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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강인성 Oct 22. 2023

내 앞에 진짜로 있나?

안다는 건 무엇인가?_인식론

우리는 세계에 놓여있는 사물들을 관찰하고 생각합니다. 그건 사물에 대한 확고부동한 사실을 알기 위한 행동이죠. 그렇기에 귀납과 연역 모두 두 가지의 전제가 확실하게 참임을 믿고 갑니다.  


1. 세계에 놓여있는 사물이 실제로 있다. 

2. 우리는 그 실제로 있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과연 그럴까요? 귀납도 연역도 명확한 한계를 가지는 걸 보면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귀납과 연역의 전제가 되는 확실한 사실, ‘사물이 실제로 있음’에 대해 의심해 볼 겁니다. 이제 진짜 책상을 제대로 자세히 한번 살펴보죠.


뭐가 있지

제대로 보기 위해선 맨 눈보다 더 좋은 도구가 필요합니다. 아주 성능 좋은 현미경을 하나 가져왔으니 이걸로 봐보죠. 현미경을 통해 보니 나무조직이 보입니다. 가시 같은 것들이 얽히고설켜있는 형태네요. 그냥 봤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요. 현미경의 배율을 더 확대해 봅니다. 나무조직이 아주 작은 점들로 이루어져 있는 게 보입니다. 저 점의 정체는 뭘까요? 좀 더 확대해 보죠. 이제 그 점의 정체가 보입니다. 분자입니다. 희한하게 생긴 구조물이 서로 엉켜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그 구조물들은 무언가의 결합처럼 보이네요. 궁금하니 좀 더 확대해 볼까요? 아 보이네요. 원자입니다. 동그란 점처럼 생겼죠. 정말 작은 점이에요. 그런데 그 점 한가운데에 아주아주 작은 점이 보입니다. 저건 보통 확대해서는 보이지도 않겠습니다. 현미경의 배율을 끝까지 돌려봅니다. 그제야 그 점의 정체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핵입니다. 놀랍도록 작군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핵마저도 하나가 아닙니다. 두 개처럼 보여요. 양성자와 중성자군요. 이 말도 안 되게 작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원자의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텅 빈 공간이 있습니다. 99.999%의 텅 빈 공간이요.

현미경을 옮겨봅니다. 책상 위의 맥북, 키보드, 손톱깎기, 제 손가락 발가락, 물, 공기 모두 봅니다. 모두 같습니다. 모두 원자와 그 가운데의 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원자와 핵 사이의 99.999%는 빈 공간이고요. 좋습니다. 이제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책상에 대해서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책상을 봤죠. 그것도 아주 자세히요. 대충 보는 것보다는 자세히 보는 게 더 확실한 정보를 주니까요. 그랬더니 보인 건 원자였습니다. 그것도 99.999%는 빈 공간으로 이루어진 원자요. 이 세계의 모든 사물이 그 원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 제 앞에 있는 건 도대체 뭘까요. 아래 세 가지 중 골라보세요.

1. 책상

2. 원자

3. 빈 공간

1번을 고르신 분은 여전히 믿음이 있으신 분입니다. 당연히 책상이죠. 뭘로 구성되어 있는지가 중요한가요. 어떤 생김새를 지녔고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가 중요하죠. 현미경 없이는 보이지도 않는 원자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2번을 고르신 분은 상당히 신중한 분입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실제로 책상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 거니까요. 당연히 우리 앞에 있는 건 원자의 결합체이죠. 겉모습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더 자세히 볼 수록 사물의 진짜 모습이 보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3번을 고르신 분은 뭐랄까, 삐딱하신 분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모든 사물은 원자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그 원자는 99.999%의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그렇다면 원자란 결국 빈 공간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요?

물론 세 가지 중에 하나의 확실한 답이 있는 건 아닙니다. 세 가지 모두 어느 정도 맞고 어느 정도 틀리죠.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는 우리 눈앞에 있는 사물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책상은 그 형상으로 모두 정의될 수 없습니다. 또한 원자의 합이 책상의 전부도 아니죠. 원자는 99.999%의 빈 공간입니다. 하지만 그 빈 공간은 진짜 빈 공간이 아닙니다. 전자기력이라는 에너지로 가득 차있죠. 가장 작아 보이는 핵마저 더 분열될 수 있습니다. 이런 지경이니 어쩌면 사물의 참된 모습을 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 못된 걸 지도 모릅니다.


뭘 보고 있지

이제 ‘본다’라는 행위가 어떤 건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다’는건 뭘까요?

