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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Aug 01. 2023

전화 공포증(콜포비아)이 나의 삶에 미치는 영향

콜센터 11년 차 직장생활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전화 공포증이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콜센터에 입사했고 지금 10여 년째 근무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다녔던 무역회사에서 호되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그 후로 어느 직장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나의 업무 능력을 칭찬받았던 곳이 지금 내가 출근하고 있는 콜센터였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오랫동안 근무하고 싶다. 직장인들이 들으면 놀랄 말이지만 회사에 애착이 생겼고 지금 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전화 공포증 따위가 내 앞길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전화 공포증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나는 불특정 다수가 전화를 걸어 받는 인콜 업무를 하였고 오래 근무하면 괜찮아질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화받기 전 가슴 떨림은 진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고 내 손은 매일 떨렸다. 다행히 회사의 배려로 지금은 전화받는 업무를 하지 않지만, 여전히 전화를 받는 건 두렵다.







예전에 유명 연예인이 엄마하고도 통화가 불편할 정도의 전화 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고백했다. 회사 언니들은 수많은 전화를 받았기 때문에 전화 공포증이 있다는 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전화 공포증이 있는 나에게는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와 남편을 빼고는 모든 사람과 전화 통화하는 것이 너무나 불편하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부터 가깝게 지낸 친구는 물론 아빠 하고도 통화하지 않는다. 결혼하기 전에는 고등학생 때부터 연애하던 남편과 통화를 했고 결혼하고 나서는 매일 내 걱정만 하는 엄마와 통화를 하고 있다.









지금은 배달주문 앱의 발달로 전화 통화 없이 주문이 가능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화로 짜장면을 주문하던 시절이었다. 역시나 나는 주문 전화도 못 해서 회사 단체 회식 예약도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언니들이 대신해주신다.

그럼 난 언제부터 전화 공포증이 생겼을까?
초등학생 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나는 다른 친구 하고는 잘 지냈기 때문에 왜 따돌림을 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매일 같이 우리 집에 전화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끊었다.

하교 후 엄마가 집에 없다는 것을 알고 노린 악질적인 장난이었다. 처음엔 그들이 전화하는 것도 모르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평소에도 부정적인 생각이 강했던 나는 전화벨 소리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전화 공포증으로 전화를 멀리했던 시기가.







살면서 전화 공포증의 불편함을 크게 못 느꼈었는데 콜센터에 입사하고 나서 힘들었다. 전화 공포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른 부서로 이동해야 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동기들은 물론 내가 교육했던 신입사원들은 다 관리자가 되었는데 나는 10여 년이 지나도록 사원이다. 한동안 내 자신을 미워하느라 마음과 몸이 지쳐있었다. 회사에서 실패한 사람 같았다.

다행히 이동한 부서에서는 혼자서 하는 업무라 나의 성격과 잘 맞았다.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지 않으니, 마음의 여유도 조금씩 생겼다. 거미줄 처져 있던 블로그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책 읽기였고 도서 전문 블로거가 되기 위해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유명하다는 베스트셀러 자기 계발 책들은 거의 다 읽어보았다. 200권쯤 읽었을 때 깨달았다. 나한테 전화 공포증이 있는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 전화 공포증이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회사에서 당당히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나의 불안한 마음을 인정하니 가슴속 막혀 있던 응어리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마음 한쪽에는 남들이 나의 전화 공포증을 알고 무시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화 공포증이 있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니는데 그 누구도 놀라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콜센터에 다니는 나에게 전화 공포증은 그 어떤 걸림돌도 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인정하니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과거의 내 모습이 미안해졌다.

나의 전화 공포증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고 평생 함께할 수도 있다. 그 어떤 모습이든 나의 삶에는 더 이상 크게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모습이든 나는 내 자신을 인정하고 보듬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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