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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륭짱 Dec 16. 2022

순례 4일 차 : 용서의 언덕을 넘어서

26.9살 막바지에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22/10/23 일요일 Walking D+4 

팜플로나(Pamplona) ->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약 27~28km


대도시의 맛을 제대로 느꼈던 순례 3일 차가 지나가고 4일 차로 접어드는 팜플로나에서의 아침이었다. 쾌적한 숙소에서 빠져나오기가 꽤 힘들었지만, 우린 또 오늘 걸어야 할 할당량이 있기에 마트에서 사 온 샐러드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첫 날을 제외하곤 날씨가 제법 좋았다. 맑은 날 밝은 햇빛을 받으며 다음 목적지인 레이나(Reina)를 향해 걷고 있었다. 아침을 샐러드로 먹은 탓일까 금방 허기가 졌고, 마침 일요일 아침 보기 드물게 문을 연 바르(Bar)가 있길래 곧장 들어갔다. (보통 일요일은 문을 닫은 곳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전날 슈퍼에 가서 먹을 음식을 미리 사두곤 했다) 날씨가 좋으니 밖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나는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렸다.


곧이어 한 사람씩 주문을 하고, 내 차례가 되었다. 난 의외로 여러 가지 시도해보는 걸 좋아하는데, 갑자기 평소와는 다른 빵을 먹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고른 것이 초코 에끌레어 빵이었다. 스페인 에끌레어는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며 빵과 커피를 받아 자리로 들고 왔다. 한껏 기대감에 부푼 채 나이프로 조심스럽게 단면을 잘랐다. 초코가 가득 차 마음에 들었다. 그대로 한 입에 넣고 맛을 보는데, 생각보다 너무 차가웠고 초코에선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순간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난 스페인에서 에끌레어를 먹어본 경험을 했으니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합리화를 했다. (날이 갈수록 합리화가 늘어나는 기분..)

레이나로 가는 길에는 "용서의 언덕"이라고 하는 곳을 올라가야만 했는데 꽤 힘들다고 하는 후기를 봤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출발을 했다. 

순례길 표지판과 문제의 에끌레어...(나름, 모양은 그럴듯하다?!)

걸으면서 저 멀리 보이는 언덕이 있었다. 설마설마하며 갔는데 그 설마가 진짜였다. (우리가 넘어야 할 언덕이었다.) 다가가도 가까워지지 않는 언덕을 두고 우린 계속 걸어갔다. 가다가 힘들면 중간에 앉아 쉬기도 했다. 한 번은 대학교(Universidad de Navarra) 내 순례길이 있어 그곳 벤치에서 쉬고, 또 한 번은 강아지들 놀이터에서 잠시 쉬었다 움직였다. 

하늘에 구름은 가득한데 선글라스를 껴야 하는 날씨가 이어지던 날이었다. 그렇게 대학교를 지나고 강아지 놀이터를 지나니 쭉 뻗은 아스팔트 길이 나타났다. 


시작이다. 

이제부터 언덕을 향해 올라가야만 했다.


우리는 성큼성큼 나아갔다. 나도 질세라 언니들을 따라서 야무지게 걸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벌써 해는 중천에 떠있었다. 작렬하는 태양 속 계속되는 걸음에 지칠 무렵 저 앞에 외로이 서있는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주변엔 흙과 풀뿐이라 쉴 곳은 나무 아래밖에 없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결정했다. 

마치 쉬었다 가라는 양 홀로 있는 나무가 너무 반가울 뿐이었다. 바닥엔 사촌언니의 우비(기꺼이 자신의 우비를 내어준)를 깔고 앉았다. 임시방편으로 진분홍색의 우비로 돗자리를 대신했는데 아주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 주었다. 여러모로 쓸모 있는 우비였다. (후에, 틈만 나면 그 우비를 깔고 앉아 쉬었다) 


배낭에서 빵을 꺼냈다. 

그 빵을 우린 오손도손 나눠먹었다. 


뻥 뚫린 길을 보며 뻥 뚫린 하늘을 보며.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잠깐 당황했지만..)

이것이 찐 순례길..?

남은 길이 많기에 툭툭 털고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입고 있던 검정 후리스도 벗을 만큼 제법 뜨거워진 날씨였다. 나는 순례길에 오기 전엔 걸으면서 생각정리도 하고 고민도 해결하면서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거였다. 걷는데 힘이 부쳐 그냥 더워 죽겠는데 빨리 가자- 하는 생각만 들었다.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내가 오르막에 약하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어느 정도 걷자 계속 오르막이 있는 구간이 나왔다. 나는 뒤처지지 않으려고 악을 쓰며 올라갔다. 왜냐하면, 뒤쳐지는 순간 동행하는 언니들한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어떻게든 같이 가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운종 좀 할 걸..이라는 후회와 함께 계속 오르다 보니 어느새 용서의 언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중간 쉼터 같은 곳에서도 한 번 쉬어주고 걸어 올라가고를 반복하며 내가 올라온 길을 다시금 뒤돌아 보았다.

오를 땐 얼마큼 높이 왔는지 실감이 잘 안 나는데, 그 순간 뒤돌아서 내가 온 길을 따라 쭉 내려다보면 꽤 높이 올라왔구나 하고 실감이 나곤 했다. 

머지않아 용서의 언덕에 도착을 했고 높은 지대에 있어 그런지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힘들며 올라간 덕분에 뿌듯함은 배로 커져 기분이 좋았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마침대 도달한 용서의 언덕!

역시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여기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었고 내리막뿐이었다. 울퉁불퉁한 돌 뿐인 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훨씬 체력적으로 소모가 많이 되어서 우린 우테르가(Uterga)라는 마을에서 한번 더 쉬기로 했다. 알베르게 겸 바르도 같이 하는 곳에서 잠시나마 달콤한 휴식을 취했고,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가던 와중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의 사촌 언니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가방도 제일 무거운데..) 다행히 그녀는 툭툭 털고 일어났고 피가 살짝 난 손을 보여주었다. 우린 가지고 있던 물로 응급 처치를 했다. (앞에 가던 사촌 언니가 넘어졌을 땐, 정말 깜짝 놀랐다) 이윽고, 조용한 마을들을 지나쳐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레이나(Reina)에 도착을 했다.  

우테르가 마을과 응급처치 중인 우리

생각보다 문을 연 알베르게가 많이 없었다. 일요일인 점도 한몫했을 거고, 비수기인 점도 있었을 거라 짐작했다. 10kg의 배낭을 멘 채 숙소를 찾으러 왔다 갔다만 15분 이상 한 것 같았다. 결국 마을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한 공립 알베르게를 갔고, 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지쳐서 바로 앉아 버렸다. 조금의 기다림 끝에 우린 방을 배정받았으며 위층으로 올라가 짐 정리와 샤워를 했다. 


지금까지 걸었던 것에 비해 체력적으로 힘든 날이어서 요리를 해먹을 힘도 없었다. 그렇게 저녁은 공용 주방에서 우리가 가져온 신라면컵으로 때웠고, 하루를 일찍 마무리했다. 

저녁은 신라면

*삐걱이는 철제 침대에 파란색 시트를 가진 7유로의 공립 알베르게는... 나름 잘 만했다...!   


더보기) 1. 라면은 팜플로나 중국 마트에서 샀다. 

           2. 물은 필수이고, 조금이라도 비상식량을 가져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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