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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프랑크푸르트, 본

20180721 Incheon, Frankfurt, Bonn

by 장영진

일 년 가까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행 날 아침.

일찌감치 두 아들을 깨웠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손주들 첫 장거리 여행이 걱정되셨는지 공항까지 데 려다 주시기로 했다. 아니, 자기 자식 둘 데리고 멀리 떠나는 본인의 아들과 며느리가 걱정되셨을까? 3년 같이 지낸 내 자식 마음도 모르겠지만, 30년 같이 살아온 부모님 마음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40여 분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 마음속엔 다양한 감정이 공존한다. 두 분에 대한 감사, 4년 만의 유럽행에 대한 기대, 공항이란 공간이 선사하는 가슴 떨린 설렘까지, 감정이 복잡 미묘했다. 내심 이기적인 기대도 했다. 사실 꼭두새벽 아이들을 깨워 공항에 가려고 했다. 아이들이 피곤한 나머지 비행기에서 오래 잤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벌써 비행기에서의 시간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과연 12시간 동안, 잘할 수 있을까? 공항에 일찍 도착하지 못해 생긴 조급함 때문일까.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부모님과 인사를 나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주들이 영 걱정스러운 눈치다. 하기야 나도 이다음에 세현이 세온이가 제 자식들 데리고 멀리 여행을 떠난다 하면 걱정되겠지. 먼 길 배웅 와주신 두 분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들 가족을 지켜보시는 부모님을 뒤로한 채, 짐을 챙겨 빠른 걸음으로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에 도착해 수화물을 체크인하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짐 무게 초과로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수화물 무게는 32kg. 허용 기준보다 10kg가량 초과였다. 당연히 가족 합산으로 수화물 무게를 측정할 것으로 착각했다. 분명 예전에는 합산으로 계산했던 거 같은데. 규정이 바뀐 것일까? 떠나는 길 좋은 마음으로 추가 요금을 내려하다가도, 금액이 만만치 않아 고민이 됐다.


여행의 출발,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체크인 중 (2018.7. 대한민국 인천) / 온이 재우기 프로젝트, 현이는 선물 푸르기 (2018.7. 대한민국 인천)


우리가 당황해하는 사이 항공사 직원이 친절하게(?)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공항 내 택배회사에서 상자를 사서 위탁 수화물로 부치면 된다는 것이다. 진작 그렇게 설명을 해 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마음이 불편했지만, 대안이 있어 참 다행이었다. 우리는 즉시 출국장 서편 택배업체로 향해 상자를 구매하고 짐을 다시 정리했다. 공항 바닥에서 캐리어를 푸르고, 무거운 것들을 상자로 옮겼다. 수화물을 처리하고 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짐을 수화물로 다 붙여버리니 출국장 안에서 돌아다니기에도 한결 편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사실. 아침 출발도 늦었고, 공항에서 수화물 처리 때문에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우리 계획은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하고, 여유 있게 라운지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식사 후엔 면세점을 구경하며 아이들을 재우기.

우리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다. 겨우 미리 주문해 놓은 면세품을 수령한 후 탑승 게이트 앞으로 향했다. 비행기 이륙 시간이 12시, 탑승통로에서 찍은 사진이 11시 50분경이었으니 거의 막차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여행을 떠날 때 공항 출국장에서 시간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는 이후 여행 만족도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 쾌적한 여행을 위해 늦지 말아야지 매번 다짐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공항에 일찍 오는 일이 쉽진 않다.

