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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벅스 Oct 29. 2021

린다의 염치없는 기도

린다 시리즈 떼쓰는 기도

 예배를 드리는 곳을 방문하게 되면 늘 기도를 한다. 특별히 종교를 가지지 않아 태연하게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곳이니 신자가 아니더라도 두 손을 맞대고 제법 진지하게 드리는 기도를 기꺼이 받아 주실 거라 생각했다. 품고 있던 소원을 당당히 요구하듯 차례차례 말한다. 이런 일은 가는 곳마다 늘 잊지 않고 한다. 꼭 들어달라며 빤히 쳐다보고 마지막으로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하고 나온다. 이런 것을 협박이라 해야 하나. 소원을 들어줘야 하는 이유도 말하지 않고 무턱대고 들어달라는 하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욕심 껏 기도를 하고 의기양양하게 문을 나선다.      

 

 유럽 여행은 성당을 많이 방문한다. 가는 곳마다 기도를 드렸다. 진실한 신자들은 제 욕심을 채우려는 기도를 들어줄 리 없다고 딱 잘라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감이 있다. 하나님과 성경의 최고의 가르침은 사랑 아니던가. 당당히 읊조리는 기도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 줄 거라 믿었다. 모든 것을 덮어주고 감싸주는 아가페적 사랑이 나에게도 통할 거라 생각했다.      

 

 날씨 좋은 봄날 수덕사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남편에게 그곳을 보고 가자고 했다.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 나혜석과 일엽 스님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4월의 산은 한지에 연둣빛 물감이 번진 듯하다. 대부분 유명한 사찰은 산속에 있어 평일에는 고즈넉한 기분으로 오를 수 있다. 평소와 달리 발걸음도 느릿하다. 대웅전에 앞에 서자 괜스레 종교적 기분으로 엄숙해졌다.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늘 하던 대로 했다.     

 

 나의 기도는 이것저것 해달라고 떼쓰는 소리 없는 외침이다.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내 것으로 해달라는 기도다. 그날도 대웅전의 부처님은 내 머리 위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기도를 간절히 한 후 머리를 들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빤히 바라보았다. 갑자기 멍한 기분이 들었다. 다정하게 활짝 웃어주는 눈빛은 간데없고 노려보는 것 같았다. 한겨울 맨살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 같은 한기가 느껴졌다.      

 

 법당을 나오는데 옷자락이 어딘가 걸린 듯하다.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를 돌아봐야 하거늘. 내가 잘살고 있는지 잘 살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아야 하는지 달라져야 하는지. 꽁꽁 싸맨 나의 치부를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분 아닌가.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 되고 말았다.     


 신에게 까지 주고받기를 해야 한다면 야박한 말인지. 하지만 주는 것도 없이 달라기만 한다면 신도 너무 손해 나는 일이 아니겠는가. 각박하다고 말해도 할 수 없다. 정상적인 거래가 성사되려면 최소한 거래를 할 만한 것을 가져가 기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신이 좋아하는 사랑과 자비를 베푼 일들을 들이밀며 받을 것을 요구해야 그나마 거래가 되지 않을까 한다. 뭐든지 받으려고만 한다면 어린아이가 자신이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갖기 위해 길거리에 드러누워 울고 떼쓰는 행동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과 자비를 베풀기는커녕 남들에게 욕먹지 않을 만큼만 지내면서 빚쟁이 독촉하듯 기도를 했다. 이런 것을 두고 상도덕도 없고 염치없는 행동이라 하지 않을까 한다. 한 술 더해 악덕 사채업자처럼 원금보다 몇 배의 이자를 더 내라고 하듯 욕심의 가짓수는 늘어났다. 내려놓으면 가벼워야 하거늘 욕심을 쏟아 내고 내려오는 길이 가볍지 않다. 복과 운은 비는 것이 아니라 덕을 쌓고 쌓아 생기는 것이라 했던 말을 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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