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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Apr 13. 2020

(초단편소설) 부활 인간

“그러니까. 예. 음. 저희의 일은 간단합니다. 후손의 DNA를 채집하는 것에서 시작하죠. 물론 해당인의 동의는 받습니다. 그런 위인의 후손들은 자신의 뿌리를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죠. 백이면 백 저희의 DNA 추출에 응합니다. 그다음엔 저희만의 과학적인 역학적 판단이 들어가는데 그건 영업 비밀이라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위인의 후손에게서 추출한 DNA로 저희는 그 위인의 기록을 토대로 추적해 들어가죠. 이를테면 그 위인에게서 추출한 DNA에서 후손에게로 전이된 DNA를 본 뒤 그 과정에서 들어간 다른 형질은 제거하는 겁니다. 위인의 행동이나 말투나 사상 등을 토대로 하는데 거의 백 퍼센트에 가깝다고 자신합니다. 그러므로 DNA 추출 후손이 4대나 5대쯤 되는 것보다는 2대나 3대쯤이 훨씬 쉽겠죠? 그렇게 저희는 아인슈타인을 복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완벽한 DNA를 복제 인간에 넣어 탄생시킨 것이죠. 이것이 아인슈타인의 부활이냐 아니냐 하는 것에는 저희가 사실 큰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은 부활이라고 자신하므로 그런 질문은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교과서나 책으로만 접했던 위인을 눈앞에 부활시키는 것에 방점을 찍은 겁니다.”


“자. 이제 커튼을 보시죠. 저 커튼 안엔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생전 모습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 그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보고 뭐라고 할까요. 이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과 유튜브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혹은 자신의 과학적 이론이 어느 정도 현실에서 증명됐다고 할지도 모르죠. 어쩌면 그의 명석한 두뇌가 지금의 과학과 맞물려 한 차원 더 높은 문명으로 우리를 이끌 수도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설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아인슈타인을 만나면 가장 먼저 무슨 질문을 하겠습니까.”


“그전에 잠시 질문을 하나 드리죠. 이 커튼을 열기 전에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커튼 뒤에 있는 아인슈타인을 정말 아인슈타인이라고 신뢰하기로 했습니까? 일말의 의구심도 갖지 않으십니까? 우선 여기 이 서류를 보시죠. 아인슈타인의 손녀가 사전에 DNA 추출을 동의한 서류입니다. 손녀는 아쉽게도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죠. 어쨌든 우리는 DNA 추출만으로도 인간의 부활이 충분하며 그것은 복제인간과는 또 다르다는 걸 증명할 겁니다. 현재 과학 기술에서 일부 맹점들을 제거한 뒤 성공한 엄연한 현실이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을 믿지 않는 분들은 커튼 뒤를 보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인슈타인의 부활을 보자는 것이지 그것의 증명을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보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의 모든 프레임을 아인슈타인이라는 위대한 위인의 부활에 맞춰 그와 대면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윽고 커튼이 열렸다. 거기엔 정말 아인슈타인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앉아 있었다. 흰 머리카락을 여기저기 내키는 대로 흩날린 모습 그대로였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신명 나게 바람잡이처럼 말을 내뱉던 사회자는 이를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질문이 날아들었다. 스마트폰을 써봤나요. 갑자기 성인으로 나타나신 건가요. 아니면 다시 태어나 성장해 이 자리에 앉으신 건가요. 현대 과학 문명을 보셨나요. 유튜브는 접속해 보셨습니까. 인터넷을 써보셨나요. 후손에게 재산은 왜 한 푼도 물려주지 않고 예루살렘 히브리대에 기부하셨나요. 죽어서도 초상권으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는 건 그전엔 상상도 못 하셨나요. 빌 게이츠를 만나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아마존은 써보셨나요. 저마다의 질문들이 날아들었다. 부활했다는 아인슈타인은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었다. 이따금 시선을 좌우로 돌려 자신은 평안하고 온화한 사람이라는 듯 관객들이나 취재진과 눈을 마주쳤다. 신이 난 바람잡이는 다시 커튼을 치라고 스텝에게 신호했다.