어렵사리 비행기 탑승을 완료했다. 오래전부터 호기롭게 여행을 계획했지만, 아이들과의 첫 장거리 비행이 내심 걱정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일상에서의 육아도 힘겨워하는 우리가, 그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아이들과 12시간의 비행이라니. 솔직히 많이 막막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처음으로 유럽행 직항 편을 탑승한다는 사실. (지금까지,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우리 부부는 돈을 아껴 쓰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심지어 신혼여행조차 상해 경유 비행기를 타고 파리까지 갔으니 말이다. 지금 와서 네 명 요금을 다 내고 비즈니스석을 타기엔, 아마 우리 부부의 배포가 그 정도로 크지 않아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비행기 탑승 전 세온이가 잠들었다. 한 명이라도 자면 훨씬 여유가 생긴다. 비행기가 정상 궤도에 올라서자 기내식이 제공됐다. 맛과는 별개로, 여행의 시작에서 마주하는 첫 기내식은 여행에 대한 설레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좋다. 식사 후 세현이가 잠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생각보단 순순히 잠이 들어주었다. 아이 둘 다 잠든 이 순간, 부모도 쉬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조금 더 욕심을 냈다. 세현이를 좌석 아래에 눕혀 재우려고 했는데, 완전히 판단 착오였다. 비행기 좌석 아래가 엔진 소리로 꽤 시끄러운가 보다. 내려놓자마자 세현이가 울면서 잠에서 깨버렸다. 덩달아 온이도 울며 잠에서 깼다. 큰일이다. 시작부터, 우리의 휴식 시간이 없어졌다. 실망하고 있을 틈도 없이, 비행기 우리 자리 주변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드디어 둘 아들 모두 잠들다 (2018.7. 독일행 비행기 안) / 하지만, 너무 일찍 일어난 녀석들 (2018.7. 독일행 비행기 안)


처음엔 잘 놀았다. 오늘 아침잠에서 깬 아이들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선물해줬다. 그동안 갖고 싶었던 아이스크 림 장난감을 손에 쥔 세현이는 세상을 다 손에 쥔 표정이다. 하지만 이륙 후 4시간 정도가 되자, 이젠 조금 지겹나 보다. 두 아이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자, 이젠 두 번째 작전 돌입. 우리는 세현이에게 준비해온 영상을 보여주기로 했다. 영상을 보여주는 것은 장거리 비행을 위한 회심의 무기였다.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 교육에 좋으냐 안 좋으냐의 문제는 우리에게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비행기 안에서 얌전히 있어만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아이폰에서 사용 가능한 특수 USB 장치도 얼마 전 구매했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간 세현이를 위해 150편의 영상을 내려받아 고이 담아 왔다.

하지만, 이게 웬걸. 가방을 아무리 찾아도 USB가 보이질 않았다. 분명히 가방 안에 넣어 왔는데. 백 팩은 물론이고, 카메라 가방 어디에서도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여행 내내 교통수단과 식당에서 세현이의 주의를 끌 아이템이 사라졌다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30분 넘게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그만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자고 이야기하면서도,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마치 시작 네 시간 만에 여행이 다 끝난 것 같은 허망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아내는 먼저 포기하고 온이와 함께 화장실을 갔다. 나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무기력하게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이미 가방 구석구석 열 번 이상 뒤져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때, 가방 한구석에서 USB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체 이게 왜 안 보였을까?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자리로 돌아온 아내에게도 기쁨의 소식을 전했다. 드디어 세현이에게 아이패드와 영상이 담긴 USB를 전달. 세현이도 이제 영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기뻐했다.

이후 3시간가량 세현이는 영상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와 아내는 세온이를 붙잡고 씨름했다. 3시간 동안이나 영상을 본다는 것. 아이에겐 너무 긴 시간이고, 그것이 그리 유익하지 않다는 점을 물론 잘 알고 있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변명을 하기에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사실 여행을 온 것 자체가 부모의 욕심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념 없는 부모가 되긴 싫었나 보다. 자녀에게 큰 걸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살피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야지.

한국시각으로 밤 9시가 되자, 세현이도 영상 보는 것이 지겨운 눈치다. 우리는 영상을 보고 있던 세현이를 겨우 설득하여 잠재우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온이는 진작부터 재워보려고 했는데 무서운지 도통 자려고 하질 않는다. 결국, 세현이와 세온이를 같이 재우기로 결정. 세현이를 재우기까지 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순순히 눈을 감고 잠을 청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온이도 형과 비슷한 시간에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 부부도 착륙 시간을 두 시간여 앞두고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머나먼 비행, 드디어 도착 (2018.7. 독일행 비행기 안)


한국시각으로 밤 11시 30분, 현지시각으론 오후 4시 30분.

