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는 힘닿는 한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싸울 것입니다. 저들이 저를 십자가에 매달아 두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28세의 체 게바라가 어머니한테 쓴 편지 중 일부 인용하여 올림."
영우는 편지를 책상에 올려뒀다. 한껏 꾸린 백팩을 멘 후였다. 현관문만 박차고 나가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란 생각이 영우 머릿속에서 꿈틀댔다. 영우는 가슴 한구석이 찡했다. 영우는 "혁명을 완수하겠노라"라고 혼잣말을 하며 문을 열었다. 비장했다.
집 밖 열기가 온몸을 덮쳐왔다. 비공식으로 40도에 이른다고 뉴스에서 떠든 폭염이었다. 막 문을 연 사우나 수증기가 코를 틀어막는 것처럼 영우는 힘들었다. 입을 열어 코와 같이 호흡했다. 체 게바라 얼굴이 담긴 흰 티셔츠는 땀에 젖을 준비를 시작했다. 등과 겨드랑이가 진득거렸다.
"오후 3시까지 집결지로 간다. 무장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시간 엄수."
영우가 블루투스 이어셋으로 외쳤다.
"옛썰."
"옛썰."
"옛썰."
"옛썰."
"옛썰."
"옛썰."
"옛썰."
저쪽에서 예닐곱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영우가 집결지라고 외친 곳에 다다르자 옛썰을 외친 이들이 반겼다. 영우는 자신을 제외한 6명의 인원을 이끄는 리더였다. 각각에 번호를 부여하고 1번은 왼쪽, 2번은 오른쪽, 3번은 후방 엄호 명령을 내렸다. 영우의 호출에 따라 그들은 태세를 갖췄다.
"오늘 지면 끝이다. 최소 죽으면 그것으로 한 움큼의 영광을 쥘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살아서 패한다면 우린 이 바닥을 완전히 떠야 한다."
영우는 어느 위인전에서 본 말을 인용해 최후의 진술처럼 준엄하게 말했다. 옛썰맨들은 다시 한번 옛썰을 외쳤다.
영우는 '가상 전쟁' 게임인 '혁명의 시대' 고수이자 불패 신화에 가까운 사나이였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이 가상현실 전쟁 게임에서 승률 90%를 넘어 "야전사령관"으로 불린다. 과거 컴퓨터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간 슈팅 게임은 이제 완벽히 사람이 움직이는 가상 증강 현실 게임으로 변모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군대 장기 복무 심사에서 떨어진 영우는 등 떠밀려 전역하자마자 이 세계에 발을 디뎠다. 취업 대란에 따라 100대 1이 훌쩍 넘어가는 군대 장기 복무 심사에서 탈락했으므로 그보다 더 심한 사회의 취업 현실에서 이길 수 없다고 영우는 판단했다. 매일 취업 걱정에 시달리던 영우는 스스로 패배자라고 단념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 탈출구 끝에 만난 이 가상현실 전쟁 게임은 영우를 옛썰맨들을 이끄는 리더이자 패배를 모르는 장수로 4년 만에 변모시켰다. 영우가 나서는 경기는 어느덧 게임 채널 방송을 탔다. 사람들은 영우를 최고의 프로게이머로 대접했다.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당시 일용직을 전전하던 영우는 이제 완벽히 '전업 장수'가 됐다.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투스타' 부럽지 않은 지휘관으로 권력을 누리는 동시에 이제는 현실을 뛰어넘는 책임감까지 느꼈다.
영우가 이끄는 팀이 큰 대회에 나설 때면 게임 방송사들은 바빠졌다. 영우의 경기 준비부터 그날 경기장으로 향하는 과정까지를 화면에 담아 다큐멘터리로 시청자에 송출했다.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겠다'라고 밝힌 영우의 편지는 전파를 타고 이 거대한 게임과 그를 다루는 하나의 '쇼'에 서사로 기능해 관중 사이사이의 긴장감과 스토리를 불어넣었다.
영우가 하는 일의 아무런 개념도 잡지 못했던 영우 엄마는 이제 방송국이 편집하는 영우의 '쇼'에 호응할 정도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이날 영우가 쓴 '십자가 편지'를 받은 어머니는 편지를 읽자마자 손을 살포시 떨며 먼 밖을 내다봤다. 물론 방송사 요청으로 나온 연출된 장면이었다. 이 화면은 고스란히 영우의 경기 전 분위기를 고조하는 게임 방송사의 장치로 활용됐다.
