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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Apr 04. 2020

(초단편소설) 포터

아빠는 포터였다. 포터도 아빠였다. 포터는 아빠의 생명이고 구체적 삶이었다. 포터 엔진은 아빠의 심장이었다. 작은 이 트럭 한 대가 아빠의 전부였다.


포터 엔진이 점화돼야 아빠의 하루 심장도 뛰었다. 글 쓰겠다고 밤을 꼴딱 새운 날쯤에야 나는 아빠의 하루를 봤다. 아빠는 여지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그리곤 대강 세수를 한 뒤 작업복을 입고 포터로 갔다.


그런 날이면 나는 아빠와 달리 아무 생산 능력도 없는 사회 잉여가 된 것 같았다. 내 미안함은 해가 뜨기도 전에 어둠을 썰어나가는 아빠를 배웅하는 거로 대체됐다. 포터의 시동이 걸리고 나서야 아빠는 비로소 그날의 첫마디를 내뱉었다. 다녀올게. 또 안 잤냐. 밥은 먹고 자라. 어지간하면 밤에 좀 자고. 그런 말들이었다.


아빠는 누구나 타인의 인생에 들어가려거든 깜빡이를 켜는 게 예의라고 했다. 그것은 자식인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툭툭 내건 몇 마디 말들이 나를 향한 작은 간섭이었다.


아빠는 포터 역시 그런 권리를 보장받아 마땅한 인격체로 대했다. 아빠는 늘 깜빡이 켜듯 포터의 의중부터 살폈다. 주행에 앞서 엔진 예열부터 했다. 그 시간 동안 아빠는 담배를 꺼내 피우며 포터 엔진 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어디 이상은 없나. 오일은 아직 문제없겠지. 아빠는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터덜거리는 포터 엔진의 공회전과 함께 아빠가 피우는 담뱃불도 지지직 타올랐다. 무뚝뚝한 나와 아빠의 침묵 사이엔 그 소리가 유난히 컸다. 담뱃불이 꺼지고 포터 액셀이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면서 아빠의 삶도 켜졌다. 회전목마처럼 매일 같은 차원을 빙빙 도는 아빠와 포터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됐다.


아빠는 포터로 공사판을 전전했다. 하청에 또 하청이 이어져 도대체 어느 회사에서 짓는지도 모르는 건설 현장 일을 아빠는 마땅히 했다. 세상은 그런 아빠를 ‘공사장 잡부’로 간단히 불렀다. 내가 아는 정확한 아빠의 노동 명칭은 ‘비계공’이었다.


얼마간 나가던 공사 현장에서 비계가 철거되면 다음 날 아빠와 포터는 다른 현장으로 갔다. 아빠와 포터가 떠난 공사 현장에서는 비계도 자취를 감췄다. 비계는 높은 곳에서 노동하기 위한 임시 가설물로 그 효용이 다하면 존재 이유가 없었다. 비계가 철거되면 아빠의 노동은 흔적이 없었다. 흔적이 없으니 존재가 지워진 개념이 됐다. 나는 써지지 않는 글을 쓰겠다고 백지를 채우고 지우길 반복하며 아빠가 세웠다가 철거된 비계를 떠올렸다.


하루 일당 12만 원을 위해 아빠는 포터를 몰고 다녔다. 나름의 고용 안정을 위한 방책이었다. 포터가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먼 지역까지 아침 일찍 갈 수 있다고 아빠는 매주 세차하며 말했다.


그런 아빠가 죽은 건 석 달 전이었다. 1년에 우리나라 산업 현장에서 안전사고로 죽는 사람이 2400명쯤 된다고 아빠의 장례 식장에서 처음 본 용역 직원이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걸 들었다. 아빠의 죽음은 공사 현장 추락이었다. 멀리서 타인이 보면 그리 유별난 사망도 아니라는 걸 훗날 알았다. 폭발이면 굉음이 터져 시끄러웠을 테고 매몰이면 그나마도 구조가 벌어져 잡음이 일었을 터였다. 그러나 아빠 앞에 두 글자로 간단하게 정의된 ‘추락’은 그야말로 2400명의 1이자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얼마 후 500만 원이 낯선 회사 이름으로 계좌에 찍혔다. 위로금이라고 입금 직후 휴대폰에 걸려온 낯선 목소리가 설명했다. 비계공인 아빠가 비계를 설치할 때 지켜야 할 안전을 어기고 엉성하게 설치했으므로 이것은 일정 수준 귀책사유가 있지만 최대한 넣은 금액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12만 원의 일당 안에는 그런 책임까지 들어있었다. 아빠가 그걸 어겼지만 사정을 봐준 것이므로 500만 원은 고마워해야 하는 금액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한 아빠의 안전 책임은 12만 원에서 얼마를 차지하는 것인지 나는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타인의 인생에 들어갈 땐 깜빡이를 켜고 들어가야 한다던 아빠의 말이 귀에 맴돌아서였다. 전화를 건 낯선 이도 책임질 입장은 아닌 게 분명해 보였다. 하청에 하청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 맨 아래에서 고작 바로 그 위여 봤자 상황은 빤했다.


포터에게도 매일 새벽 깜빡이 켜듯 살금살금 다가가던 아빠의 모습은 내 기억에 있었다. 그러나 현장의 비계공으로 일하는 아빠의 모습은 내 머리에 없었다. 없는 기억으로 상황을 유추해 책임자도 아닌 낯선 이에게 물어 따질 의욕이 내겐 없었다.


그날 이후 아빠의 포터는 집 앞에 섰다.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겨울이 왔다. 포터 엔진은 아빠의 심장처럼 멈춘 지 오래였다.


엊그제엔 포터가 함박눈을 고스란히 맞았다. 눈발을 이불처럼 덮고 잠든 포터 사이로 헤드라이트만 겨우 보였다. 헤드라이트는 코뚜레 걸린 소가 배고픈 나머지 여물을 달라며 깜빡이는 눈처럼 도드라졌다. 시동을 걸어야 한다. 시동을 걸어서 엔진을 돌려야 한다. 그런 환청이 들렸다. 눈을 포터 헤드라이트에서 떼기 어려웠다.


포터 헤드라이트는 매일 새벽 어스름에 아빠의 눈으로 세상을 비췄다. 그래서 나는 끝내 포터 시동을 걸지 않았다. 포터 엔진을 돌리면 겨우 잠든 아빠를 억지로 깨우는 일이 될 것 같았다. 새벽 4시는 아직 멀었다. 나는 차라리 아빠가 쉬게 된 지금이 잘됐다는 생각으로 환청을 떨쳐냈다. 눈은 계속 내렸다. 얼마 뒤 포터 헤드라이트에도 눈이 덮였다. 포터는 그제야 눈 덮인 세상과 어울려 한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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