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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Apr 18. 2024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착한부모 콤플렉스로 자랐다라



♬ 착한 아이처럼 말만 잘 들으라 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자꾸 지겨워해

아무리 떼를 써도 차라리 토라져봐도 남자가 주는 이별에 항상 울기만 해 ♬

(거미, 착한아이 가사 중에서)


80년대 생입니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여전히 가부장적이었고 충분히 풍족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라는 성장에 목말라 있었고 어른들은 부를 축적하기에 바빴으며 부모의 역할은 먹이고 재우고 학교 보내는 것으로 충분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른의 말은 늘 옳았고(옳다고 주장했고), 그들의 말을 잘 따라야 착한 아이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수동적이었고 비교적 온순했던 저는 그 시절에 비교적 잘 적응했습니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착하다' 했습니다.

군소리 없이 시키는 대로 하면 '그래 착하다' 칭찬(욕일수도) 한마디  들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른들에게 잘 맞춰가며 자랐습니다.

착한아이로.



이제는 어른이 되어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버렸네요.

이번엔 아이가 왕입니다.

요즘 부모노릇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주고, 공감해줘야 하며 최대한 수용해줘야 합니다.

어려서는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한다 해서 착한아이로 살았는데, 부모가 되어서는 내 아이의 눈치를 보며 착한부모가 되기 위해 전전긍긍합니다(이 부분에서 상당히 억울합니다.).

혹여 내가 하는 말에 아이가 상처를 받을까 봐 걱정입니다.

아이 마음을 읽어주지 못해서 트라우마가 남을까 봐 노심초사 합니다.

구김 없이 자라고 높은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아이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며 키웁니다.

어느 때는 자식인지 상전인지 구분이 모호합니다.

이게 맞나! 하는 의문도 문득문득 올라옵니다.  

부모도 사람인데, 서로 동등한데(저는 오히려 부모는 어른으로서 아이보다 좀 더 큰 주도권을 갖아야 한다고 여깁니다만) 부모는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아이를 위해서만 존재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높으신 고객님을 모시는 느낌이랄까요?



우리는 모두 착한부모 콤플렉스에 빠져있습니다.

심리학자 융은 표면적인 행동에 영향을 주는 무의식적인 지배를 콤플렉스라고 했습니다.

요즘 부모들은 미디어에서 말해주는 정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자아상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모두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는 치료하고, 상담하면서 얻은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저도 그분들의 말씀에 늘 귀 기울이고, 참고하며, 도움을 받아 내 아이를 기릅니다.

또한 학교에서 가르칠 때 기억하고 적용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으로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현실적인 조건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허용하는 착한부모가 과연 옳은가요?

아이의 선택을 들어주기 위해 물불 안가리고 노력하는 착한부모가 과연 최선일까요?

절대 부모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아이의 말에만 귀 기울이는 착한부모가 과연 꼭 필요한 걸까요?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모가 아니라 세상에 보이기 위한 착한부모로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잘못된 건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에 뜻대로 안 되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부모의 감정이 있고, 그걸 아이에게 내 보여야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 관계는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부모와 또는 형제자매와 사이에서 감정이 충돌하고 갈등이 발생하는 해결해 보는 순간도 경험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이가 자라는 과정입니다.

착한부모가 되겠다는 그릇된 생각이 어쩌면 내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아이가 경험해야 할 당연한 것들을 착한부모가 모두 막아버려서 아이들은 학교라는 사회에서 처음 겪는 일이 많아집니다.

갈등을 만났을 때 대처하지 못하고 쉽게 커져버립니다.



저는 나쁜부모입니다.

평소 충분하고 깊은 사랑을 주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할 때는 화도 내고, 눈빛광선도 쏩니다.

부모는 어른이고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고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니라고 생각할 때는 단호합니다.

요즘 기준에 따르면 저는 나쁜 부모가 맞습니다.

그런데 이래서 저희 아이들이 불행할까요?



한달여 전, 초등 6학년 아이가 대학원 박사과정 논문에 필요한 설문을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숙제에 관여하는 정도와 아이의 행복도가 어떻게 관련있는지 살펴보는 내용이었습니다.

많은 설문 중 아이가 자신의 행복에 아래와 같이 대답했더군요.


보통 나는 행복하다 - 매우 그렇다

내 친구들에 비해 매우 행복하다 - 매우 그렇다

나는 힘들 일이 있어도 이겨내고 행복하게 지낸다. - 매우 그렇다.

나는 힘들고 슬픈 일이 없는데도 행복하지 않다. - 전혀 그렇지 않다.



대체로 지랄맞고 감정적이며 종종 강압적 태도를 보이는 부모임에도 아이는 행복합니다.

실제로 참으로 해맑은 아이입니다.

나쁜부모여도 충분한 사랑과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면 아이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쭉 나쁜부모 모드를 유지합니다.



♬ 착한 아이 로 시작했으니

♬ bad girls 로 수미쌍관 맺음을 합니다.



♬ 영화 속 천사 같은 여주인공 그 옆에 더 끌리는 나쁜 여자

bad bad bad bad girls

욕심이 남보다 좀 많은 여자(부모)

지는 게 죽는 것보다 싫은 여자(부모)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 있는

bad bad bad bad girls

독설을 날려도 빛이 나는 여자(부모)

알면서 모른척하지 않는 여자(부모)

어딘지 모르게 자꾸만 끌리는

bad bad bad bad girls ♬

(이효리, bad girls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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