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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Apr 22. 2024

마음의 맷집


엄마보다 무서운 선생님은 없어.

큰 아이 초등 1학년 때.

주로 고학년만 수업하시던 남자 선생님이 처음으로 1학년 담임이 되셨다.

자유분방하다 못해 어수선한 꼬맹이들이 각자 자기말만 하는 을이 꾀나 힘들어하셨다.

고학년에게 쓰던 지시적인 말투, 낮은 목소리, 웃음기 없는 표정 때문에 아이들은 집에와서 선생님이 무섭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이는 뭐래?
우리 ★★는 매일 와서 울어. 등교할 때도 가기 싫다고 난리고. 이거 좀 문제 있는 거 아니야?

그 당시 다른 집에서는 제법 시끄러운 이슈였는데 나는 몰랐다.  

같은반 친구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받고 나서야 사태를 인지했다.

걱정이 되서 아이에게도 물어봤드랬다.


○○아. 초등학교 가니깐 어때? 선생님은 어떤 분이야? 교실에서 어떤지 궁금하네.

직접적으로 아이에게 선생님이 무섭냐고 물으면 괜한 이미지를 만들까바 돌려서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몰라'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 선생님이 좀 무서운 편이셔?  

그제사 살짝 고민해 보는 아이.

그리고는 싱글싱글 웃으며 타던 그네에 집중하며 대답했따.


엄마! 어차피 제일 무서운 건 엄마야. 그 다음은 △△△ 선생님이야(유치원 7세반 선생님이 장난꾸러기들에게 단호한 편이셨다). 그러니깐 지금 ■■■ 선생님은 하나도 무섭지 않지.  

아이가 마음에 입은 데미지가 없으니 좋아해야 하는데 씁쓸한 뒤끝은 뭐람.

무튼, 그 해 친구들은 제법 선생님께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아들에게는 타격감이 전혀 없었다.

이미 내 아들로 자라면서 생긴 맷집이 한 몫 한 것이다.





나 엄마 딸이야.  

딸아이는 비슷한 상황을 초등 2학년때 겪었다.

학급에 질서가 생기기 전까지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 있을 것, 수업 중에는 손들고 선생님이 호명할 때까지는 절대 먼저 말하지 말 것과 같은 여러 규칙으로 학급을 이끄셨다.

초등 1학년 때 자유롭게 풀어진 상태로 올라온 아이들이 수업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학기초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선생님의 변.

문제는 그 과정에서 올해 선생님이 무섭다는 아이들의 하소연이 새어 나왔고 이번에도 딸아이 친구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는 뭐래? 우리 딸은 아주 하교하고 나면 울어대고 난리야. 학교에 한번 전화를 해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도통 모르겠네.  ●●이는 별 말 없었어?


딸아이는 아들과 달리 표현이 명확하고 섬세한 아이다.

오빠는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으나 딸아이는 제법 2학년 생활에 불만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대부분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 있어야 하며, 보통 40분짜리 두 차시 수업을 쉬는 시간 없이 붙여서 하시는 방식에 대한 투정이었다.

늘 학교에서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아이였기에 이때다 싶어 선생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넌지시 물어봤다.


●●아. 선생님이 좀 무서운 편이셔? 어때?

대답은 단호박으로 아니란다.
 

나 엄마 딸이야. 엄마보다 무서운 사람은 없어.

다행이다 싶은데 또다시 씁쓸하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네이버 어학사전 '맷집'에 대한 검색 결과


맷집은 직설적으로 매를 견디어 내는 힘이나 정도라고 나온다.

설마 정말 아이를 때려서 생긴 맷집은 상상하는 분은 없으리라.

요즘 아이들은 마음의 맷집이 약하다.

아이들이 가정이라는 온실 속에서 작은 스크래치 하나 없이 곱고 귀하게 자라서 감정에 매우 취약하다.  


무표정하게 사무적이면 불친절하다고 느낀다.

30명 아이들이 앉아 있으니 모두의 매순간을 지켜볼 수 없어서 자칫 소홀하면 무관심이라고 한다.

잘못된 것을 수정하고 고쳐서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적하면 아이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자라면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이기에 생기는 문제들이다.  

부모 + 양가 조부모 + 이모, 삼촌, 고모 까지 집안 모든 어른들은 이집에 하나뿐이 아이를 향해 매순간 반응해준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관심을 올곧이 받는 것이 당연하리라.

자라는 내내 성장만을 거듭했으니 해내는 모든 것이 경이롭고 대견해서 칭찬만 받고 자란 것도 일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학교는 공동체 생활을 배우고 새로운 학습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가정에서의 지금까지와 차이가 있다.

고쳐지지 않으면 사회성에 문제가 생기고,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학습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알려주고(지적하고), 고쳐주고(잘잘못을 따지고), 강조하는(훈계하는) 과정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살면서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잔소리, 간섭, 언성, 표정에 놀라고 본질은 빠진 채 감정에만 매몰되어 상처를 받는다.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불편하고 겁이 날 수 있다.

아이는 가정에 감정만을 전달하고 가정에서는 아이의 이야기만 듣고 덥석 걱정과 불만이 쌓인다.


무조건적인 허용은 오히려 아이가 학교라는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나는 친구같은 부모라는 말에 부정적이다.

친구같은 부모가 되겠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잔소리, 지적, 훈육이 어려워진다.

부모는 아이를 올바르게 자라게 돕고 건강하고 안전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때로는 가르치고, 교육하고, 훈계해야 한다.

가정에서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면 사실상 학교에서 혼날 일도 거의 없다.

또한 가정에서 이런 과정을 겪어본 아이들은 간혹 학교에서 혼나는 일을 경험해도 덤덤할 수 있다.

가정에서 자기 실수에 대해 혼나기도 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벌을 받기도 하면서 마음의 맷집이 생긴 탓이다.

일정의 예방접종이 되어 있는 셈이다.   


부러 혼낼 필요는 없다.

그저 아이를 감싸기만 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에도 맷집이 필요하고, 면역력을 갖춘 아이는 오히려 집을 나선 곳에서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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