“자. 일단 여기까지 하시죠. 저희의 오늘 목적은 보여드리는 겁니다. 어떠십니까. 이제 정확히 보셨습니까. 방금 보신 인물은 완벽한 아인슈타인의 부활 그 자체입니다. 심지어 오늘 예정되지 않았던 미소까지 아인슈타인이 보여줬군요. 저희는 바로 어제까지 아인슈타인과 수많은 시간을 대화했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 시대의 차이를 얘기하고 그간 있었던 일들을 나눴습니다. 한 가지 신기했던 건 아인슈타인은 현재 우리 삶을 다 꿰뚫고 있었다는 겁니다. 직접적으로 그가 한 말을 전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죽음 이후에도 우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죽음 이후에도 사후세계는 존재하며 영혼은 우리를 보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일정은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홀을 가득 메운 이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번졌다. 무대 조명은 꺼졌다. 커튼 앞으론 또 하나의 장막이 내려와 완벽히 차단됐다. 홀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선 믿기 어렵다는 말보다는 어찌하여 아인슈타인이 죽은 뒤에도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었느냐 하는 거로 쏠렸다. 부활이다. 완벽한 부활이다. 부활은 존재한다. 이렇게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같은 시간 바람잡이 역할을 한껏 했던 ‘마스터’는 호기롭게 무대 뒤에 있는 모니터로 이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그는 자신을 ‘마스터’로 불렀고 이끄는 군단에게도 그러라고 지시했다. ‘마스터’는 프레임을 짜는 것이란 이런 것이라며 키득거렸다.


부활 인간 아인슈타인의 사진을 찍는 그들을 구태여 제지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다음 날 신문엔 찰나의 순간 찍힌 아인슈타인 모습이 도배될 것이었다. 사후세계는 존재하느냐는 담론부터 정말 아인슈타인의 부활인지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까지 평론가들은 떠들기 바쁠 것이고 그럴수록 초점은 ‘마스터’인 자신에게 쏠릴 것이 자명했다.


모든 사람이 떠난 뒤 ‘마스터’는 예약한 항공편을 확인했다. 마스터는 몇몇 식솔과 함께 몰타 공화국으로 떠날 참이었다. 특히 ‘마스터’는 15억 원을 주고 몰타 시민권을 사둔 지 오래였다. 돈으로 손쉽게 시민권을 살 수 있는 것부터 꼭꼭 숨어 지내기까지 최적이었다.


부활 인간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마스터’는 히틀러를 준비할 참이었다. 1년 정도 지나면 다시 그를 대중 앞에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마스터’는 계산했다. 아인슈타인에서 히틀러로 넘어가는 그 공백의 시간을 ‘마스터’는 철저하게 냉각기로 정의했다.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데 필요한 시간으로 구성했다.


같이 갑시다. 아인슈타인도 몰타 가야죠. ‘마스터’가 ‘그’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마스터’는 모든 신비로움에서 관찰자는 결국 그 창조자를 쳐다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았다. 그리고 그런 경이로움은 언젠간 팬심으로 번져 끝내 종교가 될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까지도 확신했다. ‘마스터’는 신흥 종교를 목표로 했다. 이미 ‘마스터’가 부른 관객과 취재진은 빅데이터 조사 결과 그런 음모론을 자주 믿는 이들이었으므로 무대 앞에서 단체 군중 심리도 작동된 터였다.


‘마스터’의 수족 역할을 하는 그의 부하가 물었다. 히틀러 다음엔 누구를 할 것인가요. ‘마스터’는 히틀러 다음엔 더 무시무시한 공포를 가져올 인물이 1년 사이에 나타날 것이며 몰타에서 시간을 보내며 지켜보면 될 일이라고 답했다. 그 대화를 들으며 부활한 아인슈타인은 무대에서처럼 ‘마스터’ 옆에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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