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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LL Apr 21. 2024

이 드라마가 재미있나요?

미쳤나보다. 기계식 키보드를 사서 미쳤나 보다. 내 직업은 드라마 영화 연출팀 막내다. 이 하얀 페이지를 통해 업계에 있는 내 주변사람 이야기를 가감있이 쓰려고 한다.(나는 신변이 안전하고 싶습니다.) 2020년에 나는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던 작품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너무 재밌다며 매주 내게 연락을 했다. "좋겠다". 야 진짜 재밌어!". "싸인 좀 받아주면 안되냐" 등등.. 뿌듯한 마음으로 어깨뽕이 올라갈 틈도 없이 분노에 눈썹 끝이 세트장 지붕을 뚫고 올라갔다. "얘들아 제발 드라마 소비하지마. 드라마는 정말 나쁜 거야 정말 정말!" 그 때 나는 너무 힘들었다. 물론 지금은 노동이 미화되서 너무 즐거웠고 시즌2를 한다면 꼭 합류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감독님이 너무 보고싶고. 배우들도 너무 보고싶다. 언니오빠 사랑해요.


영화, 드라마의 제작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일단 제작을 들어가기 전에 대본을 가지고 편성을 또는 투자를 받아야 한다. 그럼 이제 진짜 제작을 할 수 있다. 촬영 나가기 전에 하는 과정을 프리프로덕션이라한다. 작가와 대본수정, 배우 캐스팅(주인공은 편성 투자 과정에서 먼저 되는 경우도 있다), 스태프 세팅, 촬영장소 헌팅, 미술 소품 및 세트제작, 의상분장미용 컨셉회의, 콘티작업, 촬영계획표짜기 등 정말 많다 세분화 하면 내일까지 키보드 두드리고 있을까봐 무섭다.


3단계중 두번째 단계는 프로덕션이다. 실제로 카메라와 조명기 그리고 간식있을 듯 말듯한 티테이블을 들고 촬영장으로 나가는 것이다. 프리프로덕션이 전투전 탐색과 도발의 과정이라면 프로덕션은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이다. 스파르타쿠스를 외치며 100명이상의 병력이 한 곳으로 집결한다. 제작팀은 아침 촬영시 조식부터 갖다 나르고 감독님의 컨디션을 확인한다. 연출팀은 오늘 찍을 분량의 촬영 계획표를 나눠주고 촬영분량에 대한 준비가 되었는지 현장에서 다시 한번 체크하고 촬영을 진행한다. 촬영팀은 카메라를 꺼내 촬영감독 앞에 카메라를 세팅하고 연출감독 앞에는 모니터를 세팅한다. 조명팀도 분주하게 조명기 다리를 뻗치며 카메라 앵글에 맞춰 세팅한다. 배우 또한 일찍와서 분장을 하고 의상을 갈아입는다. 연출팀원중 한 명은 분장팀에 붙어서 몇 분이나 더걸릴지 눈치를 보는데 사력을 다한다. 너무 일찍 끝나서 배우가 기다려도 옳지 않고 늦게 끝나서 연출감독과 스태프들이 기다려도 옳지 않다. 맞다 눈치 챘겠지만 현장엔 옳지 않은일 투성이다. 그렇게 모여 충분히 리허설을 하고 촬영에 들어간다.


3단계중 세번째 단계는 포스트 프로덕션이다. 보통 후반작업이라 하는데 이건 뭐 전투 후 폐허가 된 상황을 파악하고 다시 건립하는 일이다. 촬영 클립을 이어 맞춰 편집을 하고 촬영중인 감독은 현장을 오가펴 컨펌 하고 상황이 안 좋으면 컨펌 단계가 늘어나 경우에 따라 제작사 컨펌, 작가컨펌도 거치는 걸 봤다. 이럴경우 당연히 후반작업시간은 늘어난다. 요즘은 CG컷들이 많고 CG팀에서 받아야 하는데 마감시간에 받아보기가 카페알바 제 시간에 마감하는 것보다 어렵다. 이런날 대화의 대부분은 "몇시까지 주실 수 있는데요" "몇시까지 드릴게요" "몇시까지 받을 수 있는데요" "몇시까지 최대한 보내볼게요" 다. 어쨌든 편집이 끝나면 믹싱을 통해 사운드를 입힌다. 이때 촬영 환경이 좋지 않았던 부분들을 현란한 기술로 다듬고 현란한 기술이 도저히 안통하면 배우를 녹음실로 불러와 후시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음악감독님이 음악을 입힌다. 종합편집실이라는 종편실에서 방송으로 나가기 전 최종본을 다 같이본다. 정말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이 때 덜 된CG컷이나 문제가 있는 컷들이 발견되면 갈아끼우고 수정하는 등 몇시간이 꼬박 걸린 적도 있다. 옳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제작부는 이런 과정을 하는 동시에 예산 정리, 정산 등 영수증 지옥에 머물게 된다. 옳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세 가지 과정을 거지고 나면 티비나 OTT플랫폼에서 볼 수도 있는 드라마가 완성된다. 전에 몇년 정도 시나리오를 쓰며 느꼈는데 영화화 되지 않는 건 시나리오가 아니고 방송에 온에어 되지 않는 건 드라마가 아니다. 그러니 제작 후 어딘가에 내보내지 않으면 저 세가지 단계를 다 거쳤다고 해도 그건. 옳지 않은 무언가일 뿐이다. 다시 "얘들아 제발 드라마 소비하지마. 드라마는 정말 나쁜 거야 정말 정말!"로 돌아가서 이야기 하자면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던 건 절대 아니다. 힘들기에 재밌고 즐거웠던 일도 많고 옳지 않은 일을 옳게 해냈기에 성취감을 만끽한 일도 많다. 단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눈 앞에는 펼쳐지는 일들이 많다. 죽을 것 같은데 촬영이 끝나고 내일 촬영을 준비하고. 죽여버리고 싶은데 같이 일하다가 눈이 맞고(내 얘기 아님). 저 새끼 저거 왜그러지 싶다가도 이미 함께하고 있고. 이거 정말 옳지 않다. 이런 드라마가 재미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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