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 > 론센스바예스(Roncesvalles) 약 11.9km
이날부터 우리는 순례길을 걸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인 생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론센스바예스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4명이서 묵은 생장 숙소 주인 할머님께서는 친절하게 우릴 맞아주셨고, 따듯한 방으로 안내를 해주셨다. 화이트 앤 우드로 깔끔하게 정돈된 방과 살짝 경사진 천장 그리고 각 1인 침대 및 화장실이 구비된 방을 보니 조금 으슬했던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퍽 괜찮은 숙소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이때부터였나 보다)
그곳에서 우린 각자 개인 정비를 하며(내일을 위한), 근처 마트에서 사 온 음식들로 허기를 채웠다.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실감이 잘 안 났었는데, 가족&친구들과 떨어져서 한국과 먼 프랑스 와 숙소에 언니들과만 있으니 그때 진정으로 순례를 떠나는구나 하고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던 날이었다. 약 10kg의 큰 배낭을 메고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내려와 숙소 대문을 활짝 열었다. 아침일까 했지만 아직은 어두운 하늘을 띠고 있었다. 이때가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조금은 싱숭생숭한 마음을 가지고 컴컴한 어둠 속으로 우리는 다 같이 발을 내디뎠다.
사실, 난 요 며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살짝 걱정을 했었다. 전날 약을 먹고 일찍 잤는데도 코와 목은 여전히 비정상이었다. 한국에서도 코로나에 걸린 적도 없었고 하물며 요 몇 년 동안 감기 또한 걸린 적이 없었던 나였기에 혹시 코로나가 아닐까? 하는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열이 나지 않는 점이랄까)
그래도 일단은 앞으로 걸어갔다. 벌써 포기하기엔 앞으로 걸을 길과 시간이 너무 아까웠기에 차분하게 조금씩 뚜벅뚜벅 나아갔다. 시간은 아침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하늘은 마치 자정 같았다. 얼굴을 슬쩍 올려보니 길을 따라 별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와-"
내가 본 별들의 무리
감탄이 절로 나오는 별의 행진이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작은 플래시에 의지하며 반짝이는 별이 채운 하늘 아래 걷고 있으니 마치 은하수 위를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작은 황홀감 덕분에 컨디션이 좀 괜찮아졌으나 오리손과 피레네 산맥으로 이어지는 점점 가팔라지는 길을 올라가니 배낭의 무게와 육체적 힘듦이 나를 눌러와 숨이 점점 가빠졌다.
중간중간 올라가다 쉬고 또 올라가다 쉬면서 물과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나름 컨디션을 조절하며 올라간다고 했는데, 나만 홀로 뒤에 있었을 뿐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금은 어두웠다) 그때 사촌 언니가 내 옆에서 속도를 맞춰주었다. 난 괜찮다고 언니 속도로 가라고 말을 했지만, 아픈 상태에서 혼자 걷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하여(무슨일 나면 아무도 모르기에) 4명이서 출발한 우리들은 둘둘로 나눠졌고, 캄캄한 하늘과 함께 자연스레 우린 후발대가 되었다.
난 계속 걷고는 있었지만 뒤에서 보기에 휘청거릴 정도로 몸이 더 안 좋아졌다. 그래서 결국엔 오리손(Orison)까지 가서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선발대 언니들은 오리손을 거쳐 피레네를 넘어 숙소로 오기로 하고 서로 메시지를 남긴 채 숙소에서 만날 것을 기약했다.(후에 선발대가 정말 위험했고, 고생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후발대인 우리는 바로 택시를 탄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후발대가 탄 택시
나와 사촌언니는 약 50분간 택시를 타고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국경을 넘어 론센스바예스에 도착을 했다.
(난 이동하는 내내 잠을 잤다)
우리의 숙소는 론센스바예스의 옆 동네부르게떼(Burguete)에 위치해 있었고 아직 알베르게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아서 론센스 근처 카페인 Goxona에서 잠시 머물렀다. 난 따듯한 카페 콘 레체와 뺑오쇼콜라를 먹으며 원목 의자에 앉아 쉬며 일기를 썼고, 언니는 노트북으로 일을 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밖에 배낭을 두고, 따듯한 실내로 들어왔다!
카페 콘 레체와 뺑오쇼콜라
적당히 시간을 보낸 후, 부르게떼로 이동을 했다. 이때가 우기라더니 정말로 비도 오고 바람도 많이 불어 날씨가 많이 차가워진 것이 피부로 느껴졌었다. 이 악천우 속에서 선발대가 잘 오고 있나, 걱정을 하면서 숙소에 와 약간의 숙면을 취한 후, 따듯한 차를 마시면서 피레네를 건너 올 언니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예상 도착 시간보다 조금 더 걸리긴 했지만 무사히 선발대가 숙소에 도착을 했고 우린 그들의 무용담을 들으며 안전 귀가의 축하와 위로를 해주었다. 선발대는 바로 뻗어 침대에 지쳐 잠이 들었고, 후발대인 우리는 밖으로 나와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스페인은 저녁을 너무 늦게 먹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첫 째날 저녁식사
마을에 유일하게 문을 연 식당으로 들어가니 모든 순례자들과 주민분들이 그곳으로 다 온 모양이었다.그만큼 시끌벅적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우리는 주문에 성공을 했고 따듯한 버섯 스프와 메인인 스테이크 그리고 디저트, 음료까지 야무지게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조금 쉬니 좀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코막힘과 목은그대로이기에 컨디션 조절을 잘해 내일은 꼭 완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례 첫째 날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