영우는 이날 결승 경기 전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십자가를 짊어졌을 정도로 무거운 전쟁"이라고 말했다. 이는 며칠 전 방송국 작가가 와서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읊는 거였다. 그렇게 탄생한 어머니에게 부치는 편지도 그렇거니와 상대가 일본팀이라는 점에서 "꼭 이겨야 하는 사생결단의 전투"라고 영우는 말했다. 방송사가 짜 준 원고와 분위기 조성은 고스란히 채널 광고비로 직결됐다.
영우가 나선 이번 전투 장소는 속초의 한 산기슭이었다. '대동아제국' 욕심을 버리지 못한 일본이 현대의 남한을 침략한 것으로 설정됐다. 학계에선 다소 우스꽝스럽고 핍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게임사와 이를 상업적으로 써야 하는 방송사는 쓸데없는 진지함을 내세우면 즐거움엔 한 발도 다다를 수 없다고 홍보했다. 오히려 학계에서도 주목할 정도의 게임이 되어 그만큼 하나의 대중 스포츠로 인정받을 때도 됐다고 반박했다. 어째서 일본의 도발이지역 속초이며 그곳이 일본과 한국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방송사들은 제 가끔의 이유를 내놨다.
어쨌든 속초 최후의 수비대로 영우의 부대가 낙점돼 이를 틀어막아야 하는 것이 이 세계에선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앞서 옛썰맨들은 모두 한 부대의 지휘관으로서 그들 아래로만 한 명당 최소 300명의 인원이 임무를 수행했다. 영우는 자신의 직속 부대 인원을 포함해 2000명 이상의 인원을 지휘하는 그야말로 야전사령관이었다.
특이점은 가상 전투에서 지휘하는 인원이 늘고 승을 더 쌓아갈수록 영우가 현실을 인지하는 시간은 줄었다는 점이다. 대회 비수기인 1~2월에 영우는 하루 종일 집에서 관련 전략을 짜고 자신 아래 있는 이들의 진급과 부대 관리에 힘썼다. 그 안에선 실제 군대처럼 부대를 편성하고 군사를 훈련하고 무기를 개발했다.
이를테면 영우가 부대 보유 게임 머니로 각 실제 인간 캐릭터에 훈련과 무기 장착을 지시하면 그들이 직접 그만큼의 시간을 서버에 접속해 이행해야 하는 식이었다. 영우 휘하에 있는 2000명 모두의 꿈은 언젠간 영우처럼 멋진 지휘관이 되어 부와 명예를 한 번에 쌓고 자신만의 전략과 전술을 대중 앞에 펼쳐 보이는 것이었다.
"1번과 2번이 매복해 20분을 버틴다. 무조건 버틴다. 그사이 5번과 6번은 일본군의 해상 정박 지점으로 향한다. 그쪽에서 전면전을 펼치지는 않고 습격으로 보급창과 후방 교란을 맡는다. 내가 직접 데리고 나설 3번과 4번은 새로 개발한 Z-10으로 각각 1~2번 전투 지점과 5~6번 전투 지점의 원격 폭격을 가한다. 다음 지시까지 이행하라. 이상."
영우가 첫 번째 명령을 하달했다. 옛썰맨들이 바삐 움직였다. 방송사는 드론을 날려 전장 전체를 조망했다. 고프로 등으로 장착한 초고속 카메라는 한 치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다양한 각도로 순간 포착을 전달했다. 이따금 영우 엄마의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장면은 약방의 감초처럼 긴장감을 살살 녹여냈다.
영우의 부대가 매복해 있는 상황에서 비장의 무기로 스나이퍼들을 후방 배치한 모습이 나타나자 방송사 화면에선 시청자들이 환호성 지르는 소리가 삽입됐다. 화면 아래엔 영우가 보안을 위해 부대 명령 하달에도 스나이퍼 존재를 숨기는 전술을 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자막으로 달렸다. 중계 화면 안에선 피가 튀고 살점이 날리며 총소리가 이어졌다. 날아가는 적들의 머리통과 흔들리는 카메라 화면이 극에 달한 현장감을 연출했다. 전부 가상 아닌 가상으로 탄생한 현대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