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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넉참이 neokcham Dec 07. 2024

가장의 무게란

역마살과 함께 한 서울살이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4년 동안 이사를 가지 않았던 건, 온전히 내 게으름 때문이었다. 회사와 집이 가까웠고, 약속이 생겨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에도 서울에서 이 정도 시간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저렴한 보증금과 월세!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 이 가격에 이 정도 크기와 컨디션의 집을 못구할 게 뻔했다. 당장 큰 보증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보증금을 낮춰 월세를 높이려고 해도 매달 나가는 월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야 월급이 조금 올라 한두 푼 적금을 넣을 수 있게 됐는데, 이 돈까지 월세로 다 지출해 버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사를 위해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것 자체가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이 집에서 얌전히 숨죽이고 살았다. 


그러다 올해 초에 신점을 보게 됐는데, 내가 20대에 역마살이 있어서 자주 이동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4년째 같은 직장과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거라고 했다. 심지어 지금 회사가 내 운을 갉아먹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무당은 나에게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 사이엔 이사를 가는 게 좋겠다고 했고, 만약 이사를 갈 수 없다면 집에 있는 이불보라도 바꿔야 내가 버틴다고 했다. 이후로도 몇 번의 사주와 신점에서 같은 얘기를 들으니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작은 변화를 줘 보려고 했다. 당장 이사를 갈 순 없으니 집안 구조도 바꿔보고, 나름 새로운 환경에 나를 밀어 넣어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이사를 가야겠다는 내 마음에 불이 한번 지펴지니 이런 작은 변화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앞선 여러 불편함도 다시 떠올라 이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고, 나는 마침내 이사를 결심했다.


이사를 한다는 건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다. 내 재정 상태도 고려해야 하고, 부동산에 연락도 돌려야 하고, 집도 보러 다녀야 하고, 계약서도 써야 하고, 지금 사는 집도 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새 집에 도시가스 연결, 인터넷 설치, 입주 청소, 짐 정리까지 해야 한다. 이 험난한 과정을 혼자 해낼 수 있을까? 부모님은 부산에 계셔서 매번 누가 대신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나는 '나는 1인 가정이라 내가 집에 가지 않으면 가정이 무너진다'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야근을 해야 할 때 농담으로 던지면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어필을 하기 좋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게 농담만은 아닌 게, 내가 집에 없으면 우리 집이 무너진다는 건 정말 사실이다. 매일 나오는 빨래와 설거지, 청소를 내가 아니면 누가 감당한다는 말인가? 야근을 한번 할 때마다 쌓여가는 집안일에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내가 이 집의 가장이니까, 어쩔 수 없이 모든 건 혼자서 해내야 한다. 집안일도 내 몫, 이사를 갈 집을 구하는 것도 내 몫, 집 계약에 문제가 생겨 해결하는 것도 내 몫, 힘들어서 버티는 것도 내 몫. 가장의 무게란, 정말 무겁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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