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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Aug 09. 2022

월평이면 족하지게

5 나도 주장시켜줘!

 6월인데 벌써 한여름이 온 것처럼 날이 무덥습니다. 게이트볼 장에 아침부터 모인 넷 중에서 삼자 할망만 신났습니다. 1번 게이트를 시원하게 통과하고 공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가니 흥겨운 노래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삼자 할망의 노랫가락을 들으며 화숙 할망이 공을 노려 보다 스틱으로 딱 쳤습니다. 1번 게이트를 퉁 치고 빗겨나갔습니다.  

“더 살살 쳤어야죠. 할머니!”

 솔이의 훈수에 할머니들은 깔깔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화숙 할망도 시원하게 1번 게이트를 치고 나갔습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시합날도 이렇게만 맞아줬으면.’

틱! 

왕 할망이 솔이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스틱으로 공을 톡 건드렸습니다. 기운 없는 왕 할망처럼 공이 천천히 굴러갔습니다.

“1번 게이트를 통과했습니다. 짝짝 우리 할머니 최고!”

솔이는 팔을 쭉쭉 뻗으며 할머니를 아낌없이 응원했습니다. 

“이제 시합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성님 괜찮겠소?”

 화숙 할망은 왕 할망을 걱정하지만, 왕 할망은 무뚝뚝하게 손사래를 쳤습니다.   

 삼자 할망은 게이트볼 박사가 다 되어 갔습니다. 강정팀의 지난 시합 영상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물질을 하다 청춘을 다 보내고 최근에 게이트볼에 홀딱 빠졌습니다. 딱 하며 공이 게이트를 통과할 때 삼자 할망은 통쾌하여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시합을 위해서 삼자 할망은 안경테도 바꾸었습니다. 잠자리 날개처럼 삐죽한 모양으로 바꾼 안경테는 삼자 할망을 패션스타처럼 만들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거기다 새로 구비한 운동복까지. 삼자 할망은 게이트볼 선수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누우려고 잠자리에 들면 삼자 할망의 머릿속에 게이트 볼 장이 그려졌습니다. 

‘앞에서 못 친 공을 멋지게 보내고 내 공까지 게이트에 쏙!’ 

 삼자 할망은 벌떡 일어나 게이트 볼 스틱을 들고 허공에 스틱을 날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 누가 주장을 하지?”

삼자 할망이 불쑥 물었습니다. 다른 할망은 그 질문에 살짝 놀라서 말소리가 작게 대답했습니다.

“깡 언니가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다치셨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어때요? 제가 강정 영상도 다 봤잖아요.”

 가장 열심히 친 삼자 동생은 의기양양하게 자기를 가리켰습니다. 하지만 화숙 할망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역시 오래 친 왕 할망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련하게 전략을 짜고 집중력 하나는 왕 할망을 따라올 자가 없다고 믿었으니까요. 

 “게이트볼은 힘이 많이 필요한 운동도 아니라서 깡 언니가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리고 삼자 너는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되었잖아.” 화숙이 꼬치꼬치 따졌습니다.

 “언제까지 깡 언니가 계속 주장을 해요! 이제 좀 동생들한테 물려줘도 되지! 왕 언니라고 이것저것 다 우두머리여야 해?”

 솔이는 옥신각신하는 할망을 보다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치, 그거 한 번 못 해줘요? 나한테?”

 “이게 전략 싸움인 데다, 주장이 상황에 맞게 정확하게 판단하고, 확신 있게 밀어붙여야 하는 건데, 그게 되겠니? 집도 이제서 고친다며. 결정을 내리는 게 그렇게 힘들면서 무슨 주장이야?”

솔이는 할머니들의 말이 길어지자 혼자 공을 굴리며 놀기 시작했습니다.  

 삼자 할망은 화숙의 말에 팩 토라져 스틱을 휙 집어 들었습니다. 서둘러 집 쪽으로 향해 걷는데 쉬지 않고 땀이 흘렀습니다. 꿉꿉하고 시원하지 않은 바람만 가득 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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