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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무 Jul 03. 2022

이기심과 자기애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3장

3장에서 저자는 이기심과 자기애가 동의어처럼 쓰이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또한 자기애와 이웃 사랑이 한정된 사랑의 총량을 나누어 쓰는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 타인을 사랑하기 vs 자신을 사랑하기


    많은 철학자들이 이기심과 자기애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으며, 이웃 사랑과 이기심 혹은 자기애는 양자택일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이웃 사랑의 손을 들어준 철학자로는 칼뱅과 칸트가 있고, 이기심 혹은 자기애의 손을 들어준 철학자로는 니체가 있다.

    칼뱅은 자기애를 '역병'이라고 부를 만큼 맹렬하게 비난했는데, 이런 생각은 인간은 악하고, 무력하고, 하찮고, 멸시당해야 마땅한 존재라는 데서 출발한다. 사실 칼뱅은 이웃 사랑에 마저 그다지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믿음과 희망보다 사랑이 우월하다고 가르친다면 완전히 미친 짓이다."라는 그의 발언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칸트에게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것은 덕목이지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본성이 악한 인간의 자기 행복 추구는 사회 통합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애는 마땅히 도덕법에 따라 억눌러야 하며, 개인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데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니체는 이웃 사랑은 나약함과 자기 포기에 불과하며, 이기심과 자기애가 덕목이라고 선언한다.

"그대들은 자신을 피해 이웃에게로 도망치며, 그렇게 해서 덕목을 만들고자 한다."라는 니체의 말은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많은 것들이 실상은 자아 의탁일 뿐임을 날카롭게 꿰뚫었다.
사랑을 구실로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거나 자신이 무언갈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자신의 삶의 의미를 퉁치려고 하지만, 사실 그 사랑은 자기로부터의 도피일 뿐 진정한 사랑도 아니다.




# 현대사회에서 이기심과 이타심의 줄다리기

 

   현대 사회는 이기적으로 굴지 말되,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여 남의 이익도 극대화하라는 두 가지 모순된 원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동시에 선전한다.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말라는 말은 기존 사회 경제 시스템에서 달성할 수 없는 욕망을 포기하게 만들면서도, 그 포기가 자발적으로 실천한 덕목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불합리한 여건에 순응하며 자발적인 노예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분출하며 전복을 꾀하는 사람들을 아니꼬워하고 자신이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이기적으로 굴지 말라는 원칙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주 혹독하게 일해야 하는데, 이것이 지금의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제 개인은 신과의 영적인 연결이 끊긴 채, 타인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시장의 냉혹한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결과 한편에선 새로운 개인주의(프로테스탄티즘)가, 다른 한 편에선 불안과 복종(칼뱅주의)이 나타났다. 이제 인간은 바깥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화된 생산과 이윤의 권위에 복종한다. 이 권위는 혹독하게 일하고 성공을 위해 매진하라고 채근하지만, 자기 자신이 되고 스스로 만족하도록 허락하지는 않는다.

    결국 인간은 경제라는 기계를 돌리기 위한 하나의 톱니바퀴로 격하되고, 사회경제적 역할로 축소된다. 그런데 기계의 노예가 되도록 만드는 이기심이 정말로 자기애와 동일한 것일까?



# 반응적인 증오와 성격적인 증오


    증오는 반응적 증오와 성격으로 인한 증오로 나뉜다. 반응적 증오란 나의 삶, 안전, 이상 혹은 내가 사랑하고 동일시하는 타인이 공격당할 때 나타나는 증오 반응이다. 이런 종류의 증오는 특별한 상황으로 깨어나며, 공격하는 자를 몰아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공격하는 자를 무찌르고 나면 멈춘다.

    반면 성격으로 인한 증오는 늘 적개심에 휩싸여있는 상태를 말한다. 뚜렷한 증오의 표현이 없어도 표정, 몸짓, 말투, 농담, 사소한 행동 등에서 적개심이 엿보인다. 성격적인 증오는 미워하겠다는 꾸준한 마음가짐이다. 특별한 자극으로 인해 흥분하면 적극적으로 증오를 쏟아내지만, 이 적개심은 없던 것이 생기던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이 활성화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존재하던 증오가 활성화되면 마치 숨어 있던 적개심을 표출할 합당한 기회를 찾아 기쁘기라도 한 듯한 만족감과 즐거움을 보인다. 탐조등처럼 어떨 때는 이 대상을, 또 어떨 때는 저 대상을 목표로 삼으며 꾸준히 증오한다.

성격적인 증오는 특히 온라인에서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적개심을 표출할 만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며, 마땅한 기회를 발굴해내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투자하고, 그 대상이 자신의 사냥터에 영원히 남아 자신에게 사냥당해주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듯하고, 그 대상이 떠나가려 해도 악착같이 쫓아다니며, 완전히 떠나버리면 또 다른 적개심의 대상을 쉽게 구한다.

    우리 문화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증오하려는 마음이 크다는 것이다. 의식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타인과 자신을 향해 꾸준히 증오를 발산하다.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느끼거나, 남들의 반응에 따라 자기비판에 쉽게 빠지거나, 자신이 즐거움과 만족을 누리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 자기 증오의 일종이다.



# 사랑은 열정적 긍정


    증오는 파괴하고픈 열정적인 욕망이라면, 사랑은 열정적인 긍정이다. 사랑도 증오와 마찬가지로 꾸준한 마음가짐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 사랑할만한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자유와 평등이다. 혼자서도 제정신을 유지하며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자아의 강인함과 독립성, 온전함이 있을 때 사랑할 수 있다. 자아가 불안하고 나약하면 사랑할 수 없는데, 우린 나약한 자아의 욕망을 사랑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마조히즘적 사랑과 사디즘적 사랑이 그 예이다. 마조히즘적 사랑은 자신보다 강하다고 느끼는 타인과 하나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 종종 '위대한 사랑'처럼 칭송받지만, 실제로는 우상숭배의 한 형태이자 자아의 말살이다. 사디즘적 사랑은 타인을 의지가 없는 도구로 만들어 자신이 통제하려는 욕망인데, 타인에게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이 강하다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두 개 모두 근본적으로는 독립적일 수 없는 자아의 무능함 때문에 생긴 강한 욕망의 표현이다.

    진정한 행복도 이 연장선 상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행복이란 주관적인 요소인가 객관적인 요소인가? 자아를 완전히 포기하고 타인에게 헌납할 때 행복을 느낀다면 행복한 것이지 않을까? 저자는 주관적 요소만을 강조한 행복은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쓰였으며, 행복은 주관적인 만족감에 불과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 이기심과 자기애, 그리고 이웃 사랑


    성경의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라는 말씀은 자기애가 이웃 사랑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드러낸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세가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자기애가 이기심과는 반대말이다. 이기심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탐욕으로, 자기애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이기적인 사람은 충분히 받지 못할까 봐, 놓칠까 봐, 빼앗길까 봐 늘 조급하고 불안하며 자기애가 주는 안정과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이기심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애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자기애와 이웃 사랑은 제로썸 게임이 아니지만, 경제적 이득이나 사회적 지위는 제로썸 게임일 때가 많다. 충분히 이기적이면 이타적인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은 편리한 생각일 뿐이다. 그보다는 자기애를 추구하여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때의 자기애는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자아를 느끼고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것이다. 나를 온전히 경험하면 타인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고, 타인을 온전히 경험하면 또다시 나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 꾸준히 사랑하려는 마음가짐도 신체처럼 단련하고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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