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타치오를 왜 먹어?"
베스킨라빈스를 갈 때마다 꼭 피스타치오를 고르는 친구가 있었다. 이름도 생소하고, 색깔도 푸르스름해 나한텐 정이 가진 않는 맛이었다.
이런 내가 피스타치오에 퐁당 빠져들게 된건 이번 여행의 공이 크다. 이탈리아를 다녀온 친구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 "피스타치오 젤라또 진짜 맛있어. 꼭 먹어봐."
여행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은게 인지상정. 피스타치오는 내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꼭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었다.
이탈리아에서 피스타치오는 흔한 작물이다. 시칠리아의 브론테 지방에서 짙은 녹색의 피스타치오가 많이 재배되기 때문. 튀르키예/미국산 대비해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특히 'Pistacchio verde di bronte DOP'는 브론테 지방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 후 포장까지 끝마친, 최상급의 피스타치오다. 신선한 원재료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시도해보길 추천.
그렇기에 피스타치오를 활용한 메뉴가 다채롭다. 맥플러리는 기본 맛으로 있고, 오죽하면 파스타도 있을 정도. 그리고 가공 방식에 따라 미묘한 맛의 차이가 느껴지는게 신기했다.
*이탈리아어로 피스타치오는 Pistacchio. 영어와 달리 c가 하나 더 붙으며, '피스타끼오'로 발음한다.
˙Pistacchio Crudo/Grezzo : 전혀 로스팅되지 않은 생 피스타치오로, 가열 과정을 거치지 않아 천연 향과 풋내가 그대로 느껴진다.
˙Pistacchio Salato : 소금에 절인 피스타치오로, 풍미가 짙고 짭짤하다.
˙Pistacchio Integrale : 껍질을 포함한 피스타치오로, 일반적인 것보다 더 진하고 약간의 쓴 맛을 느낄 수 있다. 껍질이 씹혀 약간의 쌉싸롬한 맛은 있지만 그마저도 피스타치오의 깊은 맛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내가 손사래쳤던건 진짜 피스타치오가 아닌 인공 첨가물이었다. 신선한 원재료가 퐁당 들어간 걸 먹으니 맛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이래서 피스타치오를 좋아하는구나.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어.'
나는 한 번 꽂히면 질릴 때까지 파고드는 성향이다. 최고의 피스타치오 젤라또를 찾기 위해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피스타치오 맛만 약 30번 넘게 먹었다.
그중 가장 마음을 움직인 지역별 피스타치오 맛집을 추려봤다.
1. 로마: Old Bridge
- Viale dei Bastioni di Michelangelo, 5, 00192 Roma RM
피스타치오의 고소한 풍미가 느껴진다. 쫀쫀하게 부드러우며, 적당한 꾸덕함을 갖추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텍스쳐.
2. 피렌체: Sbrino
- Via dei Serragli, 32r, 50124 Firenze FI
끝맛이 살짝 텁텁하긴 했지만, 피스타치오 알갱이가 잘근잘근 씹히며 진하고 고소했다.
3. 토리노: Gelati D'antan
- Via Nicola Fabrizi, 37, C, 10143 Torino TO
피스타치오를 껍질째 갈아 향이 풍부하다. 코가 뻥 뚫리듯 피스타치오의 고소하고 담백한 향이 입안을 자극한다. 꾸덕하기보단 사르르 부드럽게 녹는 텍스쳐지만, 그마저도 납득갈 정도로 맛있었다.
4. 밀라노: Antica Gelateria Saltori
- Piazza Luigi di Savoia, 20125 Milano MI
안에 피스타치오 알갱이가 엄청 오독오독 씹혀 맛을 극대화시킨다. 많고 많은 피스타치오 맛집 중에 여기가 가장 맛있었다. 꾸덕하고 무거운 텍스쳔데, 그렇다고 떡처럼 꽝꽝 뭉쳐있지도 않고 부드럽다. 피스타치오가 이븐하게 펼쳐지는 맛.
*볼로냐와 베네치아는 아쉽게도 기억에 남는 가게가 없다. (피스타치오 한정)
"피스타치오는 그라니따로 먹어야 맛있다"
피스타치오는 견과류(Dried Fruit)다. 소르베나 그라니따는 유제품 없이 물, 당류, 과일로 맛을 내는 콜드 디저트다. 견과류도 식물학적으론 과일의 일종이기에, 피스타치오로 소르베나 그라니따를 만들 수 있다.
특히 그라니따의 본고장, 시칠리아에선 피스타치오로 만든 그라니따를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피스타치오 그라니따 순위를 정한 사이트도 있을 정도다.
피스타치오 덕후로서 그라니따는 못 참지. 시칠리아에 와서는 최고의 피스타치오 그라니따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그중 가장 맛있던 곳 3가지를 추려보자면,
1. Gelateria La Kala
- Piazza Fonderia, 8, 90133 Palermo PA
시원하고 깔끔하다. 식사 후 입가심으로 가볍게 먹기 좋았다. 크림이랑 그라니따랑 같이 비벼 먹으면, 그야말로 극강의 달콤함.
2. Bar Trento
- Piazza Trento, 7, 95128 Catania CT
색깔부터 강력하다. 피스타치오가 엄청 진하다. 얼음알갱이 하나 안 씹히고 부드럽고 꾸덕하다. 이거지. 이게 진짜지. 담백하고 꼬소해서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다.
3. Bar Alecci
- Via Antonio Gramsci, 62, 95030 Gravina di Catania CT
가는 길이 험난하긴 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던 맛. 담백한 피스타치오의 풍미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븐하게 코와 입을 자극시킨다. 부드럽다 못해 사르르 녹아 없어져버린다. 피스타치오가 살아있었으면 고맙다고 여러번 절을 올릴 것 같은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