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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별. 12775번
할머니, 저예요 손녀
당신의 고된 뒷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고맙다는 한마디,
그 작은 말이
왜 이리 늦어버렸을까요
당신이 차려주던 색색의 나물 위엔
따뜻함이 가득했지만
당신의 자리엔 언제나
조용한 눈빛만 있었지요
부엌 모퉁이에서 힘없이 우리를 지켜보던 당신을
왜 나는 더 바라보지 못했을까요
당신의 침상에서 메마른 가지처럼 삐져나온
겨울 손을 잡았을 때
당신의 인생은 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밥을 짓고,
아이를 안고,
옷을 꿰매고,
밭일을 갈던 당신
하루도 쉰 적이 없던 손,
고운적 없이 일만 했던 손,
조용히 혼자서 하루를 쓸어내리던 손을
왜 그제야 잡아봤을까요
지나가는 바람에 대고 나 혼자 주저리주저리
그곳에 닿지도 않는데 투덜투덜
그런데요 할머니,
엄마의 손이
점점 당신의 손을 닮아가고 있어요
저요,
우리 엄마 손 원 없이 만져보고 싶어요
쭈끌쭈글하고 못 생겼어도 상관없어요
오늘부터 딱 12,775번 더 만지게 해 주세요
하늘에 계신 할머니께
비나이다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