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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Aug 05. 2022

월평이면 족하지게

3 손자와의 시간은 속절없이 빠르구나

왕 할망은 한참 쓰다듬어 주다가 말했습니다.   

“학교는 재밌나?”

“이제 초등학교 다니는 형아니까 씩씩하게 다녀야죠. 이건 할머니가 보내준 돈으로 산 공룡 열쇠고리예요.”

불을 뿜는 공룡이 그려진 열쇠고리가 책가방에서 달랑거렸습니다. 솔이의 조잘거리는 말소리에 왕 할망은 마음이 누그려졌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화숙 동생에게 조금 말이 심했던 것 같았습니다. 

‘아, 몰라. 그러게 내 화를 돋워 왜?’

왕 할망은 냉장고를 열고 쓱 둘러보았습니다. 솔이가 온대서 쟁여놓은 반찬거리가 가득했습니다. 왕 할머니는 뭐든지 척척 만들어서 나누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동상, 출출하지? 같이 먹게 건너와.”

 눈을 뜨자마자 전화기를 잡고 동생들을 부르기 바빴습니다. 한참을 먹고도 가는 길에 봉지가 넘치도록 바리바리 싸 주었습니다. 화숙 할머니도 손이 컸습니다. 왕 할머니는 손자와 대화하는 사이사이 화숙 동생이 떠올랐습니다.   

“난 긴 생선! 생선!”

 솔이가 손을 넓게 벌리며 말했습니다. 왕 할머니는 실하고 살이 많은 갈치를 자박자박하게 졸여서 손주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왕 할머니는 냉장고를 열고 가장 큰 놈을 턱 꺼내었습니다. 무를 탁탁 썰고, 간장 양념에 맵지 않게 톡톡 고춧가루를 섞었습니다. 

탁탁 탁탁탁! 

 자른 갈치를 통에 담고 양념을 휙 부었습니다. 이제 한소끔 끓여내면 되었습니다. 솔이는 왕 할머니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었습니다.  

“할머니? 저기 걸려있는 사진이 할머니예요?”

왕 할머니는 젊은 시절 자기의 사진을 가리키는 솔이를 귀엽게 바라보았습니다. 

“용케 알아보았구나. 나지 그럼.”

“와, 지금은 저 얼굴에 주름만 있어요. 하나도 안 늙었어요.”

솔이의 귀여운 말재간에 왕 할머니는 오랜만에 웃었습니다. 영감을 오 년 전에 보내고 웃음을 거의 잃어버린 왕 할머니이었습니다.  

“하나도 안 늙고 주름만 있구나. 참 다행이로구나.”

이번엔 솔이가 게이트 볼 채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이건 무슨 막대기예요?”

“할미가 곧 시합을 나 가거든. 게이트볼을 치는 거란다.”

“게이트볼이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왕 할머니는 하얀 종이에 게이트 볼 장을 그렸습니다. 세 개의 작은 게이트를 그리고 볼을 치는 할머니의 모습을 젓가락처럼 그렸습니다. 

“진짜 이런 걸 한다고요? 너무 궁금해요. 보여 주세요.”

솔이는 할머니의 허리에 폴짝 매달려 졸랐습니다. 보기보다 무거운 솔이의 덩치는 왕 할머니의 허리를 짓눌렀습니다. 왕 할머니는 잠시 버티다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려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솔이는 놀라서 단숨에 밖으로 달렸습니다. 학교에서 안전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솔이는 뛰면서 생각했습니다.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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