우선 보려면 빛이 있어야 합니다. 집에 있는 형광등을 켜봅시다. 아, 누가 요즘 형광등을 쓰나요. LED등을 켜봅시다.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LED등에서 광자가 발사됩니다. 초속 14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발사된 광자가 책상에 닿죠. 그러면 전자기력으로 가득 찬 책상이 광자를 튕겨냅니다. 튕겨져 나온 광자가 사방으로 뻗어나갑니다. 그중 일부가 저의 눈으로 들어옵니다. 

눈에 들어온 광자가 망막에 닿습니다. 그 광자는 망막 위에 책상의 상을 띄웁니다. 마치 거울처럼요. 그러면 제 망막엔 책상과 동일하게 생긴, 광자로 구성된 상이 하나 생깁니다. 이제 망막과 연결된 시냅스가 반응합니다. 그 반응은 시냅스의 전기자극으로 이어지죠. 그 전기자극은 저의 전두엽으로 향합니다. 그러면 전두엽 안에 있는 뉴런들이 그 신호를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아 이런 상이 띄어졌구나. 뉴런은 다시 광자가 망막에 띄운 상과 동일한 형태의 상을 띄웁니다. 그 순간, 우리는 생각합니다. 

“내 앞에 책상이 있구나!” 

이 과정은 모든 감각기관이 동일합니다. 촉각은 우리 피부의 촉각수용체가 보내는 반응을 시냅스가 받아 뉴런으로 보낸 후 뉴런이 다시 해석하여 재구성한 반응입니다. 후각도, 미각도, 청각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광자가 없다면, 망막이 없다면, 시냅스와 뉴런이 없다면 눈앞의 책상을 보지 못합니다. 애초에 눈앞에 책상이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죠.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건 뭔가요?


1. 진짜 책상

2. 뉴런이 전두엽에 띄어주는 책상의 상


혹시 아직 1번이 답이라 생각하시나요? 애석하게도 이건 정답이 정해져 있습니다. 2번입니다. 우리는 진짜 책상의 모습을 절대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건 뉴런이 받은 전기신호를 해석하여 띄어주는 상입니다. 그걸 뛰어넘는 실제를 본다는 건 인간을 초월하는 행위이지요. 

문제는 우리의 시냅스와 뉴런 구조가 모두 조금씩 다르다는 겁니다. 그 말인 즉 내가 보는 책상의 상과 내 친구가 보는 책상의 상이 다르다는 거죠. 서로 다른 상을 보면서 확고부동한 사실을 찾으려 하고 있으니 될 리가 없습니다. 

이제 다시 책상을 봐봅시다. 지금까지 책상은 제 앞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걸 보고 있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건 틀렸습니다. 제가 보고 있던 책상은 제 머릿속에서 보여주는 책상이었습니다. 제가 만지고 있는 책상은 제 머릿속에서 만지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책상이었죠. 그렇게 머릿속에 띄어진 상을 ‘관념’이라고 합니다. 그 관념을 머릿속에서 띄워서 인식하고 종합할 수 있게 하는 주체, 그 주체를 ‘의식’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존재론에서 두 가지의 세계를 탐구했습니다. 형상을 가진 개별자가 있는 현상의 세계. 본질을 가진 보편자가 있는 실재의 세계. 이제 세계를 하나 더 늘릴 때입니다. 현상과 실재는 모두 우리 밖에 펼쳐진 세계입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 안에 펼쳐진 세계가 있으니 그게 ‘의식의 세계’입니다. 개별자도 보편자도 모두 우리 안에서 의식이 보여주는 무언가였던 거죠. 자 이제 책상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1. 감각기관을 통해 관찰하여 귀납으로 아는 형상의 세계

2. 생각을 통해 연역으로 알 수 있는 실재의 세계

3.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관념이 있는 의식의 세계


만약 정말로 3번이라면 큰일입니다. 책상이 의식의 세계에 있는 거라면 우리는 책상에 대해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갈색이고,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50KG이다 따위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건 어차피 제 의식 안에 있는 책상에 불과한걸요. 나에게만 통하는 정보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걸 보고 있으니 기본적인 합의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책상에 대한 확고부동한 사실을 찾는 게 불가능해지죠.

정리를 좀 해보죠. 우리는 책상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책상은 99.999%의 빈 공간이었습니다. 또한 책상은 우리 의식 안의 관념에 불과했습니다. 우리가 책상이라 생각하고 본 건 아무것도 아니었죠. 이제 세상은 엉망진창이 될 준비를 마쳤습니다. 모든 사물이 99.999%의 빈 공간인 데다가 그걸 나만 아는 세상에서 보고 있었으니 엉망진창일 수밖에요.

귀납도 실패했습니다. 연역도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거기다 관념까지 끼어드니 문제가 너무 골치 아파집니다. 정녕 모두가 동의할만한 확고부동한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애초에 확고부동한 사실 자체가 없는 건 아닐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찾았다고 생각한 확고부동한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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