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냥강인성 Oct 22. 2023

하나하나 관찰하여 모아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안다는 건 무엇인가_인식론

 친구와 어머니의 반박을 들은 인성이가 뚱한 표정으로 책상을 바라봅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찰도 추론도 더 철저하고 엄밀하게 해야 했어요. 인성이가 원하는 건 친구도 어머니도 결국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실입니다. 절치부심하고 관찰부터 제대로 해보기로 결심을 합니다.

친구의 반박은 이러했습니다. “야. 이게 어떻게 어두운 갈색이냐? 붉은색이지.” 인성이가 있는 곳에서는 아무리 봐도 어두운 갈색이 맞습니다. 이걸 붉은색으로 본다는 건 말이 안돼요. 그렇다는 건 친구가 있던 위치에서는 붉은색으로 보인다는 거 아닐까요? 인성이가 친구가 있던 자리로 가 책상을 봅니다. 놀랍게도 붉은색으로 보입니다. 아마 이 건너편 자리의 조명이 조금 더 밝은 모양입니다. 친구의 말이 틀리지 않았군요.

인성이는 이 책상이 가진 진짜 색을 알고 싶습니다. 문제는 언제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인성이는 생각합니다. 

‘만약 모든 곳을 똑같이 밝히는 조명을 설치한 후 일주일에 걸쳐 모든 위치에서 책상을 관찰한다면 이 책상의 진짜 색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결심합니다. 까짓 거 한번 해보는 거죠.

그리하여 인성이는 우선 모든 곳에 일정하게 빛이 닿을 수 있도록 조명을 바꿉니다. 가로 세로 50cm마다 조명을 설치하면 어두운 곳이 없겠죠? 좋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상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인성이가 처음 본 어두운 갈색을 1이라고 치고 그보다 밝아지면 0.1씩 더하고 어두워지면 0.1씩 빼는 걸로 하죠. 현재 위치에서 10cm씩 움직이면서 관찰 결과를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숫자의 평균을 내보면 책상의 확고부동한 색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 그 기록입니다.


<가. 1>  <나. 1.1>  <다. 0.9>  <라. 1>  <마. 0.8>  <바  0.9.>  <사. 1>  <아. 1>  <자. 1.1>  <차. 1>  <카. 1.2>  <타. 1>  <파. 1>  <하. 1> …….


이런 결과가 나왔군요. 이러한 관찰을 매일 한 번씩 일주일에 걸쳐한 후 데이터를 모아봅니다. 수없이 많은 데이터의 평균을 내보니 1이 나옵니다. 인성이는 기뻐합니다. 처음 생각했던 어두운 갈색이 이 책상의 진짜 색이었던 겁니다. 

기뻐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과연 인성이가 찾은 이 색이 책상의 진짜 색이 맞을까요? 확인하기 전에 우선 인성이가 한 방법에 대해 살펴봅시다.


방법

인성이는 먼저 조명을 바꾸어 설치했습니다. 모든 곳에서 동일한 밝기를 가지기 위해 애썼죠. 오류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동일한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그 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10cm 간격으로 움직이며 관찰했습니다. 그걸 무려 일주일 간 반복했죠. 데이터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실에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색에 대한 표현을 단어가 아닌 숫자로 표현했습니다. ‘어두운 갈색’과 같은 표현은 엄밀하지 못합니다. 색의 밝기를 수치화하면 훨씬 더 객관적인 정보가 될 수 있죠.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1. 동일한 조건 갖추기. 2.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으기 3. 객관적으로 수치화하기. 

어딘가 익숙한 방법이죠? 이러한 방법을 ‘실험’이라고 합니다. 관찰에서 더 엄밀하게 나아간 방법이죠. 그리고 ‘실험’을 통해 하나의 확고부동한 사실로 나아가는 과정을 ‘귀납’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니 귀납이란 참으로 피곤하고 복잡한 과정처럼 보입니다.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져  보이죠. 인성이가 한 행동을 좀 보세요. 얼마나 피곤합니까. 어머니가 보셨으면 등짝을 때리면서 어두운 갈색이 맞으니 그만하라고 하셨을 겁니다. 

실험을 통한 귀납은 과학에서 이용되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과학에서 위의 세 가지 조건은 중요합니다. 동일한 조건을 갖추고, 최대한 많은 반복으로 데이터를 쌓고, 그걸 모두 수치화하여 기록하는 방식이요. 그렇게 얻어낸 사실들은 과학기술의 기반이 됩니다. 그건 우리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죠. 누가 뭐래도 과학에서 귀납은 최대한으로 엄밀하고 강력합니다.

그건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일이고요. 그런 엄밀함 없이도 귀납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떠오른 해를 봅니다. 우리는 매일 정수기에서 나오는 물을 마십니다. 우리는 매일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면 차도를 건넙니다. 우리는 매일 저녁 의심 없이 계란을 깨 맛있는 계란프라이를 해 먹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진 걸까요. 우리는 왜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왜 오늘 정수기에선 오염된 물이 나올 거라 생각하지 않죠? 왜 이번 초록불에서는 자동차가 신호를 무시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왜 지금 깨고 있는 계란이 썩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지 않으셨죠?

그건 어제도, 이틀 전에도, 삼일, 사흘,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태양이 뜬 아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정수기의 물은 몇 달 전부터 깨끗했고 초록불일 때 달려오는 차는 경험해보지 못했거든요. 제가 계란을 깨 봤을 땐 한 번도 썩은 계란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믿고 계란을 깨는 겁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계란을 깨 보았는데 썩은 계란이었습니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하나를 더 깼는데 왠 걸요. 이것도 썩었네요. 뭔가 이상해 하나를 더 깨 보았더니 역시나 썩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냉장고에 있는 모든 계란을 깨지 않아도 이런 결론을 내릴 겁니다. 아, 냉장고의 모든 계란이 썩었구나! 

