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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 또 온 도시엄마

8별. 12775번

by 류지 Mar 21. 2025

할머니, 저예요 손녀


당신의 고된 뒷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고맙다는 한마디,

그 작은 말이

왜 이리 늦어버렸을까요


당신이 차려주던 색색의 나물 위엔

따뜻함이 가득했지만

당신의 자리엔 언제나

조용한 눈빛만 있었지요

부엌 모퉁이에서 힘없이 우리를 지켜보던 당신을

왜 나는 더 바라보지 못했을까요


당신의 침상에서 메마른 가지처럼 삐져나온

겨울 손을 잡았을 때 

당신의 인생은 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밥을 짓고, 

아이를 안고,

옷을 꿰매고, 

밭일을 갈던 당신


하루도 쉰 적이 없던 손,

고운적 없이 일만 했던 손,

조용히 혼자서 하루를 쓸어내리던 손을

왜 그제야 잡아봤을까요


지나가는 바람에 대고 혼자 주저리주저리

그곳에 닿지도 않는데 투덜투덜


그런데요 할머니, 

엄마의 손이 

점점 당신의 손을 닮아가고 있어요


저요, 

우리 엄마 손 원 없이 만져보고 싶어요

쭈끌쭈글하고 못 생겼어도 상관없어요

오늘부터 딱 12,775번 더 만지게 해 주세요


하늘에 계신 할머니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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