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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Aug 10. 2022

어느 콜센터 직원의 하루

콜센터 10년 차의 직장 생활

일단 눈 뜨자마자 출근하기 싫다. 그래도 나를 침대에서 일으킨 것은 월급 때문인지 맡은 일은 중요하게 생각하는 책임감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 마음은 항상 그 중간 어디 지점에서 이리저리 흔들린다.




회사까지는 왕복 4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평소보다 일찍 출발하지 않으면 아침 8시 교육에 늦는다. 지각해서 시선 집중되는 건 싫다. 집에서 전철역까지 걸어야 한다. 버스 한 정거장 거리지만 정거장까지 또 걸어야 한다. 그냥 걸어간다. 등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최근에 땀이 잘 마르는 기능성 티셔츠를 잔뜩 샀다. 출근 준비할 때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스티브 잡스처럼 옷 고르는 시간도 아깝다.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자는 게 좋다.




지하철 두 번을 갈아타고 3호선 종점을 향해 간다. 일산 사는 사람들은 서울로 출근하고 서울 사는 나는 반대로 일산으로 출근한다. 지하철이 텅텅 비어있다. 푹 자고 일어나도 도착하려면 한참을 가야 한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교육을 듣는다. 또 새로운 상품이 나왔다. 지난주에 출시된 상품은 또 오류가 있단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업무지식 때문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8시 55분이다. 콜은 9시부터 들어오지만 전산은 미리 전화받을 수 있는 대기 상태로 두어야 한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린다. 내 차례는 언제가 될지 긴장된다. 제발 오늘은 불만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오전 콜들은 다 무난했다. 큰 불만은 없어서 잘 넘겼다. 점심시간까지 5분 남았다. 간단한 문의면 바로 끊을 텐데 한 콜 받기가 애매하다. 그래도 대기 시간이 길면 안 되니 일단 받았다. 역시 마지막 콜은 느낌이 안 좋다. 고객의 문의를 회사 업무 사이트에 아무리 조회해 봐도 답을 찾을 수가 없다. 통화는 길어지고 이미 점심시간은 시작되었다. 옆자리 회사 동생이 지하 식당에서 내 거까지 미리 주문해둔다고 하고 내려갔다. 결국 고객의 문의에는 바로 답을 찾을 수 없어 한 시간 뒤에 다시 연락드리기로 했다.




벌써 점심시간 20분이 지났다. 40분밖에 남지 않았다. 지하 식당에 내려가니 평소같이 밥을 먹는 팀원들은 이미 식사를 다 했다. 나는 식어서 딱딱해진 돌솥밥을 씹어 삼킨다. 밥을 먹는 내내 마지막 콜이 생각난다. 1시간 내로 고객이 물어본 내용의 답을 찾지 못할까 봐 초조하다. 하루 종일 말을 하기 때문에 점심은 먹기 싫어도 먹어둬야 한다. 후다닥 남은 밥을 입으로 밀어 넣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간다.




결국 고객과 약속한 시간은 다가오고 답을 찾지 못해 다른 센터로 업무 요청을 해놓았다. 고객님께 전화해서 하루만 시간 양해를 구했다. 고객 입장에서는 간단한 문제인 거 같은데 바로 해결하지 못해 결국 불만으로 번졌다. 이 전화를 시작으로 계속 불만 전화만 들어왔다. 한번 불만이 시작되면 줄줄이 들어오는 날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나는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바깥공기를 맡고 싶었다. 계속되는 불만 콜에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같은 팀에 자리를 비운 사람이 있어서 다시 전화를 받았다. 콜센터는 콜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이석을 관리하는 편이다.




6시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또 애매하게 콜이 끝났다. 마지막 3분을 남기고 다시 한 콜을 받았다. 목소리부터 심상치 않은 고객은 욕을 두 번 하더니 더 이상 안 한다. 욕 세 번을 하면 상담사가 강제로 전화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고객이다. 예전에는 끊임없이 고객이 욕만 해도 다 듣고 있었어야 했다. 정전이 되지 않는 한 상담사가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이미 퇴근시간은 지났고 팀원들은 팀장님 자리에 모여서 석회를 한다. 나는 그 석회가 다 끝날 때 전화를 끊었다.




오늘 하루 상담했던 고객들 전산처리가 잘 되었는지 검수한다. 화장실 가서 텀블러를 씻고 가방을 든다. 자! 다시 한번 지하철 여행이다. 퇴근길에도 졸면서 간다. 내일 전화해야 할 고객이 몽롱한 정신 사이로 떠올랐다. 늦은 저녁 집에 도착해서 씻고 눕는다. 내일은 진상 고객 만나지 않길 기도하며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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