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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Jan 02. 2024

빨래의 습격

나도 돌아버릴 것 같다.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옛날에는 천기저귀도 빨아서 사용했다며 보릿고개 시절을 내게 말하곤 했다. 엄마는  내가 하는 고생은 고생 축에도 안 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였지만  호랑이가 방대 물던 시절 이후 강산이 몇 번이나 변했는지 놀랍게도 지금은 호랑이도 전자담배를 무는 시대다. 그러니 그 말이 내 귀에 들어 올리가 없다. 그냥 힘든 건 힘든 거다.


내가 빨래를 하는 횟수는 거진 하루 한번이다.

 식구 빨래들은 돌아 서면 마법 같이 쌓여 있다.

덩치가 좋은 남편의 옷은 부피까지 커서 세탁기 안을 꽉 채운다.

건조기가 없던 시절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너는 일 역시 가사노동을 가중시키는데 충분한 몫을 했었다.

널다 보면 빨래 건조대가 한 개로는 모자라고 거실은 넣어 놓은 빨래들과 빨래 건조대들 한결 더 지저분해졌다.


건조기는 인류가 발명해 낸 가전제품 중 세탁기와 더불어 어느 누구 하나 별로라는 반응이 나오지 않는 호불호 없이 호( 好)만 있는  가전이다.

건조기 사용 전 후를 건조기 전시대와 후시대로 나눠 본다면


건조기 전 시대의 빨래 노동 순서는  

세탁 -널기-건조-개기 이렇게 4단계였다.

건조기 후 시대 빨래 노동 순서는 세탁-건조-개기 이렇게 중간 과정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빨래를 돌리는 횟수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아직도 여전히 하루 한번 우리 집 세탁기와 건조기는 작동을 하고 그들의 작동은 내 손이 또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탁기 속에 빨랫감이 쌓인다.

빨래를 돌린다

종소리가 나면 건조기로 옮긴다.

잠이 든다. 아침이다.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바구니에 옮긴다.

빨래를 갠다. 하지만 다는 못 갠다.

출근을 한다.

집에 오면 다시 빨래를 한다.

아침에 개다 남은 빨래를 갠다.

각방으로 옮긴다.

세탁기 속 빨래가 다 됐다고 종소리로 알려준다.

다시 건조기로 옮기고 잠든다.


이렇게 빨래가 끝도 없이 나온다.

 과정이 무한 반복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도 없는 영원이 지속된다.



난 아침에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내 수업 준비에 바쁘다. 출근 전 저녁식사 준비도 살짝 해놔야 퇴근 후 저녁 식사 시간이 뒤로 밀리지 않는다.

출근 직전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와중에 건조기 속 다 마른빨래를 바구니 속에 옮겨 놓으며 개기 시작한다. 

일부는 개고 일부는 방치하고 결국 일을 하러 나간다.


퇴근 후 아이들이 하교한 후 벗어 세탁기에 넣어 둔 빨랫감과  남편이 전 날 저녁에 집어넣어놓은 빨랫감들이 작은 언덕을 이룬다. 거기에 내  옷가지 들까지 더한다면 그 빨래 언덕은 빨래 산이 될 것 같다. 내 옷은 며칠 더 입자


아침에 개다 말고 놔둔 마른빨래도 못 개서 오며 가며 개 넣는 판에 건조기에 빨래들이 돌아가고 있다. 학원이나 운동을 다녀온 가족들이 내놓은 수건과 옷으로 빨랫감이 또 쌓인다

세탁조에서 돌아가는 빨래 감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같이 돌아버리고 싶다.


빨래를 개어 주고 정리해주는 기계가 나온다면

초히트를 칠 것을 장담한다. 누군가가 좀 개발해 주길...


하지만 현재 나는 밀물처럼 밀려드빨래에서 벗어나고만 싶다. 뒤집어 벗어 놓은 양말들을 그 상태 그대로 개어 넣는 나름의 초강수를 두지만 의미없다.

빨래고 뭐고 간에 집구석을 뛰쳐나가고 싶어 진다.


4분 후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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