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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니토끼 Sep 03. 2024

나의 인생영화 1

인생은 아름다워

고등학교 때 조금 독특한 친구가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H.O.T나 젝스키스에 열광하던 그 시절,  친구는 이연걸을 좋아했다. (심지어 결혼하겠다고까지 함. 진심으로.)

‘스크린’이나 ‘키노’ 같은 영화잡지를 매달 사 보았고, 유럽 축구를 좋아했다. (다 쓰고 보니 정말 독특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영업했다.

나는 자꾸 H.O.T를 보여주었고, 녹화한 비디오테이프까지 안기며 꼭 보고 오라고 했다. 나의 엄청난 노력(?) 덕분에 영업에 성공했고 그 친구는 나보다 더한 덕질을 하게 되었다.

반대로 나는 이연걸도, 유럽 축구에도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같이 이연걸 영화도 보았고, 유럽 축구도 흥미진진하게 친구가 계속 설명해 주었지만 재미가 없었다.


어느 날 친구가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인생은 아름다워?’

그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지방소도시 극장 중에서도 정말 작은 극장이었고, 토요일 오후인데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잘 생긴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탈리아 영화라는 것도 생소했다.


처음에는 “안녕하세요, 공주님? “이라는 오글거리는 대사를 자꾸 날리는 머리숱 없는 주인공 아저씨에게 빠져들지 못했다. 그러다가 귀도와 도라가 결혼을 하고, 사랑스러운 조슈아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너무 예쁘게 보이기 시작했다.


유대인인 귀도와 조슈아는 나치에게 붙잡혀 수용소에 끌려가게 되는데 아들을 두렵게 하고 싶지 않았던 귀도는 1000점을 따면 탱크를 받는 게임이라고 조슈아를 속인다. 점수를 딸 때까지 절대로 들키지 않고 숨어있어야 한다고.

끔찍한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하고 돌아오면 모두 지쳐서 눕기 바빴지만 귀도는 밝은 모습으로 조슈아에게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해 준다.

매일 숨어서 아빠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기다리는 사랑스러운 조슈아.


마지막에 결국 나치에게 붙들려 총살당하게 되는 귀도는 숨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조슈아를 위해 우스꽝스러운 발걸음으로 걸어간다.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있다면 죄송)


영화 속에 이렇게 빠져드는 경험은 처음이었고 앞으로 이보다 더 좋은 영화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그 친구와 종종 영화를 보러 다녔다. 친구가 소개해 주는 영화들은 어떤 건 지루하고 난해하기도 했지만 친구가 아니었다면 절대 보지 않았을, 좋은 영화들도 접할 수 있었다.


그 후에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났지만 역시 나의 최고의 인생영화는 아직까지도 <인생은 아름다워>이다.


가슴아팠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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