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내가 좋아하는 애가 나를 좋아한다거나, 중간고사에서 수학 문제를 하나만 틀린다던가, 당연하게 산 음료가 1+1을 하고 있다던가!
그렇게 올해 26살 나에게 또 이런 일이 생겨버렸다.
평소에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해, 학생 때는 시간이 날 때면 바득바득 알바비를 모아서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었다. (그래 봤자 3번밖에 안 되긴 하지만^^) 어느 3월 벚꽃을 보러 후쿠오카에 한 번, 그 해 여름 방학에 바다를 보러 오키나와에 한 번 그리고 졸업전시를 끝낸 후 조금 멀리 뉴욕에 한 번. 이게 나의 해외여행의 전부이다. 그 이후로 전 세계적인 팬데믹이 왔고 하늘길이 막혀 더 이상 해외여행은 꿈도 못 꿨다. 그 사이 난 졸업을 했고, 다른 공부를 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사촌 언니한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OO아 내년 10~11월쯤에 뭐해? 나랑 같이 순례길 가지 않을래?"
그때 당시 난 편입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 공부가 9개월이 넘어갈 때쯤이었다. 슬슬 지루해졌고 진물이 나 있던 상태였었다. 아마 편입에 합격한다 해도 내년 10월엔 특별한 것이 없었을 것 같았다. 또한 대학생의 특권인 휴학도 있었기에, 만약 순례길에 간다면 휴학을 해서 가면 되겠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난 순례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tvN 스페인 하숙' 예능을 너무 재밌게 봤던 터라 덥석사촌 언니의 제안에 응했다. 이렇게 나의 내년 10~11월 다이어리엔 "해외여행", "첫 유럽 여행", "산티아고 순례길"의 카테고리가 추가되었다.
"좋아...!!!"
이때부터 나의 큰 계획은 2022 편입 성공 -> 2학기 휴학 -> 산티아고 순례길(2022.10~)로 정했고, 그 결과 처참하게 실패했다. 일단, 순례길에 가는 비행기표는 저렴하게 구해서 22년 10월에 순례길에 오르는 것은 확정이었으나, 내가 편입에 실패하면서 당장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난 반드시 합격한다!라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막상 예비만 받은 채 떨어지니 앞길이 막막했었다. 하지만 좌절도 잠시뿐, 오히려 순례길 경비를 모으라는 신의 큰 뜻이라고 생각하며(이것이 바로 합리화인가요ㅋㅋ) 바로 일을 구해 돈을 벌었다. 역시, 남의 돈을 버는 건 쉽지가 않았고 중간에 고비도 몇 번 왔었지만 나름 잘 버티며 차곡차곡 순례길 경비를 마련했다.
그렇게 대망의 22년 10월 15일이 되었고 다소 신기한 조합으로 뭉친 나, 사촌언니 그리고 사촌언니의 친구 2명과 함께 떠난 왁자지껄 산티아고 순례길이 시작되었다.
*우린 '꽈배기'(꽈뜨러지게 알배기는 모임)라는 이름을 만들어 각자 꽈배기의 캐릭터를 부여하곤 순례동안 인스타그램으로 소통도 했다. (그중에 난 백앙금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