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스타그램 첫 도전, 필터 없이 나를 드러내다
2020년, 코로나가 일상을 뒤덮으며 세상은 멈췄다. 나 역시 갑자기 일자리를 잃고 멍하니 집에 갇혀버렸다. 치매 예방 강사로 막 활동을 시작했을 때였으니, 그 충격은 컸다. 그런데, 뭘 해야 할까?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바로 인스타그램.
솔직히 난 남들 앞에 나서는 게 두렵다. 겁 많은 50대 아줌마라서, 나를 세상에 공개하는 건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악플에 시달리면 어떡하지?" 이런 쓸데없는 걱정이 먼저였다. 그래도 그때는 뭐라도 해야 했다. "이거라도 해야 살 길이 열린다!"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인스타그램 세상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어려움이 몰려왔다. 콘텐츠? 도대체 그게 뭐냐고! 뭘 올려야 하는지조차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가 잘 아는 걸로 하자 싶었다. 치매 예방 강사니까, 디멘티아강사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생소한 말들이 쏟아졌다. 팔로우? 팔로윙? 그게 그거 아닌가? 헷갈리는 단어들에 적응하는 데만 시간이 꽤 걸렸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는 카드뉴스라는 걸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카드뉴스? 그게 뭔데? 또 배우고 또 배워야 했다.
그러나 내가 누구냐,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다.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새벽 기상 사진을 찍어 올리고, 카드뉴스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첫 카드뉴스가 완성됐을 때는 정말 신기했다!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다니, 자랑스럽기도 하고 신기방기했다.
사람들이 얼굴을 드러내야 팔로워가 늘어난다고 하길래, 처음엔 무서워서 마스크를 쓰고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용기를 내서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별거 아니네!" 남들은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내 스스로 겁을 먹었던 것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을 붙들고 사는 날들이 이어졌다. 눈은 나빠졌지만 인스타에 푹 빠졌다. 남편이 날 보면서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한소리씩 했을 정도다. 나도 그때는 스스로 좀 미친 것 같았다. 하지만, 팔로워 수가 100명, 1000명, 2000명, 3000명으로 늘어날 때마다 그 성취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정체기가 왔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결국,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찾아왔다.
인스타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나는 잠시 손을 놓았다. 팔로워 숫자에 대한 욕심이 줄었지만, 그 과정에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를 깨달았다. 결국 숫자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50대 아줌마의 디지털 생존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