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일 때 석철이라는 이름의 아이가 있었다. 성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김 씨였던 것 같다. 석철이라는 이름과 그의 외모가 어울린다고 생각했기에 이름은 기억하고 있다. 지금 학생들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당시 남자 중학생들은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머리를 아주 짧게 깎아야 했다.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대체로 1cm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석철이란 아이는 유독 머리를 짧게 깎았다. 스님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머리를 바짝 미는 바람에 머리 형태가 아주 잘 드러났는데, 우리가 흔히 짱구라고 부르던 모양이었다. 마치 혹이 난 것처럼 굴곡이 져 있어서 꼭 돌멩이처럼 보였다. 그의 머리엔 '땜통'이라 부르던 상처도 많아서 어린 나이에도 범상치 않은 유년기를 보낸 게 분명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은 곧 이름에서 느껴지는 단단함과 연결되었다. 석철이란 이름에서 석은 돌을 떠올리게 했고 철은 말 그대로 단단한 쇠붙이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난 그의 부모님이 돌 석 자를 써서 이름을 지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난 작명학을 몰랐고 지금도 터무니없다는 이론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돌은 '돌머리'라는 부정적인 인상을 떠오르게 하는 데가 있으니 이름으로는 부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영악한 아이들이 만만한 급우들을 상대로 '돌대가리'라고 부르며 놀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석철이에게 이름의 석이 한자로 뭐냐고 물었다. 석철이는 태연하게 돌이라고 했다.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는 그의 태도에 난 깜짝 놀랐다. 나라면 부끄러워서 얼버무렸을 말을 그는 쉽게 했다.
아마 그런 일을 계기로 그와 친해진 것 같다. 무슨 연유인지 기억나지는 않는데 어느 날 석철이의 집에 가게 되었다. 그가 찾아간 곳은 내가 기대한 평범한 아파트가 아니라 시장의 과일 가게였다. 가게는 사거리에 있었고 가게는 제법 컸다. 가게 안쪽에 그의 가족이 생활하는 집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가게 안쪽의 방문으로 사라지더니 가방을 내려놓고 나왔다. 난 그곳이 그가 사는 집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정말 그곳이 그의 집이라면 대답하기 부끄러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는 날 반갑게 맞아주셨다. 장사하느라 신경 써주시진 못했지만 아들의 친구가 찾아왔다는 데 감격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석철을 대하는 어머니의 말투에는 쌀쌀한 데가 있었고 그도 어머니에게 그리 살갑게 굴지 않았다.
난 그때 불과 14살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계급과 경제에 좌우되는 인간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나와 다르게 그가 서민이며 생활에 여유가 없고 부모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감히 이름에 돌 석 자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성적과 훌륭한 직업을 가져야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어른들의 가르침에 충실했던 나의 한계였다. 사실이 그랬다.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편애하여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용서했으며 다 같이 매를 맞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은 살살 때렸다. 난 그런 편애를 즐겼고 아무런 부당함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겼다.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공평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책이나 읽고 좋은 성적 받는 걸 최고로 알았던 나는 시장 노동자가 평범한 샐러리맨보다 더 부유할 수 있으며 개인의 정갈한 성향과 고결한 가치는 생활 환경과는 거의 무관하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물론 가난이나 외모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걸 도덕 시간에 배웠기에 그를 충실히 따르고자 노력했다. 시장에서 살고 있는지 묻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런 태도의 발로였다. 난 나의 그런 태도를 훌륭히 여겼다. 하지만 난 시장에서 사는 걸 그가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내 근원적 문제임을 모르고 있었다. 난 질서에 편입된 자로서 자긍심을 느끼며 내가 생각하는 수치심을 그에게 투영했다. 아카데미즘을 숭상하던 나는 다가오는 아방가르드적 세계의 문맹자였다.
