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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강인성 Oct 22. 2023

생각하고 적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안다는 건 무엇인가_인식론

멀찌감치 앉아 책상을 바라보는 인성이. 관찰을 통한 귀납으로는 책상에 대한 확고부동한 사실을 아는데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고작 색 하나도 제대로 알 수가 없었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관찰은 실패했으니 이제 생각을 좀 제대로 활용해 볼 때입니다. 


방법

그전에 먼저 생각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죠. 이 바닥에서 가장 유명한 예시를 가져왔습니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확고부동한 사실을 알아내는 생각입니다


1. 모든 사람은 죽는다

2.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먼저 이 두 문장의 참 거짓을 판별해 봅시다. 어떤가요. 1번 문장은 참인가요 거짓인가요. 당연히 참입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왜 참인지 설명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2번은 또 어떤가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너무나 당연히 참입니다.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선 먼저 참임이 밝혀진 문장들을 가져오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거짓인 문장엔 어떤 게 있을까요?


1. 모든 사람은 병에 걸려 죽는다.

2.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아닌 신이다.


1번 문장은 명백히 거짓입니다. 사고와 노화로 죽는 사람도 많거든요. 사고와 노화라는 반례가 있으므로 1번 문장은 거짓입니다. 2번 문장 역시 거짓입니다. 신이란 판단불가능한 무언가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참임을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거짓된 문장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반례가 있거나, 판명이 불가능하거나. 두 경우에 해당된다면 그 문장은 거짓입니다

이렇게 참 거짓을 판명할 수 있는 문장을 ‘명제’라고 합니다. 그 명제를 어떤 사실을 밝히는데 이용한다면 명제는 ‘전제’가 됩니다. 그 전제를 가지고 도출한 사실을 ‘결론’이라 하고요.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결론이 참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가 참이어야 합니다. 전제가 참이라면 결론도 참입니다. 전제가 거짓이라면 결론도 거짓입니다. 그러면 위의 참인 전제들로 결론을 내봅시다.


1. 모든 사람은 죽는다.

2.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 결론: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뭔가 슬픈 결론입니다만, 어쨌든 나오긴 했습니다. 전제가 참이므로 결론도 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전제가 참인데 결론은 거짓인 경우도 있을까요? 이런 논증은 어떻습니까.


1. 모든 사람은 죽는다.

2.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다.

- 결론: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철학자다.


택도 없는 논증처럼 보이죠? 전제 사이의 논리적 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1번 전제과 2번 전제가 딴 얘기를 하고 있은 거죠. 이렇듯 전제가 참이어도 그 전제들 사이에 관련이 없다면 논증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참인 명제들을 전제로 이용해서 결론을 찾아내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결론이 거짓인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전제가 거짓이거나, 전제들 사이에 연관이 없거나입니다. 

관찰을 이용하여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을 우리는 ‘귀납’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생각을 이용하여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연역’입니다. 이 귀납과 연역이 인식론의 양대산맥입니다. 귀납은 감각기관을 통한 관찰을 이용합니다. 반대로 연역은 생각을 이용하죠. 

연역의 예시를 들어볼까요? 사실 그럴 필요가 없는 게, 지금까지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며 하신 게 바로 연역입니다. 이 책 전체가 연역을 이용해 쓰였다고 할 수 있어요. 시간이 된다면 다시 존재론 파트를 천천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실재의 세계를 밝히는 과정, 없음이 불가능한 과정, 변화란 무엇인지 밝히는 과정 모두가 연역을 통해 해낸 것입니다. 모두 참인 전제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 낸 과정이죠.

자 그럼 다시 인성이의 이야기로 돌아가봅시다. 인성이는 제대로 된 연역을 통해 두 가지를 극복해내야 합니다. 친구의 비판이었던 “뻔한 소리를 하고 앉아있냐.”와 어머니가 했던 “책상의 정령이 책상을 책상답게 만드는 것 같아.”라는 말을 말이죠. 우선 친구의 비판부터 극복해 보도록 합시다. 

인성이는 생각합니다. 만약 연역을 통해 책상의 색을 밝혀낸다면 뻔한 소리를 하고 있냐는 친구의 비판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책상의 색은 책상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니까요. 그러면 일단 책상의 색에 대한 참이 되는 전제들을 모아봅시다. 

일단 이 책상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책상을 만든 업체에 전화를 걸어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호두나무’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참인 전제가 하나 나왔군요. 


1. 내 앞의 책상은 호두나무로 만들어졌다.


그러면 이제 도서관에서 가서 식물학서적을 꺼내 호두나무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봅니다. 호두나무… 호두나무… 찾았습니다. 호두나무는 일반적으로 어두운 갈색을 띤다고 나오는군요. 또 하나의 참인 전제를 찾아냈습니다.


