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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Feb 28. 2020

(초단편소설)마스크맨 신인류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뒤엉킨 인파를 비집고 선 채였다. 잠시 호흡을 다듬었다.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바삐 걸었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늘 바쁘고 종종걸음 쳤다. 이들 모두는 언제나 무표정으로 손에 쥔 무언가를 열심히 봤다. 그것은 내가 젊었을 적 스마트폰으로 부르며 쓰던 그런 기계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맨손을 펴 보이면 투명한 스크린이 공중에 부양해 떠올랐다. 그들은 그것을 툭툭 건드리며 무언가를 부지런히 했다. 맨몸이었으되 맨몸이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종종걸음으로 땅만 보고 걸었다.


그들이 그렇게 걸으면서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 것이 신기했던 적도 있다. 비밀은 그들 손에 있는 기계가 자동으로 보행 위치까지 잡아주는 것이란 걸 얼마 전에 알았다.


이따금 도시에 나올 때마다 생경한 풍경을 마주하면 나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었다. 이제야 조금 거친 호흡이 잠잠해져 나는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전자제품이 빼곡한 곳에서 나는 직원부터 찾았다. 직원 뒤로는 아예 무엇에 쓰이는지조차 모를 정도의 제품들이 우후죽순 늘어서 있었다. 날개 달린 자동차도 아무렇지 않게 전시돼 있었다.


나는 젊은 날 이것저것 둘러보는 게 좋아 매장 안에서 다가오는 직원이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났다. 쏜살같은 세월의 속도보다 더 빠른 파동으로 기술 문명은 발전했다. 그사이 종종걸음조차 치기 힘든 나 같은 노인은 쓸모없는 산소 소비자에 불과했다. 바야흐로 산소가 귀한 시기였다.


내 젊은 시절만 하더라도 ‘세대 차이’란 용어가 있었고 이것은 태초 인류부터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말로 연결돼 절대 불변의 진리처럼 인용됐다. 그런 세대 차이란 인식을 시작으로 갈등하고 부딪히고 표류했는데 역설적으로 그 과정에서 우리는 소통하고 지지고 볶고 부유해 합치됐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밀도가 없었다. 나 같은 노인과 젊은 그들은 아예 다른 종족으로 갈라서 각자의 길을 갔다. 물과 기름처럼 영원히 섞이지 않는 결이 다른 분자로 구성된 종자가 됐다.


"그러니까. 음성 인식이든 뭐든 다 필요 없으니 그냥 옛날 전화기 하나만 주세요. 돈은 얼마든 줄게요. 우리 마누라가 나한테 전화만 하면 된다니까."


나는 20년째 병상에 누워 꼼짝도 못 하는 아내의 선물을 찾았다. 10년이 과거 100년의 과학기술 발전 속도보다 빠른 세상에서 20년째 병상에 있는 건 차라리 대한민국에 사는 일제강점기 조선인에 가까웠다.


기술발전은 어느 순간 ‘종의 기원’을 ‘천지 창조’의 영역으로 회귀시켰다. 다만 천지 창조에서 천지가 기계로 둔갑한 것이 약간의 차이라면 차이였다. 기계는 천지도 됐고 창조도 됐다. 나처럼 이런 사유조차 하는 것이 이들 신인류에겐 고리타분하고 시간 낭비로 읽혔다. 그들은 늘 스크린에 튀어오르는 팝업이 중요했다.


아내에겐 그저 번호를 손으로 눌러 언제든 나와 통화할 수 있는 게 필요했다. 우리 젊은 시절의 휴대폰이 그러했다. 그거면 됐다. 접혀도 좋고 펼쳐진 채로 있어도 좋고 어쨌든 그냥 번호만 누르면 됐다. 아픈 몸뿐만 아니라 지적인 학습 능력까지 과거에 멈춰버린 아내에겐 그런 것이 필수였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그런 건 이제 없습니다.”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이 직원도 겨우 입을 열어 절제된 핵심만 말했다. 도대체 저놈의 고객님 소리는 어디서든 안 하는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나는 직원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 부류와 나의 대화는 더 이상 무의미했다.


도대체 왜 없으며 그럼 어떠한 대체재가 있는지는 쏙 빠진 말에서 나는 갈증을 느꼈다. 얼굴 보고 대화하는 시대가 끝나서였다. 온종일 침묵하거나 손가락으로 버튼을 쭉쭉 눌러 소통하는 이들이 주류로 자라 벌어진 현상이었다.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한때는 화두가 됐던 단어도 화석이 된 지 오래였다.


무미건조한 그들 신인류는 터치스크린을 보고는 웃었다. 그러나 사람 얼굴을 보고는 세련된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무기력증과 순간의 혈압 상승을 느꼈지만 다른 종족과 공회전을 하기 싫어 그쯤하고 나왔다.


거리에 종종걸음은 여전했다. 이따금 사람의 형상을 한 인공 인간들이 내 옆을 지나갔다. 그들은 자율주행 택시를 불러주겠다고 호객했다.


고백하는데 나는 진짜 사람과 인공 인간을 완전히 구분하지 못한다. 한 가지 구분되는 지점은 진짜 사람은 전부가 아니어도 대개 마스크를 하는 반면 인공 인간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닌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종종 있어서 조심할 수밖에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기술 발전엔 반드시 그 반대인 바이러스의 발전이 있다고 뉴스는 떠들었다. 잊을만하면 새로운 바이러스가 창궐했다고 뉴스는 또다시 호들갑 떨었다. 또다시 잊을만하면 종류만 달리하고 점점 작아지는 미세먼지들이 득실거린다고도 했다.


그러니까 내게 핵심만 말하고 돌아선 마스크 미착용 점원은 인공 인간이었다. 그와 나의 추가 대화는 이해와 오해의 차원이 아닌 인식과 미인식의 문제였으므로 이는 다시 말하건대 공회전이 확실했다.


인공 인간들은 말 그대로 인공이어서 사람이 두려워하는 바이러스에 민감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사람의 영역이었고 진짜 사람만이 가진 DNA만을 공격했다.


나 같은 노인들은 인공 인간이 진짜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주기적으로 뿌린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잡스러운 소음과 음모론으로 치부돼 변방으로 밀렸다.


변방의 북소리가 울리든 말든 인공 인간들은 진짜 사람만 걸리는 바이러스 앞에서 태연히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것 말고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길이 내겐 없었다. 나는 매장을 나오며 마스크를 썼다.


누군가 뒤에서 외쳤다.


"신이 나타날 것이다. 신이 이 세계를 심판할 것이다."


종종 보이는 부류의 떠돌이 인간이었다.


내 생각은 달랐다. 먼 옛날 인간이 자연에서 진화해 태어났든 신이 창조했든 이제 그런 태초의 시대가 눈앞에 열리고 있었다. 언젠가는 인공 인간이 지구의 주류가 되는 진짜 인간이 될 것이었다. 나 같은 부류는 과거의 공룡이나 매머드쯤으로 묻히고 기록돼 훗날 새 연료의 거름이 될 거였다.


"신은 이미 나타났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신이라고 이 답답한 사람아. 우리가 만든 저들이 나중엔 오늘을 돌아보며 자신들이 진화의 산물인지 전지전능한 누군가의 창조물인지를 두고 언쟁할 것이라고."


혼잣말이라도 해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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