나는 그가 급우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와 친하게 지내려 했다. 그는 급우들과 종종 싸웠으며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있었다. 그의 외모, 그의 짱구 머리가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난 그를 동정했고 시혜를 베풀듯 다가섰다. 하지만 그 이상 다가가지는 않았다. 난 그가 나와는 본질적으로 결이 다르다고 생각해서 그저 도움의 손길이나 내주고 말았다. 수전 손택이 지적했듯, 난 손수건에 뿌린 향수 냄새를 일부러 맡고 졸도하는 방식으로 귀족적 취향을 드러내는 한편, 악취 나는 손수건을 킁킁거리면서 비위가 강하다고 자랑하는 캠프 감식가들이 되고자 했다. 이 모든 행위엔 정신적 우월주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온정을 베풀며 정신적 쾌감을 느꼈으며 그 양단의 속물적 경계에서 어물쩍거렸다. 그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내 친구야."라고 날 소개했을 때 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애매하게 웃었다. 놀랍게도 난 그를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그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사해서 전학을 갔다고 했다. 누군가와 심하게 싸워서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렇게 전학을 간 바람에 그의 얼굴은 내 졸업 앨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바싹 깎은 울퉁불퉁한 머리에 때로 순박한 미소를 짓곤 했지만, 자기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상대할 땐 씨근덕거리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던 그의 얼굴이 내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난 그가 사라졌음에도 놀라지 않았고 마치 <사랑의 학교>에 나오는 프란티가 어느 날 퇴학을 당한 것처럼 그 역시 그렇게 사라지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척했지만 실은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세상에 적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적응하고 싶지 않다면 어떤 각오를 해야 하는지, 인간의 속물성이 얼마나 어려서부터 형성되는지,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석철이는 내가 돈이 많거나 명예가 드높아서가 아니라 날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기에 날 친구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는 속물적이지 않았고 그래서 급우들의 놀림에 저항했다. 급우들에게 그리고 어른들에게 14살의 그는 이미 잘 될 가능성이 없는 가난한 부적응자였지만 정작 자신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머리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인간성을 폄하하는 관상가들과 이름에 돌 석 자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놀려댔던 작명가들은 그런 걸 신봉하며 단체로 타인을 놀려대는 자신들의 미개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가 저항하자 오히려 폭력을 행사했다며 그를 고발했다. 그는 다수의 횡포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고 외로운 반항아가 되었으며 결국 전학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사라졌고 난 곧 그를 잊었다. 난 아직 알지 못했다. 내가 혼자라는 걸 깨닫기에는, 나 역시 그들의 일부라는 걸 깨닫기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오늘날 이런 교훈은 고리타분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이제 여러 고전적 교훈을 비틀어 시대에 맞게 해석하게 되었는데 <리어왕>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코델리아의 진실한 마음을 읽지 못한 리어왕의 어리석음과 두 자녀의 탐욕이 리어왕의 비극을 부른 것으로 보았다. 이제 리어왕이 재산을 나눠줄 때 실수를 했다고 말한다.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조금씩 줬어야 하는데 한번에 다 줘버린 탓에 거지 취급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리어왕이 어리석었다면 바로 그런 점에서 어리석었다. 그러고는 두 자녀의 탐욕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탐욕이라니, 그건 탐욕이 아니라 지혜였다. 돈으로 자녀의 마음의 사려 했던 못된 아버지는 자녀 덕분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되었고 궁극에는 교화될 수 있었다. 두 딸의 마음 씀씀이를 탐욕이라고 부르는 자는 리어왕처럼 늙어서 거지꼴을 면치 못하리라. 이런 현대적 해석은 현대인의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이제 현대의 부부는 마치 업무적으로 만난 경쟁자를 대하듯 상대방에게 조금의 손해를 본 것만 같아도 이맛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우리는 속물성을 당연한 가치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서로의 끊임없는 저울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래전 가르침은 황금에 욕심을 내는 마음이 불화의 원인이라고 했지만, 오늘날의 가르침은 돈이 부족해서 부부 간에 다툼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돈이 아주 많으면 저울질을 할 필요가 없으니 그제야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황금에 조금의 욕심도 보이지 않았던 코델리아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작가적 상상이었다. 가난한 부적응자가 추방되는 현실을 부정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렇게 석철이와 코델리아를 보내고 나자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질서 안에는 승자만이 남게 되었다. 혹자는 이상하다고 물을 것이다. 우리가 시대의 새로운 가르침을 잘 따르면 따를수록 지난 세기의 사람들은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긴 고행이 우리를 기다리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 말이다. 폭풍우 속에서 울부짖던 리어왕의 고통은 우습게 느껴진다고 다들 아우성이다. 전통적 가르침에 따르면 큰 상처가 나면 작은 상처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즉 지금의 고통은 더 큰 고통을 만나지 못한 덕분이니 오히려 기뻐할 일이다. "그래도 삼성가에 임대료를 내면서 사는 세상은 아니잖아."하고 말이다. 현대적 가르침으로 해석하자면 이렇다. "집에 하인이 한 명뿐이라고요? 비참한 심정이시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