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취업준비 끝에 합격했을 때, 청약당첨으로 내 집마련을 했을 때, 열 달 동안 아이를 품었다가 만났을 때.
나는 그 모든 순간을 '드디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난 오늘부터 달갑지 않은 '드디어'를 만났다.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된 것이다.
"엄마, 오늘부터 여름방학이야. 진짜 신나지?"라고 물으며 두 눈 가득 동조의 눈맞힘을 바라는 아이에게
"와, 신난다"라며 내가 올릴 수 있는 최대치의 하이톤으로 박자를 맞춰준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삼시세끼 걱정과 무더운 여름을 세 아이와 뒤엉키며 보낼 날들의 걱정으로 초점 없는 두 눈만 둥둥 떠다닌다. 처음 맞는 방학도 아니고, 이미 갈고 닦은 실력이 9년 차인데도 매번 '아니 벌써?'를 반복하는 건 무슨 건망증이란 말인가? 다행인 건, 머릿속 뇌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데 나의 두 발은 아직 쌩쌩하다는 거다.
그래서 난 지금 최고속도의 와이파이 강국을 실감할 수 있고 모든 각도에서 CCTV가 촬영 중이라 허튼수작할 수 없는, 외부음식을 꺼내는 순간 쫓겨나게 되는 곳에 와있다. 먹거리, 놀거리 등이 넘쳐나서 잠깐 혼을 쏙 빼놓지만 아이들은 영혼을 맡긴 듯하다.
출입에 성별도 연령제한도 없는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는 이곳.
들어오자마자 자리를 선점해야 하는 이곳.
시원한 바람이 천장에서부터 쏟아져내려 와 챙겨간 긴팔로 여름추위를 덮는데, 아이들은 반팔을 입고도 땀샤워를 하고 있는 이곳.
자신은 어엿한 초등학생이라 뽀로로는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는 녀석이, 뽀로로음료수만 파는 현실에 좌절하는 이곳.
육아박사님들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 아이를 혼내지 마세요."라는 충고를 9년째 되새기며 수행 중인데, 어느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아이 이름을 부르며 훈육하게 되는 이곳.
두 시간밖에 놀지 않았는데, 먹은 거라곤 컵라면뿐인데, 지갑에서 10만 원을 결제해야 하는 이곳.
그렇다. 당신이 예상했듯이 난 지금 아이들에게 천국인 키즈카페에 와있다. 물론 나는 천국과 지옥 그 어디쯤에 걸쳐져 있다. 다행히 줄다리기가 팽팽하여 영혼까지 털리진 않았다.
"엄마, 진짜 재미있었어."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뒷자리에 앉아 셋이서 종알거리는 모습을 보니, 그 자체로 웃음이 지어진다. 너희가 그렇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에, 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더하여 생각해 보니 올 여름방학은 꽤나 롤러코스터 같은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이 기억을 또 까먹고 "아니 벌써 방학이야?"를 되뇌더라도 나는 오늘의 기분을 한 줄로 남기련다.
오늘, 드디어 여름방학 시작! 아싸라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