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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Mar 13. 2023

제 고객은 유명 연예인입니다

콜센터 11년 차 직장생활


나는 콜센터에 11년째 근무하고 있다. 지금은 특수 부서에 근무 중이라 상담은 하지 않지만, 입사 후 3년 정도 VIP 고객 상담 전화를 받았었다. 꼼꼼한 성격으로 신입인데도 칭찬 접수가 많았었다. 덕분에 친절하고 업무 지식이 뛰어난 선배님들과 자부심을 느끼고 일할 수 있었다.







우리 VIP 부서의 고객님들은 회장님 지인분들부터 대기업 비서실,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나오시는 분들 그리고 유명 연예인들이었다. 고객님 한분 한분 다 귀하신 분들이지만 가끔 자신이 덕질하는 연예인의 전화를 받게 되면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 우스갯소리로 선배님들끼리 가수 A한테 전화 오면



 ''전문상담사 연결해 준다고 하면서 나한테 연결해.''



라고 했었다. 실제로 좋아하는 연예인과 연결되기까지 극히 드물지만 웃으면서 일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한다. 나는 그때까지 만난 사람들의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가수 B의 전화를 받고 내가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VIP 부서 특성상 안내해야 할 내용이 정말 많았다. 보통 10분에서 15분은 나 혼자 떠들어야 했다. 신입에다가 경력도 없고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센스까지 없던 터라 유명한 분의 전화를 받으면 엄청나게 긴장했었다.







어느 날 연예인 B와 연결되었다. 평소 TV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은 무서웠고 본인만 생각하며 행동하는 모습에서 비호감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말을 더듬으면 소리라도 지를 거 같아 더 긴장되었다. 역시나 말도 더듬고 오안내에다가 정정 안내도 하고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는 웃으면서 나를 격려해 주셨고 내가 안내한 내용들을 집중해서 들어주시고 이해해 주셨다. 그 뒤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고 지금은 영상에서 보는 그의 차가운 모습마저도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하는 고객들이 이렇게 다 친절하면 얼마나 좋을까? 솔직히 이런 고객님들은 극히 일부분이다. 콜센터에 전화하는 이유는 본인이 혼자 하다가 잘 안되니까 전화하는 것이다. 보통은 1차 불만은 가진 상태에서 전화하기 때문에 고운 말이 나오기 힘들다.







어느 날 이번에는 연예인 C와 연결되었다. TV 속 그의 모습은 정말 배려심 깊고 착한 이미지였기 때문에 저절로 미소를 지으면서 상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본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는 내 말에 집중하지 않았고 대충 전화를 끊었다. 나는 바쁜 일이 있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하고는 다음 고객과 통화를 했다.






그렇게 C를 잊고 지낼 무렵 C가 나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웃으면서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가 처음 통화 당시 안내했던 내용을 안내받지 않았다고 우기며 보상을 요구했다. TV에서 봤던 그의 모습이 맞나 싶을 정도로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은 불만 고객과 통화가 길어지면 상담사 보호 차원에서 준비된 여러 프로세스가 있지만 내가 전화받던 그 시절에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고객이 전화를 끊지 않는다면 계속 불만 제기하는 걸 듣고 있어야 했다. 통화는 하루로 끝나지 않았고 C가 원하는 대로 해결될 때까지 그의 불만을 들어야 했다.








이런 고객들과의 전화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전화받는 것이 무서워졌다. 결국 상담은 할 수 없게 되었고 통화량이 적은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몇 년 전 TV에서 연예인 C의 모습을 보았다. 아직도 그는 착한 이미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니 목덜미가 뻐근해지면서 화가 났다. 그의 행동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 나는 더 이상 전화를 못 받고 부서까지 이동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얼굴을 보니 머릿속이 까매졌다. 솔직히 불만 고객은 그 하나뿐이 아니었는데 어느새 나는 화가 나는 원인이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거기다 20대에 암 진단을 받고 무너져 내렸다. 매년 건강검진에서 우울증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이렇게 살다가는 다 포기할 것만 같아서 책을 읽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내가 느끼는 감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TV에서 연예인 C를 보았다. 나와 전화했던 C의 모습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에게 소리 질렀던 그는 웃으면서 잘살고 있는데 나는 그 아픔 속에 나를 가두고 계속 괴롭히는 중이었다. 그의 행동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기도 했다. 호통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나면 절대 행동하기 전에, 말하기 전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를 보면 떠오르는 그때 일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잊지 못할 만큼 많이 힘들었느냐고 하고 나를 위로해 준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봐도 화가 나지 않는다. 이미 상처받은 일에 자책하지 말고 나의 기분을 인정하고 다독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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