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혼자서도 당당해지는 법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자.

by 천정은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늘 평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성과를 통해 승진의 기회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이다.

k 씨는 직장인 5년 차다.

남들보다 부지런한 성격 탓에 제일 먼저 출근한다.

가장 기본인 청소부터 시작해서 환기까지 시키면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온다.

다른 직원들은 업무만 하지, 창문틀에 책상 위에 쌓인 먼지 한번 닦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내가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지만, 몇 달째 혼자서 청소하다 보니 내가 청소하는 걸 마땅하게 생각하는 건가?

그다음 날 같이 하자고 했더니 다들 일이 너무 많다며 본채만 채 했다.

자신도 쌓인 일을 뒤로하고 청소부터 한건 데,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후 과장은 k 씨의 후배를 불러서 업무에 중요한 교육을 받고 오라고 했다.

k 씨가 몇 달째 배우고 싶은 업무의 교육이었기에 본인이 가면 안 되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윗 상사는 k 씨보다는 k 씨의 후배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k 씨는 그날부터 자신은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 아닌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인가?

왜 나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기지 않지?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나름 자신도 남들보다 일을 배우는 속도가 느리지 않은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직장이라는 곳은 냉혹한 사회 세계다.

직장생활 몇십 년 넘게 일한 사람도 사직서를 내고 돌아서면 남이다.

즉, 어제의 부장도 내일의 평범한 아저씨라는 소리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의 작은 평가에 곤두박질치지 않고 지혜롭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겠지,

나는 이 정도 했는데,

남이 하기 싫은 일도 다 했는데..

알아봐 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아무런 DNA연관이 없는 사람들이 내 부모처럼 관심 갖고 고생했다고 말하는 것 또한 이상하다.

더 이상 어린양 피우지 말고 내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관태기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로, 인간관계에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줄을 잘 타야 승진한다. 윗사람한테 잘해라.

늘 사람들에게 피곤함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10명 중 7명은 인맥 관리에 피로를 느끼고, 4명 중 1명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한다.

4년 차 직장인인 이성주(30) 씨도 지난해부터 ‘혼밥’을 즐기는 등 한창 ‘관태기’에 빠져 있다. 입사 초기만 하더라도 친한 회사 동료들과 함께 몰려다니며 점심을 먹는 걸 걸 즐겼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굉장히 부담스러워 혼자 점심시간을 즐기는 편을 선호한다. 그렇다고 이 씨가 회사 동료와 사이는 나쁜 것은 아니다. 같이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일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이 씨는 업무는 더 편해졌다고 말했다. 이 씨는 “업무에 불편하지 않은 정도까지만 어울리고 싶다”며 “이제는 회사 동료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갖는 것도 하나의 감정노동처럼 느껴진다”라고 했다.

누군가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관태기라는 단어는 어쩜 당연할지 모른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라도 관태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전규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관태기 증상은 인간관계 등에서 피로감을 느껴 이를 회피하려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며 “사람은 주변과의 관계를 통해 생활해야만 하기 때문에 주변과의 적극적인 관계 설정을 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나 역시 직장생활 15년 동안, 직장에 목매여 살았다.

출근과 동시에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평가라는 냉정한 결과 앞에 자유롭지 못했다.

아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만 하는 나에게 사회생활 못하네.

일만 잘하면 뭐해?

줄을 잘 섰어야지.

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말에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나는 나만의 길을 갔다.

남의 평가와 시선에 내 인생을 걸기는 아까웠다.

그 사람들이 나를 밥 먹여 줄 것도 아니고,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까운 내 시간을 투자해서 술 마시고, 운동하며 주말까지 반납해야 하는 인생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었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었다.

인생에 꼭 정답은 없다고 생각했다.

승진을 위해서,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남의 시선에 끌려 사는 삶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같은 병원 동료는 주말에도 과장님과 영화 보러 다니고 밥 먹으러 다녔다.

자신은 수간호사까지 되고 싶다는 포부에, 과장님 백 도 한몫할 꺼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과장님 옆에 붙어서 나름 자신의 시간을 쏟아부었건만, 나중에 결과는 동료가 아니었다.

배신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지만, 시간을 돌릴 수는 없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어 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말이다.

다만, 나를 위해 생각하고 선택하는 자율성은 내가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도 남의 시선에 갇혀서 살면 안 된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스트가 되는 것이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타인의 공격을 허락하지 않는 치밀함과 자기 방어에 집중하는 모습이 우리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나쁘지 않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다 나를 지키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내 마음의 성벽을 단단히 쌓아보자.

그 성벽이 때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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