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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륭짱 Dec 27. 2022

순례 8일 차 : 로그로뇨에서 달콤한 휴식을

26.9살 막바지에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22/10/27 목요일 Stay

In 로그로뇨(Logroño) 


로그로뇨에서 맞이하는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시간은 오전 11시 6분을 지나고 있었다. 

지금 시간이면 원래 한창 걸을 때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연박을 하는 날이어서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토스트를 먹은 후 약간의 밀린 일기를 썼다. 


각자의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잠시 밖에 나가기로 했다. 다들 준비를 하고, 숙소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의 할 일은 첫 번째 밀린 빨래를 하러 빨래방에 가는 것, 두 번째 중국마트에 가서 비상식량을 사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당에 가서 쎄요를 받는 것이었다. 


Check 1. 빨래방에 가서 빨래 돌리기. 

숙소에 세탁기가 없어서 빨래방에 갔다. 익숙한 듯 어려운 스페인어지만, 친절하게도 픽토그램이 있어 헤매지 않고 빨래를 잘 돌릴 수 있었다. 

-> 성공 


Check 2. 중국마트에서 비상식량 사기.

이제 중국마트에 가는 게 필수가 된 순례길이었다. 가끔씩 한식이 먹고 싶거나 혹은 주변 식당들이 문을 닫았을 때, 비상으로 필요한 식량들을 중국마트에서 샀다. 중국마트는 작은 도시나 마을에는 없으므로 대도시가 나올 때마다 들려 라면을 사서 비상으로 들고 다녔다.

-> 성공

MISSION CLEAR!

Check 3. 성당에서 쎄요(도장) 받기. 

하나둘씩 해야 할 것들을 해치우고, 드디어 성당 쎄요를 받으러 갔다. 성당 쎄요는 왠지 다른 무엇보다도 멋질 것 같다는 생각에 설레었는데, 그날 무슨 일인지 성당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성당 쎄요는 못 받고 주변만 구경했다. 

-> 실패

굳게 닫힌 성당과 로그로뇨 거리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쎄요는 포기하고, 편하게 관광을 하기로 했다. 대도시는 대도시였고 거리에 사람들도 많았다. (이 순간만큼은 순례자로 온 것이 아니라 여행객으로 관광을 하러 온 느낌을 받았다)

구경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꽤 케밥집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즉석으로 케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고, 맛있는 케밥집을 검색한 끝에 Miami라는 케밥집을 찾아냈다..!


입구로 들어가자 맛있는 냄새가 풍겨와 코를 자극시켰다. 


우린 망설임 없이 가게로 바로 들어갔다. 덩치가 제법 있는 케밥 사장님께서 자리를 안내해 주셨는데, 그를 따라 점점 안으로 들어가니, 가게 안쪽 다른 문을 열자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떡하니 나왔다. 그 넓은 공간 중 구석에 위치한 테이블이 우리 자리였다.

뜻밖의 공간에 깜짝 놀랐고 인테리어에 한 번 더 깜짝 놀랐으며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서 더더욱 놀랐다.  


똑같이 메뉴를 통일하여 케밥을 주문하곤 우리는 안쪽 깊숙한 자리에서 기다렸다.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스페인 로그로뇨 거리인데,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은 마치 터키 어딘가를 연상케 하는 듯했다. 그만큼 인테리어가 꽤 특이하며 강렬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열띤 얘기를 하는 도중에 저 멀리서 양손으로 쟁반을 든 사장님께서 천천히 다가오셨다. 우리가 있는 자리로 케밥을 가져다 주신 사장님께서는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꽤나 친절한 모습이었다. (덤으로 소스까지 통째로 챙겨주신 사장님이셨다)


크기가 큰 케밥은 야채가 안 보일 정도로 고기가 가득했으며, 사장님께서 챙겨주신 진한 소스를 번갈아 케밥에 뿌려 먹으니 감칠맛과 함께 짠맛과 새콤함이 한데 어우러져 너무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배부름으로 식사를 마친 우리는 둘씩 찢어져 한 팀은 빨래방으로 다른 한 팀은 마트로 향했다. 나는 B언니와 같이 빨래방으로 가서 건조를 돌린 후 다 된 빨래를 숙소까지 가져갔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빨래를 마저 정리하며 마트팀을 기다렸다. 건조기에 돌린 빨래는 포근한 맛이 있었는데 하나 둘 빨래를 켜켜이 갤 때, 손에 따듯하고 뻣뻣한 촉감이 닿았다. 그 느낌은 마치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약간의 호사 같았다.    

이윽고 빨래를 다 개고나자 마트팀이 돌아왔고, 우리는 각자 개인 정비를 하며 내일 다시 시작될 순례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일찍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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