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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넉참이 neokcham Nov 30. 2024

막상 살아보니 보이는 것들 2편

자취방에서  가스버너로 요리하는 여자

이 집의 문제는 녹물뿐만이 아니었다. 


이사를 온 날은 한겨울, 서울의 12월이었다. 부산에서만 살았던 나로서는 서울의 겨울 추위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부산에선 한 번도 롱패딩이나 목도리 같은 걸 둘러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추위를 타긴 해도, 부산은 그렇게까지 춥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서울에 오자마자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롱패딩 없이는 다리가 날아갈 것 같았고, 목도리를 안 하면 목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리하여, 상경 첫날밤에는 기모 양말까지 주문했다. 원체 답답한 걸 싫어해서 밤에 잘 때조차 두꺼운 옷은 잘 입지 않는데, 서울에서는 기모로 온몸을 휘감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웠다.


그렇게 추운 겨울 날, 이사 온 집은 마치 찜질방의 얼음방 같았다. 집주인 말로는 이전 세입자가 꽤 오래 집을 비워둬 보일러를 틀지 않아 집이 차가운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였는지 아무리 보일러를 돌려도 집은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다. 부산에서 가져온 내 전기장판은 얼음골같이 차가운 방바닥에서 무용지물이었고, 처음 써보는 전기보일러는 온도를 50도까지 올려도 효과가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기보일러는 가스보일러처럼 훈기를 유지해주지 못한다고 했다. 가스보일러만 써왔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일주일 내내 24시간 보일러를 틀고 나서야 집이 조금 따뜻해졌고, 매 겨울을 이렇게 보내다 보니, 나는 이제 겨울이 다가오는 게 무섭다. 빵빵한 보일러로 치솟은 엄청난 관리비는 덤이었다.


추운 날씨만큼 내 통장에도 매번 찬바람이 불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받은 내 월급에서 월세와 관리비, 생활비를 제하고 나니 매달이 마이너스였다.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조금씩 쓰다 보니 어느새 통장이 바닥났고, 매달 아슬아슬하게 생활비를 끌어다 쓰는 형편이 됐다. 4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지만, 모아둔 돈은 거의 없다. 얼마 전에 대표님과 식사 자리에서 연봉 얘기를 꺼냈지만, 대표님은 웃고 넘어가버렸다. 웃을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생활하다 보니 매번 밖에서 사 먹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집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배달 음식이나 외식보다 내가 만든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질 정도가 됐다. 하지만 문제는 이 집에 설치된 인덕션이었다. 아무리 물을 오래 끓여도 잘 끓지 않았고, 이사 온 첫날 라면을 끓이려다 30분이 지나도록 물이 끓지 않아서 라면 먹는 걸 포기했다. 결국 나는 2구짜리 가스버너를 구매했다. 그 이후로 나는 베란다에 가스버너를 놓고 요리를 한다. 분리수거함과 빨래 건조대를 양옆에 두고 중앙에 버너를 놓고 쪼그려 앉아 요리하는 내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얼마나 가엾어 보이겠는가? 한 번은 인덕션이 고장이 났나 싶어 수리기사를 불러봤지만, 10년이 넘은 인덕션이라 성능이 떨어질 뿐이지 고장이 난 건 아니라고 했다. 집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고장이 아니라면 그냥 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말을 듣고 난 인덕션을 완전히 봉인해 버렸다. 그렇게 나는 4년 동안 인덕션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이 집에서 잘 살아보려고 이렇게 꾸며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이 가지 않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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