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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Jun 03. 2024

아이의 자존감을 깎아먹는 사람,  바로 당신일지도

아이에게 예의를 지켜주세요


아침 조회 시간

출석을 확인합니다.

고등학교는 아이들에게 전달해야 할 중요한 일정이 많아서 아침 시간이 늘 분주합니다.

전달사항을 속사포 랩으로 시전하고 교실을 다시 한번 찬찬히 봅니다.

아이들 면면을 살핍니다.

등교하면서부터 심상치 않았던 수아(가명)가 눈에 띄네요.

가방을 집어던지듯 하더니 곧바로 책상에 엎드려버렸던 아이.  
필시 무슨 일이 있나 봅니다.

아이 책상 옆에 쪼그리고 앉아 묻습니다.


'아가~ 수아야, 어디 아파? '

아이들에게 다가갈 때는 아가라고 부르고 혼내야 할 때는 '그지야'라고 합니다.  


'네 조금이요. '

목소리에 눈물 자국이 묻어 있었습니다.

보통 정말 아파서 엎드려 있었더라도 교사가 부르면 고개를 들어 눈은 마주치며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수아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 같았습니다.


'더 아프면 교무실로 와. 쌤 1, 2교시 없어. '

말하고 싶으면 와도 된다는 말을 이리 해도 아이들은 알아듣습니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 10분마저 거의 끝나갈 무렵..

아이들이 한산해진 틈을 타 수아가 교무실로 왔습니다.

다음 시간 담당 선생님이 같은 교무실에 계셔서 수아랑 조금 이야기하다가 들여보내도 되겠냐고 허락을 받고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엄마 진짜 미워요. '

아이가 가장 먼저 뱉은 말은 원망과 분노가 범벅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침밥을 먹으려는 순간, 엄마의 한숨 소리를 들었답니다.  

말없이 한숨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질타를 느꼈을 겁니다.

전날 모의고사 성적표가 배부된 후였거든요.

한숨에 눌려 한술 뜨려던 수저를 그대로 내려놓고 조용히 일어나려던 찰나.

참고 계시던 엄마가 기어이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쏟아내신 모양입니다.

'기껏 차려놨더니 그것도 안 먹어. 네가 하는 게 뭐가 있다고 그것도 제대로 못해. 밥 먹고 공부만 하면서 성적이 그 모양이야. 말이 나왔으니 어디 한번 해보자.... '

아이는 여기까지만 말했고 그럼에도 그 뒤는 이미 오디오가 지원되는 상황입니다.

수아는 다시 꺼이꺼이 울다가 답답하던 속이 해결된 듯 후련해진 표정으로 교실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가족에게서 가장 큰 상처를 받곤 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부모님 그늘 아래에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안에서 학대 수준의 언어폭력을 당하기도 합니다.

때려야만 아픈 게 아닙니다.

말이 더 아플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말에는 아이에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생략된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자라서도 행복한 삶을 살기를 희망하게 합니다.

여기에 '공부를 잘하면 성공하는 삶(그게 뭔지 모르면서)을 살게 되고, 이후 행복할 거다. '라는 잘못된 명제가 끼어듭니다.

이정표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니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잘못된 길잡이를 따라 욕심을 키우고 시기와 질투를 자라게 합니다.

욕심은 분에 넘치는 것을 탐하는 마음입니다.

어쩌면 내 아이를 넘어서 내 탐욕을 채우려는 마음이 자라는 과정일 겁니다.

욕심이 커지면서 마음의 눈을 가리고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행복을 바라던 소망이 덮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탐심만이 남아 사나워집니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되는 예의 없는 말들을 쏟아내게 됩니다.

( ᴗ_ᴗ̩̩ )




나 자신보다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가 바로 부모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성적 하나만 보고 아이를 비난합니다.


'그것도 못해. '

'이게 왜 이해가 안 돼.'

'너한테 쓴 돈이 얼만데 이따구로 하는 거니. '

'공부만 하라는 건데 그게 뭐가 그리 어려워서 이모야이야, '

'너 나중에 뭐가 되려고 이러니, 아주 답답해 죽겠다. '


아이들이 가정에서 들었다는 말들을 제법 순화한 겁니다.

더 심한 말들을 듣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들은 말로 인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합니다.


'그것도 못해. ' → 못난 아이, 가치 없는 아이

'이게 왜 이해가 안 돼.'  → 능력이 부족한 아이, 그것밖에 안 되는 아이

'너한테 쓴 돈이 얼만데 이따구로 하는 거니. ' → 해도 안 되는 아이, 쓸모없는 아이  

'공부만 하라는 건데 그게 뭐가 그리 어려워서 이모양이야, ' → 공부를 잘 못하니깐 필요 없는 아이

'너 나중에 뭐가 되려고 이러니, 아주 답답해 죽겠다. ' → 부모를 속상하게 만드는 나쁜 아이


아이와 대화에서 예의를 지켜주세요.

아이의 자존감을 부모가 직접 나락으로 빠트리고 있습니다.

내 아이에게 상식선의 예의를 갖춰주세요.

우리가 바라는 건 사실 아이의 행복입니다.

본질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내가 한 말이 내 나이의 자존감을 무너트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나 스스로 내 자식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셔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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