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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Feb 11. 2020

(초단편소설)저 집에 돌 던져주세요

꽁꽁 언 아스팔트 바닥은 스케이트장에 가까웠다. 걷기보다 차라리 미끄러지는 게 안전했다. 한파는 온 동네 사람을 집으로 가뒀다.


사내의 다 떨어진 신발 밑창엔 찌든 때가 누더기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거적때기에 불과한 사내의 겉옷은 겨울 한파에 입으나 마나 한 궁상이었다.


사내는 온종일 기차역에 엎드려 동전을 구걸하다가 이제 막 어스름한 주택가로 돌아와 빈 병을 모았다. 사내를 둘러싼 집들 사이사이로 밥 짓는 냄새와 보일러 때는 연기가 모락모락 흘러나왔다.


사내가 막 두 번째 빈 소주병을 잡았을 때 한 여자가 의류함에 침낭을 욱여넣고 있었다. 파란색 거대한 침낭은 사내가 보기엔 새것에 가까웠다. 추운 날 멀쩡한 침낭을 의류함에 버리는 여자의 모습에서 사내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사내가 멀리서 봤던 것처럼 침낭은 멀쩡했다. 안에는 꽉 찬 온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막 집에서 쓰다가 나온 게 분명한 침낭이었다.


“그것 좀 저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사내의 말에 여자가 흠칫 놀랐다. 그저 지나가는 노숙자인 줄 알았는데 말을 거는 모습에 기막히다는 눈치였다. 여자는 사내를 위아래로 훑으면서 악취가 난다는 듯 코를 막았다.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침낭을요?”


사내가 보기에 여자는 고민에 빠진 눈치였다. 재빨리 포획하는 게 중요했다. 침낭은 거의 절반이 의류함 속에 빨려 들어간 상태였다.


“여기에 버리실 거면 저 같은 사람이 따뜻하게 쓰도록 도와주세요.”


사내는 너덜거리는 신발 밑창을 아스팔트 바닥에 긁으며 춥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내가 보기에 여자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침낭은 절반 이상 의류함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내의 신발이 재차 아스팔트에서 긁히는 소리가 나자 그때서야 여자의 손이 멈췄다.


“드리는 건 상관없는데….”


여자가 말끝을 흐렸다. 사내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꽁꽁 언 손을 비벼댔다.


“이렇게 하시죠. 저기 저 집 보이시죠? 저 집 창문에 돌 좀 하나 던져주세요. 깨트리시면 바로 드릴게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여자는 칠십 미터 정도 떨어진 어느 다세대 주택의 제일 아래층을 가리켰다. 그 집도 다른 집들처럼 보일러 돌리는 연기가 굴뚝을 타고 솔솔 나왔고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사람 있는 집에 돌을 던져 창을 깨트리면 의류함이 반쯤 집어삼킨 침낭에서 손을 떼어 너에게 주겠노라고 여자는 사내에게 말하고 있었다.


사내는 따뜻한 침낭에 몸을 넣은 자신의 모습부터 상상했다. 그렇게 침낭에서 올려다보는 한겨울 하늘은 이전과 다를 게 분명했다. 다음으론 돌을 던지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돌이 날아가서 거실 창을 깨고 와장창 소리가 나는 동시에 영문 모르고 당할 집 안 사람들을 예측했다.


혹여 누군가 다치는 불상사도 떠올렸다. 그러나 그보다는 침낭을 들쳐 메고 어디로 도망가야 안전할지가 마침내 사내의 생각을 뒤덮었다.


근데 무슨 이유 때문에 돌을 던져야 하나요. 그런 질문은 꺼낼 자신이 사내는 없었다. 어쨌든 침낭은 절반 이상 의류함에 들어가 있었다. 그것이 마저 들어가는 순간 여자는 잃을 게 없었지만 사내는 한겨울의 거처를 잃는 것이었다. 엄혹한 교환의 법칙이었다.


“저 집이 확실한가요?”


사내의 질문은 간결했고 앞으로 펼쳐질 상황은 이전보다 더 간단했다. 그것은 생판 모르는 남의 가정을 위협하는 범죄였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내의 오늘 밤 거처는 어제와 같은 지독한 추위일 게 뻔했다.


큼지막한 돌이 사내의 손에서 창으로 던져졌다. 쨍그랑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유리 조각이 산산조각 튀었다.


사내는 의류함에 말려 들어 간 침낭을 빼내어 튀었다. 자신의 줄행랑을 보면서 뒤에서 코웃음 치고 있을 여자의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사내는 뛰었다.


오늘은 따뜻할 거다. 이 정도면 횡재했다. 올겨울 아니 내년 겨울이나 그 이상까지도 난 따뜻할 수 있다. 여름에는 이걸 어떻게 들고 다니지. 걱정도 팔자네. 따뜻할 수 있다.


사내는 그런 생각을 하며 뛰고 또 뛰었다. 그러나 사내의 예상과 달리 여자는 그가 뛰는 쪽은 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다. 여자는 깨진 창을 물끄러미 보며 웃고 또 웃었다.


여자가 나온 집에선 밥 짓는 냄새도 보일러 때는 김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침낭은 여자가 이틀 전 자신의 남편을 죽이고 사체를 감쌌던 것이었다. 사내가 여자한테 말을 걸었을 때 그녀가 코를 막은 건 침낭에서 난 악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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