믿음. 믿음이 귀납의 핵심입니다. 이전에 관찰로 나왔던 데이터를 믿고 내일을 살아가는 거죠.  믿음 아래의 귀납은 일상생활을 유지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입니다. 만약 정수기 물을 마실 때마다 필터가 고장 난 건 아닐까 의심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만약 계란을 깰 때마다 썩었나 안 썩었나를 확인한다면요? 우리는 아마 미쳐버릴게 분명합니다. 


첫 번째 문제

다시 인성이의 이야기로. 인성이는 이 기쁨을 함께 누리기 위해 어머니를 찾아갑니다. 아까 어머니가 인성이의 속성 표를 보고 나무침대라고 한 건 데이터의 양이 부족해서였을 겁니다. 이 정도 데이터라면 적어도 이 책상의 색에 대해서는 인정하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어머니에게 달려간 인성이가 자신의 데이터 표를 보여줍니다. 어머니는 인성이가 건넨 표를 꼼꼼히 봅니다. 인성이는 당당합니다. 일주일에 걸쳐 10cm씩 움직이며 적어낸 데이터입니다. 책상이 어두운 갈색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합니다. 

“고작 이거한 거니? 하루에 두 번 5cm씩 움직이면서 할 수도 있었잖아? 나보고 이걸 믿으라고?”

이럴 수가. 인성이는 어머니의 말에 상처를 받습니다. 하지만 반박할 수도 없습니다. 귀납에서 데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사실이니까요.

이것이 귀납이 가지는 첫 번째 문제입니다. 귀납에서 데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이요? 하루에 두 번씩 하면 충분한가요? 10cm가 아니라 5cm씩 움직이면 되는 건가요? 하루에 다섯 번 하면 결과가 다를 수 있잖아요. 만약 오류가 5cm 거리가 아닌 1cm에서 나타나는 거였다면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쌓아야 확고부동한 사실에 가까워지는 건가요?

여기서 문득 존재론에서 말한 지하철역의 예시가 떠올랐다면, 훌륭하십니다. 취미로 철학을 즐기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이 문제는 운동의 문제와 같은 맥락입니다. 운동의 문제에서 우리는 1에서 2로 가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1과 0.1 사이에도 숫자로 가득 차있어 도저히 2까지 갈 수가 없다는 거죠. 귀납은 그 0.1을 모아 2로 가려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숫자를 모아도 1에서 2로 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모아도 확고부동한 사실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아요.


두 번째 문제

어머니의 반응은 실망스러웠지만 인성이는 기죽지 않습니다. 인성이가 생각했을 때 그 정도의 데이터면 충분했거든요. 무엇보다도 이 실험을 지켜본 친구가 인성이를 인정했습니다. 친구는 일주일간 매일 책상을 10cm 간격으로 돌며 데이터를 기록한 인성이를 보며 혀를 내두릅니다. 확고부동한 사실에 매달리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미쳐있을 줄은 몰랐죠. 그러다 문득 인성이를 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인성이는 내일도, 내일모레도, 영원히 책상은 어두운 갈색일 거라 믿습니다. 어제 그렇게나 책상을 봤으니 내일도 책상의 색은 당연히 어두운 갈색이겠죠. 그것이 귀납이니까요. 그렇게 인성이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합니다. 내일은 내일의 어두운 갈색이 책상을 채우고 있겠죠?

다음날. 인성이는 그 어떤 걱정 없이 책상을 보러 갑니다. 오늘도 변함없는 어두운 갈색을 보기 위해서요. 그러나 충격적 이게도, 인성이의 앞에 놓인 건 어두운 갈색이 아닌 시뻘건색의 책상이었습니다. 친구가 인성이를 놀리기 위해 빨간 페인트를 발라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귀납이 가지는 두 번째 오류입니다. 다시 한번 귀납을 통한 결과 도출 과정을 봐보죠.


1. 7일 전에 책상의 색은 어두운 갈색이었다.

2. 6일 전에 책상의 색은 어두운 갈색이었다.

   …..

3. 오늘 책상의 색은 어두운 갈색이었다.

- 고로 앞으로 책상의 색은 어두운 갈색일 것이다.


오늘 본 어두운 갈색은 사실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내일도 어두운 갈색임은 어떻게 보장하죠? 오늘의 결괏값이 내일의 결괏값을 어떻게 뒷받침해 주는 겁니까. 오늘과 내일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건가요. 없습니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성이의 친구가 갑자기 빨간색 페인트로 책상을 덮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오늘의 결과는 오늘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 결과가 내일도 같을 거라는 건 우리의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믿음은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귀납은 이용할 가치가 없는 엉터리 방식인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귀납은 현실세계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기반입니다. 우리는 모두 귀납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 잘 살아가고 있는 건 분명하고요. 귀납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저는 내일 초록불이 되면 길을 건널 겁니다. 저는 내일 의심하지 않고 계란프라이를 할 거예요.

중요한 건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귀납은 강력하지만 완벽하진 않습니다. 그걸 알고 귀납을 이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초록불이 되었을 때 핸드폰을 보면서 걷지 않고 좌우를 살피며 걸어야 되는 것만큼이요. 다들 귀납의 오류를 생각하며 차조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귀납은 이 정도면 됐습니다. 귀납의 문제를 직시한 인성이는 이제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합니다. 귀납에 문제가 있다면 다르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 무엇도 책상에 대한 확고부동한 사실을 찾으려는 인성이의 열정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전 10화 제대로 알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