 빠른 속도로 서울물이 들었다. 끝까지 고치기 어려웠던 건 첫소리 자음이 빌 때마다 나도 모르게 톤을 높이게 되는 습관. 이를테면 "아이네이스" "아이폰" "이름" 같은 공백의 'ㅇ' 발음들. 그마저도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첫마디를 내는 습관을 들이니 곧 희미해졌다.


    그 뒤로 한동안은 내 출신지를 그다지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 사람도 사라졌다. 이제는 울산에 내려갈 때면 거리마다 보이는 촌스러운 굴림체의 간판이 못생겨서 괴롭고, 긴 버스 배차간격이 불편한 나는, 이미 낯설어진 내 고향 사투리를 흉내내다가 어색하니까 제발 하지 말라고 타박이나 맞고 있는 나는, 이제 거의 서울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읽히고 마는 이질성 없이, 눈에 띄지도 않고 주목받지도 않는 지극히 평균의 사람(*그러니까, 실제 산술상의 한국/서울 사회 평균이 아니라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위선적이고 협소한 범위 안에서의 평균이라는 의미에서)이 되었다고.






    독일에서 한국어를 거의 버려두다시피 지내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나는 언니와 언니의 남친과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언니의 남친은 서울 강북구에서 태어나 평생 자란 까닭으로 눈에 띄는 사투리를 구사하지 않지만, 서울 거주 2년차에 접어드는 언니의 말씨에는 여전히 경상도의 억양이 강하게 배여 있다. 귀국 직후 코로나가 유행하며 집에만 틀어박혀 사람도 만나지 않고, 근로장학은 기계적으로 발열체크만 돕는 단독 근무, 강의도 온라인으로 듣다 보니 만나는 사람이라곤 거의 이 두 사람뿐인데, 그것도 매일같이 밥상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농담따먹기를 하니 눈치채지 못한 새 사투리가 전염되는 것은 시간 문제.


    그렇다. 서울말이란 백신 같은 게 아니라서 한번 익혔다고 사투리에 대한 면역을 유지해주지 않는다. (애초에 언어의 문제에 정상과 비정상, 표준과 비표준 같은 위계가 존재하지 않으니 바이러스-백신은 잘못된 비유이기도 하고.) 그리하여 반년이 지나 학교에서 다시 근로장학을 시작하며 여러 사람과 교류하기 시작한 나는 당황하고야 말았다. 아니 왜 다들... 나한테 사투리를 쓰고 있다고 하는 건데? 왜 또 내 말투를 귀여워하는 것처럼 웃는 건데? 나는 또 왜 억지로 삐진 척 속상한 척 "흥칫뿡" 수준의 유치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건데......?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 (출처: 구글 이미지)

    사투리를 쓰는 것이 흠이 아닌데, 그걸 알아도 오랜만에 사투리를 쓰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무는 일이 다시 잦아졌다. 내 목소리에서 언제 어떻게 나도 모르는 나의 흔적이 비져나올지 모르니, 멋대로 튀는 목소리를 목 안으로 끌어들였다. 아, 아, 아, 목을 가다듬을 때는 아무렇지 않아도 아, 아, 아이폰, 아, 아, 알림, 이, 이, 이름, 할 때는 삑, 첫음절에서부터 한 톤 높아지는 내 목소리.



    나는 평생 내가 울산 출신이라는 점을 창피해 해 본 적 없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사투리라는 특성 자체는 대개 매력적이다. 하지만, 지방출신, 사투리 사용자, 여성으로서 서울말이라는 "표준성"을 갖춘 사람들에게 이질적인 존재로(때로는 매력적인 존재로) 취급받는 상황은 언제나 피하고 싶다. 내가 동양인이란 이유만으로,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지방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러니까 나 자신이 계발하거나 노력하거나 의도적으로 드러낸 특성이 아니라 나의 바꿀 수 없고 벗을 수 없는 부분에 달린 태그로 인하여, 그러한 "표준성"과 대치되는 특이성을 가진 "타자로서" 얻는 호의는 달콤한 듯 느껴져도 그 순간을 흘려보낸 뒤엔 껄끄러운 뒷맛만 남는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다. 타인이 멋대로 부여한 캐릭터에 나를 끼워맞추는 경험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내 등 뒤에 줄줄이 달린 꼬리표들을 싹둑 잘라내고 살아가기란 이번 생에선 요원한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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