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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Aug 08. 2022

월평이면 족하지게

4 우리 싸움도 칼로 물베기네

다행히도 한 할머니가 돌담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솔이는 달려가서 할머니의 팔을 잡고 끌었습니다. 팔로 잡고 있던 붓이 흔들리자 그리던 수국의 모양이 흐트러졌습니다. 

 화숙 할망은 남편을 위해 그리던 수국이 망가지니 속이 상했습니다. 숨을 겨우 고르고 헉헉대며 솔이가 말을 했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못 일어나요. 제발 도와주세요.”

“그게 무슨 말이니? 차근차근 말해 보아라.”

“나 때문이에요. 내가 게이트 볼 장에 데려가라고 할머니한테 매달렸거든요.”

 화숙 할망은 게이트볼이라는 소리에 왕 할망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얼핏 손주가 올 기대로 들떴던 왕 할망의 환하던 얼굴이 겹쳤습니다. 화숙 동생은 아까의 서운했던 일이 떠올라 잠시 망설였습니다. 

“저기 저, 이거 완성 안 하실 거예요?”

 돌담에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화숙 할망은 수국을 한번, 아이를 한번 보다 냅다 아이의 손을 잡고 달렸습니다. 

“성님!”

“쳇! 여긴 뭣 하러 왔는가. 가서 그림이나 그리게나.”

 화숙 할망은 왕 할망의 몸을 살살 들어 소파에 앉게 했습니다. 깡 마른 왕 할망은 화숙 할망이 들을 만했습니다.

 왕 할망은 화숙 할망에게 말을 할까 잠시 망설이며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습니다. 삐끗한 허리에 찰 복대를 화숙 할망이 들고 왔습니다.

“자, 허리 좀 펴보셔요.”

왕 할망은 어색하게 허리를 펴고 화숙 할망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복대가 허리를 받쳐주니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솔이였던가? 아까는 어디서 봤다 했지.”

“할머니 감사해요. 네. 솔이 맞아요.”

솔이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습니다. 화숙 할망은 갈치조림을 팍팍 끓여서 솔이 앞에 주었습니다. 매콤 달달한 향이 주방에 퍼졌습니다. 

“성님도 좀 드시려오? 갈치조림은 내가 더 잘하잖소.”

“치, 다 내한테 배워 놓고는 무슨.”

“형님한테 배운 게 그거 하난 가요? 같이 산 세월이 얼마예요.”

 왕 할망은 솔이를 사이에 두고 화숙 할망과 멋쩍은 웃음을 주고받았습니다. 그제야 왕 할망은 화숙 할망이 그림 그리는 것을 누구보다도 기다린 것을 떠올렸습니다. 

“수국은 다 그렸는가?”

“그 사람도 기다려주겠죠. 성님 일인데.”

"솔이가 방해를 했군 그래. 그렇게 기다린 일인데."

왕 할망이 허리를 찬찬히 피며 말했습니다. 

“내가 벌을 받았나. 괜히 자네 마음 심란하게 했다고 허리가 다쳐 뿐내.”

화숙 할망이 자글자글 끓여낸 갈치조림 냄새가 온 집을 가득 채웠습니다. 냄새만 맡아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솔이는 킁킁거리다 밥을 크게 한 숟가락 떴습니다. 화숙 할망은 두툼한 가치 살을 찬찬히 발라서 솔이의 밥공기 위에 올려주었습니다. 양 입가에 양념이 묻는 줄도 모르게 솔이는 밥을 한 그릇 맛있게 비웠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준비하고 그림 할머니가 끓여줘서 더 맛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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