2. 대부분의 호두나무는 어두운 갈색을 띤다.


이제 이 두 전제를 조합해 봅시다.


1. 내 앞의 책상은 호두나무로 만들어졌다.

2.  대부분의 호두나무는 어두운 갈색을 띤다.

- 결론: 그러므로 내 앞의 책상은 어두운 갈색을 띤다.


어떤가요. 최대한 엄밀한 방식으로 전제가 참임을 확인했습니다. 두 전제 사이의 관계도 확실하고요. 이 정도면 의심의 여지없이 결론도 참입니다. 인성이의 표정에서 당당함이 느껴지는군요.


이제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해 봅시다. 어머니의 추론을 반박하는 겁니다. 어머니의 추론 과정은 이러합니다.


1. 책상에는 정령이 깃들어있다.

2. 정령은 사물을 사물답게 만드는 힘이 있다

- 결론: 책상의 정령이 책상을 책상답게 만들었다.


이제 이 추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봅시다. 전제가 참인가요 거짓인가요? 정령은 판명이 불가능한 어떤 무언가입니다. 우리는 책상에 정령이 깃들어있음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하죠. 어떤 확증적인 증거도 없거든요. 판단이 불가능하다면 그 전제는 거짓입니다. 전제가 거짓이므로 결론도 거짓이죠. 인성이의 추론과 어머니의 추론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어머니에게는 죄송하게 되었군요. 인성이의 승리입니다.


첫 번째 문제

이 과정을 옆에서 보고 있던 친구는 이제야 인성이의 말에 납득이 갑니다. 업체에 전화해서 얻은 정보와 식물학서적에서 본 내용을 거짓이라 하기는 힘들죠. 전제 사이의 관계도 명확하고요. 그러니 책상의 색이 어두운 갈색이라는 결론을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인성이는 전제가 참이라는 건 어떻게 확신하는 거지? 생각해 봅시다. 위의 전제가 참임을 연역으로 알아냈나요, 귀납으로 알아냈나요? 

인성이는 책상이 호두나무로 만들어졌음을 책상을 만든 업체를 통해 알아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업체는 그 나무가 호두나무인지 어떻게 알았을까요? 호두나무의 특징들을 파악하고 합쳐서 알아냈겠죠. 그럼 그 호두나무의 특징들은요? 수없이 많은 호두나무를 관찰하여 알아냈을 겁니다. 두 번째 전제인 ‘대부분의 호두나무는 어두운 갈색을 띤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호두나무의 색은 호두나무의 관찰이 없으면 알아낼 수 없죠.

이것이 연역의 중요한 문제점입니다. 참인 전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귀납을 통하지 않은 참인 전제는 없습니다. 책상이 호두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호두나무의 색은 어두운 갈색이라는 것도, 심지어는 모든 사람은 죽고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라는 전제 모두 말입니다. 연역에서 이용하는 전제가 귀납을 통해 참임이 증명된다는 거죠. 그러니 귀납이 가지는 문제점이 연역의 문제점도 됩니다. 귀납이 가지는 문제는 방금 실컷 보고 왔고요. 


두 번째 문제

인성이의 연역을 들은 어머니가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인성이는 마음이 흔들립니다. 어머니에게 너무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무엇보다 책상에 대한 확고부동한 사실은 중요하니까요. 그걸 찾아서 알려드리는 게 진정한 효 아니겠습니까.

그때 어머니가 입을 여십니다. 어머니가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들어볼까요?

“정령이 판단 불가능 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니? 나는 책상에 깃든 정령을 보았는걸?”

인성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습니다.

“예? 무슨 소리하시는 거예요 어머니. 정령은 없어요. 도대체 뭘 보시고 그런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책상 위에 바람을 후 하고 불어보렴. 무언가 뿌옇게 보이지 않니? 그게 바로 책상의 정령이야. 마음을 열고 책상의 소리를 들어보렴. 그러면 정령이 하는 소리가 들린단다.”

기가 찬 인성이는 할 말을 잃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죠.

우리는 판단 불가능한 무언가 들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매년 기일이 오면 제사를 지내고, 사주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죠. 눈을 감고 머리를 감다가 귀신을 느낀 적도 많을 겁니다. 존재론에서 보셨듯이, 무엇이 없다고 말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무엇이 거짓인지 말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정령이 없음을 증명해 내야 어머니의 결론이 거짓임을 밝힐 텐데,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인성이는 절망에 빠집니다. 귀납도, 연역도 모두 실패해 버렸어요. 책상에 대한 확고부동한 사실을 알아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 걸까요? 아니면 애초에 그런 건 없는 게 아닐까요? 눈앞의 책상 자체가 의심스럽습니다. 도대체 저 책상이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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