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현대인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어디서든 무리라는 밧줄에 묶여서 나 혼자 있으면 왠지 불안하다.
혼자 밥 먹고 영화 보면 왠지 남의 눈에 왕따로 비칠까 봐 초초하다..
그러나 모든 인생은 결국 혼자다.
내 옆에 영원히 있어줄 거 같은 사람들도 어느 순간 다 떠난다.
영원할 거 같았던 동지, 아니 친구도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
그 후에 내가 잘못된 삶을 살았나 비관한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몸을 열심히 단련하여 이쁜 몸매를 갖듯이, 마음도 열심히 수련하여 나만의 성을 쌓아야 한다.
남으로부터 내 마음을 보호하는, 나를 외면하더라도 견딜 수 있는 그런 성 말이다.
내 마음의 성을 지켜야 이 험난한 세상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다.
언제 까지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진정성 없이 무리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천재로 불린 이들은 대개 고독한 삶을 살았다.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은 천재의 특징과 관련해 평범한 인간이 깔아놓은 선로에 자신의 사상을 싣지 않는다 고 말했다.
외롭다고 외치며 아무나 만나고, 수다 떨고, 진정성 없이 살아가고 싶은가?
그게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내면의 외로움이라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왜 나 자신은 나의 롤 모델이 될 수 없다는 말인가?
우리는 오직 자신의 최고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말한다.
무언가가 아니라 누군가가 되기로 결정하면 수많은 걱정을 덜 수 있다. 특히 자기 자신이 되기로 결심하면 신께서 그에 걸맞은 달란트를 반드시 선물하신다.
대지의 작가 펄벅은 말한다. 내 안에는 나 홀로 살고 있는 장소가 있다.
그곳에선 절대 마르지 않는 활기의 샘이 솟아난다. 상상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삶을 살아볼 수 있다.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자신만이 꿈꾸는 비밀스러운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상상 속의 또 다른 자아로부터 지혜롭고 열정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다.
소세키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스펙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였지만, 화려한 겉모습은 안정이나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상위 몇 퍼센트에 들 만한 유학 생활 역시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를 키운 것은 고독이었고, 내면을 채워준 것은 외로움이었다.
나 역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작가라는 꿈을 꾸지 않았을 것이다.
늘 병원생활에 지쳐서 쓰러지며 지냈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외로움에 나도 모르게 작가라는 목표를 세우고 책 읽기에 도전했다.
특히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이 세상 모든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외로움이 아니라, 세상이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간 동안 나는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며 독서를 하고 글쓰기를 한다.
직장생활에서의 치열한 싸움도 이 외로운 시간을 견뎠기에, 지금까지 버텨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외로움과 사이좋게 지내왔고, 지금도 이 시간들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잠시 짬이라도, 며칠 휴가가 주워져도 누군가의 무리에서 헛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가 않다.
외로움이라는 친구를 찾아, 커피도 마시러 가고 때론 머리도 식힐 겸 버스를 타고 가까운 곳에 혼자서 떠난다.
파스칼이 (팡세)에서 말했듯 인간의 불행은 빈 방에서 혼자 성찰하는 시간을 갖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현대인들은 빈방에서 성찰하는 시간도 없지만, 왠지 빈방에서 혼자 있다 보면 무서움에 아니 외로움에 어쩔 줄 몰라한다.
하지만, 단단한 사람만이 외로움을 즐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남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내 마음속에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지가 중요하다.
인생의 기준 축은 나 자신 이어야 한다.
자기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남들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첫 번째는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살아야 한다.
직장에서는 상사의 눈치 보랴, 집에서는 남편 눈치 보랴, 시댁 눈치 보랴 이렇게 살지 말자.
내가 할 일은 완벽하게 하고 그 후에는 나 자신의 눈치를 보자.
나의 하루가 어땠는지, 나의 마음은 어떤지, 나의 기분은 어떤지 나에게 말을 걸어보자.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목욕탕을 이용해 보자.
나의 경우는 목욕 시간에 거울을 보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 본다.
오늘도 회사에서 스트레스받는 일들이 많았지,,
왜 사람들은 자기 일이나 열심히 하지 남들의 뒷다마에 남들 평가하기 바쁠까?
하루를 잘 버텨낸 나를 위해 고생했어.. 힘내..라는 말을 해본다.
그럼 어느덧 내 마음속에서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마.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야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두 번째는 , 외로움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외로움이 찾아왔을 때 미칠 듯 누군가를 찾기보단 외로움을 친구로 생각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외로움이 물밀 듯 밀려오면,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아무 버스를 타고 외로움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낯선 곳에 가서 낯선 풍경을 보고, 나를 모르는 공간으로 들어가다 보면 어느덧 외로움이라는 친구는 더 욱도 내 옆에 가까이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이 없을 때는 무작정 걷기를 한다.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면 어느덧 나의 마음을 보살필 수 있게 된다.
외로움을 불청객으로 여겨 쫓아 보내지 말고 함께 즐겨보면 어떨까?
마지막으로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보자.
세상의 잣대에 맞춰 살 필요는 없다.
좋은 직장, 남에게 보이기 위한 직장, 남이 좋다는 신랑, 신붓감, 이런 것이 뭐가 필요할까?
세상의 평가에 나를 맞추며 살기보단 세상이 나를 위해 맞춰 살도록 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아침에 일어나면 세상이 나를 위해 따뜻한 햇살을 주었네..라고 말한다.
세상이 나를 위해 아파트를 줬고, 나를 위해 출근할 수 있는 차를 줬네,, 라며 세상이 나를 위한 것처럼 행동한다.
그 누가 봐도 이상한 행동이지만, 남이 뭐라고 하던 내 행복이 우선이기에 전혀 거리낌 없다.
인생의 목적은 남들보다 더 우위에 서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인생을 더 느끼고, 더 즐기고, 행복해지면 된다.
그러니 안 그래도 남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태어난 마당에 비교의 버릇을 또 한 번 덧대려 하지 마라.
나는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