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윗집 여자

by 반동희

비가 땅을 때리는 날엔 늘 상쾌했다. 빗줄기가 땅바닥에 닿는 순간의 파장이 경쾌했다. 빗물은 하늘부터 씻고 남은 투명함으로 땅을 묽게 했다. 맑은 공기 사이에서 새소리는 더욱 밝게 높은 곡조를 그렸다.


이런 날 나는 더욱 집중했다. 내가 이 집에 들어온 날도 온종일 비가 오다가 그친 밤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위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전부인 일상에서 표류했다. 다행히 오감으로 전달되는 투명한 세상은 한층 볼 게 많았다.


비 오는 날 눈 아래 행인들은 오색찬란한 우산으로 머리를 가렸다. 평소 검은 머리통의 정수리를 보는 것보다는 즐거움이 더했다. 나는 잠시 후 비가 그쳐 그들이 우산이란 가림막을 벗어내길 기다렸다. 멀리 보이는 남산 일대와 하늘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는 국적 마크까지 선명해졌다.


비가 그치면 마당에 놀러 오던 손님 수가 확연히 줄었다. 더러 마당에 와서 삼삼오오 공을 차는 이들은 땅이 질퍽거려 그런지 오지 않았다. 홀로 운동화를 신고 뜀박질을 하거나 구석에 앉아 몰래 담배를 피우고 가던 이들도 없었다.


하지만 아래층은 여전히 재밌었다. 마당을 지나 아래층으로 들어오는 남녀의 수는 시간 차를 두고 늘면 늘었지 줄지 않았다. 팔짱을 끼거나 어깨동무를 한 남녀 한 쌍이 들어오는 풍경만 봐도 그들에게서 들려올 조금 뒤의 대화가 예상됐다. 대개 비가 오다가 그친 날의 이들은 더욱 은밀하고 농밀하게 대화했다. 몸의 대화였다. 몸과 몸이 섞이면서 나오는 그 소리는 동물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은 동물이 맞았다. 내가 상쾌함을 만끽하는 것처럼 그들도 그들 사이의 더욱 뚜렷하고 청명한 익명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안도감과 이런 곳까지 누군가 올 리가 없다는 익명의 합의 아래 솔직하고 또 솔직했다. 나는 그들 남녀가 내놓는 여러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접하며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었지만 끝내는 울고 말았다. 오빠, 자기, 여보, 당신 등의 지저귐은 항상 빠지지 않았다. 사랑은 속삭임이었고 속삭임은 관계 속에서 피어났다. 그럴수록 비가 세상을 씻고 간 날 모든 것이 총명하듯이 내 울음도 한 옥타브 더 꺼억꺼억 높아졌다.


나는 5년 전 이곳에 갇혔다. 지금 사는 곳에서 더는 문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나도 예전엔 저들 남녀처럼 이곳을 드나들었다. 그때는 한번 들어오고 영영 이러한 상태로 나갈 수 없게 될 줄은 몰랐다. 비가 그친 어느 오후 나는 오빠의 연락을 받고 이곳에 왔다가 세상에서 잊힌 존재가 됐다. 오빠, 으응, 그래, 사랑해 등등의 말이 우리 사이에 오가다가 말이 끊겼을 때 내 운명은 달라졌다.


그날 이후 나는 이곳에서 부유하며 텅 빈 곳을 쳐다보며 살았다. 먹지 않은지 오래고 씻지 않은지 한참 됐다. 그래도 존재로서의 고립엔 무리가 없었다. 나는 땟국물이 늘어나고 배고픔을 잊으면서 내가 비로소 진정한 관찰자가 됐다는 걸 깨달았다.


대신 나는 아침에 이곳에 들어와서 시시껄렁이는 아이들의 음성을 들었다. 점심엔 마당에서 뛰노는 그들을 봤다. 저녁과 출입문이 굳게 닫힌 휴일엔 담을 넘거나 개구멍으로 들어와 익명에서 행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하는 이들의 모습을 목도했다. 처음엔 놀라웠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 속 각양각색의 생김새와 처지만큼이나 그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이곳에서 다양한 일탈을 표출했다.


처음에 나는 내 상태를 인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 존재가 이곳 모두에게 더는 인지되지 않을 때 나는 내가 죽었다는 걸 인식해야만 했다. 죽음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나는 살았다. 나는 그날 죽었고 그 죽음으로서 익명을 원하는 이들을 관찰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 나는 그제야 내가 학교라는 공간에 홀로 남은 자아가 됐다는 걸 확신했다.


낮에 배우고 가르치는 곳에서 지저귀는 소리는 어느 순간 공허하게 들렸다. 배우는 이와 가르치는 이 모두 익명을 담보로 한 공간에선 내가 보는 이들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는 낮에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치는 이가 밤에 이곳에 다시 나타나 상상 이상의 기묘한 행위를 동반자와 하고 돌아갔다. 반대로 낮에 이곳에서 배움에 뛰어났던 이가 밤에 이곳에선 매우 바보 같은 행동을 하고 귀가했다. 그것도 전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멀리서 보면 희극이었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고 전후맥락을 고려하면 그만큼 인생사를 압축한 행위도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이 운동장이라고 부르는 곳을 바라보며 스스로 마당이라고 불렀다. 내가 갇힌 맨 꼭대기 층을 제외한 모든 곳은 내게 그저 아래층이자 은밀함을 원하는 이들의 배출구로 퉁쳐졌다. 내가 살지 않는 세상에서 아래층은 모두가 신성시하는 배움의 장소였지만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곳에서의 아래층은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익명성이 담보된 이 도시의 은밀한 곳이었다.


비가 땅을 때린 후 아래층의 음성은 유독 더 내가 사는 위층을 강하게 튕겼다. 오빠, 으응, 그래, 사랑해 등등은 내가 살았을 적과 마찬가지로 빠지지 않았다. 나는 죽은 이후 진정한 관찰자가 됐다. 관찰물은 세상 속에 기록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 도시의 가장 평면적인 맨 얼굴로 내 눈앞에 직접 펼쳐졌다. 나만 볼 수 있는 이러한 속살은 매일 밤과 휴일 그렇게 신격화된 존재인 학교에서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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