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으로 지워진 아픔들

by 빼어난 별

오랜만에 이토록 아파본 느낌이다.


예전엔 가족 모두가 독감에 걸렸을 때도, 나는 괜찮았다. 같은 공간에서 간호하며 함께 자도 독감에 걸리지 않았던 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홀로 아프다. 전염성 있는 감기도 아닌데, 나 혼자만 쓰러져 누워 있는 이 상황이 낯설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나를 위한 시간이 주어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동안은 최소한의 일만 하고, 거의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하지만 엄마로서의 삶은 '온전히 쉰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다시금 절감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식도 챙겨야 하고, 저녁도 해먹여야 했다. 냉동식품이나 간단한 음식으로 대충 때우긴 했지만, 몸이 아파도 누군가는 이 집을 돌봐야 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늘 '나'였다.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 아빠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빠가 아프면 엄마가 대신 챙겨줄 수 있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면? 스스로 챙겨야 한다. 나는 내 몸을 버텨내기 위해 영양제와 약을 챙겨 먹고, 틈틈이 눈을 붙여보지만 회복은 쉽지 않았다. 문득, 우리 엄마의 삶도 이랬을까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가족을 위해 온전히 쉬지 못한 시간, 혼자 아픔을 견디며 살아낸 날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나도 이렇게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겠지. 몸이 힘드니 마음도 지쳐간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로움과 무력감이 몰려온다.


이럴 때, 유독 엄마가 그리워진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한바탕 응석을 부리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 짧은 대화 안에 담긴 엄마의 숨소리, 말투, "그래도 밥은 좀 먹어야지" 하는 한마디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진짜 원한 건 약도, 휴식도 아닌, 누군가의 다정한 보살핌이었다는 걸.


몸이 아프니 마음도 따라 아프다. 그동안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쏟아져 나온다. 외로움, 억울함, 서러움.

남편이 일부러 늦게 온 것도 아니고, 회식도 어쩔 수 없었던 건 알지만, 그저 '혼자'라는 사실이 원망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아, 내가 정말 아프긴 했구나.


몸이 아프면 감정도 약해진다. 마음속 여유가 사라지고, 나 자신이 애처로워지면서 어느새 삶 전체가 회색빛으로 물들어간다. 결국 병원에 가서 영양주사와 약을 처방받았다. 의약의 힘을 빌려서 그런지 다음 날엔 조금 살 것 같았다. 기운이 돌아오자,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몸이 아프다는 건 단지 건강이 나빠졌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 삶 어딘가에 무리가 오고 있다는 조용한 경고다.

몸이 먼저 무너지고, 마음이 따라 무너진다. 그러니 건강을 챙긴다는 건, 체력만이 아니라 내 마음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이번에야 제대로 알았다. 아파도 쉬지 못했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늘 나 자신을 가장 마지막에 두고 살아왔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무너진다. 그 단순한 진실을, 나는 오랫동안 외면한 채 버텨왔다.


이제는 작게라도 멈춰보려 한다. 작은 통증에도 귀 기울이고, 피곤함에도 이유를 묻는 연습. 누군가를 돌보듯, 이제는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따뜻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싶다.


내가 아픈 건, 내 몸이 나를 부르는 신호였다. 그리고 잊지 않기로 한다. '엄마'라는 이름 안에도,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이 있다는 것을.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