독일 땅에 무사히 도착했다. 참 멀리까지 왔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12시간 비행. 기내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저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좌석 앞 화면에서 독일 상공에 떠 있는 비행기를 보고 있는 게 신기했다. 힘들었지만, 한편 너무 기쁘고 흐뭇했다.

비행기가 내린 시간은 우리나라 시간으로 밤 12시. 아이들도, 우리도 많이 피곤했다. 게다가 바로 본까지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암울했다. 왜 이런 일정을 짰을까.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이 아이들이 잠에서 깼다. 다시 재워보려고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다. 예약된 기차 시간이 있기에 마냥 재우고만 있을 순 없었다. 아마 잠을 청하기엔, 현지가 너무 한낮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낯선 곳에 와서 무서웠던 것일까. 두 녀석 모두 잘 생각을 안 한다.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커피를 사기 위해 맥도날드를 찾아가는 길. 온이가 공항 바닥에 토를 해버렸다. 그러고 보니 미열이 있는 느낌이다. 하기야 부모도 이렇게 힘든데, 아이들도 얼마나 힘들까. 세온이는 자신의 몸이 안 좋다는 것을 울음으로 표현했다. 온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 세현이도 겁에 질린 표정이다. 육체적, 정신적인 피곤과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짐, 게다가 아이들 건강까지. 여기까지 온 게 과연 잘한 일일까, 벌써 고민이 됐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고 싶어도 비행시간은 12시간. 도저히 갈 엄두가 안 나는 그런 상황이다.

바닥을 청소한 후 부지런히 맥도날드로 향했다. 커피를 마셔야 조금 진정될 것만 같았다. 맥도날드에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오랜만에 유럽에 와서 영어로 주문을 하려니 긴장됐다. 순서를 기다려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내가 원한 메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지만 실제 제공된 커피는 거의 초콜릿 맛의 달달한 커피였다. 분명 그냥 아이스커피를 보고 주문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마시고 싶은 커피를 못 마시게 되자 마음이 더 어려웠다. 나도 아내도, 그리고 아이들도 점점 말이 없어졌다. 아이들이라도 잠들면 좋을 텐데. 아직도 잘 생각은 없어 보인다. 우리 여행은 괜찮은 걸까?


프랑크프루트 공항에 내디딘 첫발 (2018.7. 독일 프랑크푸르트) / 프랑크프루트를 떠나 본으로 (2018.7. 독일 프랑크푸르트)


남는 시간 공항 안에서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기차를 타야 할 시간이 다 되었다. 걸어서 가기에 기차역까지 거리가 생각보다 있었지만, 그래도 공항에서 바로 기차를 타고 출발할 수 있어 다행이다.

우리가 예약한 기차는 18시 09분에 Frankfrut Flughafen Fernbf을 출발하여 Bonn 중앙역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독일 철도청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당시 Siegburg/Bonn으로 간 다음 STR66으로 환승해서 본 중앙역으로 가는 경로였다. 우리는 당연히 지스부르크에서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STR66은 본 시내를 가로지르는 트램이었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구글맵을 검색하던 중 좋은 소식을 발견했다. 이 트램이 중앙역에 도착하기 두 정거장 전, 우리가 예약한 호텔 바로 앞에 정차한다는 것이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 가족에게 단비와 같은 소식. 덕분에 예상한 시간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 은 시각, 체크인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참 머나먼 길을 돌아왔다. 서울 마포구에서 출발, 인천 그리고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본까지. 물론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더 멀지만, 호텔 방 안에 들어와 침대에 누우니 긴장이 풀리고 지금 이 순간이 감격스러웠다. 이 먼 곳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리고 4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다는 설렘, 우리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 준 호텔 방에 대한 만족, 무엇보다 이 힘든 여정에 함께 해준 두 아들에게 느끼는 대견함까지, 이 소중한 마음들을 간직한 채 침대에 누웠다.


프랑크프루트를 떠나 본으로 (2018.7. 독일 프랑크푸르트) / 프랑크프루트를 떠나 본으로 (2018.7. 독일 프랑크푸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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