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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Jul 21. 2022

월평이면 족하지게

1 이것도 딱딱 못 맞춰!

따스한 햇살이 돌담 사이를 비춥니다. 감나무는 며칠 사이에 잎이 더욱 영글었습니다. 마을 다목적 회관 앞으로 사람들이 모입니다. 오늘따라 마을은 아침부터 시끌벅적합니다. 마을 이장이 목청을 가다듬고 말을 시작합니다.

  “아침부터 나오시라 해서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게이트볼 시합 준비는 잘 되고 있죠?

 “치.”

 왕 할망은 이장의 말에 시큰둥합니다. 이장은 눈치를 슬쩍 보다 서둘러 말을 합니다.  

“오늘 우리 돌담에 벽화 그려주실 분들, 예쁘게 그려 주세요.”

 마을 할망은 왕 할망을 깡 언니라고 부릅니다. 성이 강 씨이긴 하지만 그보다 힘이 넘치는 걸음걸이 때문이에요. 많은 나이에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탄탄한 팔과 다리는 월평마을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바이지요.

  월평마을이 범죄가 없는 마을이 된 것도 왕 할망의 역할이 컸습니다. 마을에 어떤 남정네보다 왕 할망이 보초를 서는 날이면 마을 전체가 편안했습니다. 누구도 얼씬 못할 만큼 짱짱하게 마을을 휘젓고 다니는 왕 할망이었습니다.

  “게이트볼 선수 다섯 분 외 후보자분들은 지난번처럼 각자 연습하여 주시고요. 저를 포함해 나머지 네 분은 며칠 안 남았으니 더욱 열심히 뜁시다!”

  옥춘, 삼자, 화숙 할망이 함께 눈을 맞추려는 때, 왕 할망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습니다. 화숙 할망은 그러든 말든 하고 싶은 말을 했습니다.

  “공이 왜 이렇게 딱딱 안 맞는지 원.”

  왕 할망이 듣자마자 참지 않고 말을 받았습니다.

  “연습이나 제대로 나오고 말을 해,”

   시끌시끌한 가운데 왕 할머니의 목소리가 가장 큽니다. 4.3 사태 때 월평마을에 들이닥친 응원대에 맞섰던 왕 할망입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보초 설 때랑 비교하면 게이트볼은 쉬운 편인데 이상하게도 공이 마음대로 가지 않아 속상합니다. 뒤숭숭한  분위기에 이장님은 빨리 회의를 끝내는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 월평마을 돌담이 새로 태어나는 날이죠. 어떤 그림이 돌담에 그려질지 한껏 기대가 되는구먼요.”

  이장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 할망은 화숙 할망에게 다짜고짜 삿대질을 했습니다.

  “그림도 그리고, 게이트볼도 친다 하고, 만감도 봐야 하고. 몸이 몇 개나 돼?”

  “다 월평마을이 잘 되자고 하는 거지. 내가 여러 개를 하려니 얼마나 몸이 힘들겠어. 언니는 서운하게 말을 그렇게 해?”

  “뭘 서운해? 만감은 자식들한테 하라고 하면 되지. 그리고 연습을 해야 시합을 이기든지 할 거 아냐! 넌 그 욕심 때문에 남편이 일찍 가 버린 거야!”

  “뭐라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사람들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왕 할망을 뜯어말리느라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서운한 화숙 할망은 토라졌습니다. 왕 할망은 꽃바지를 펄럭이며 등을 돌렸습니다.  화숙 할망이 나가고, 회관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화숙 할망은 벌건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모인 회관에서 그렇게 심한 말을 하다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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