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살아야 하는 나
결혼 초기에 첫 아이가 유산되고 하혈이 멈추지 않아 퇴근 후 당직 의사를 찾아갔을 때 자궁경부암이 의심된다며 1,2,3,4기 사진을 보여주셨던 적이 있다.
정말 집에 오는 길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직 아이도 낳지 않았고, 찾아온 아이마저 떠나버렸는데 내가 암일 수도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의 생활을 돌아보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떠올려보았다.
다행히 그때는 결과가 정상으로 나왔지만 이번에 암 진단을 받으면서 10여 년 만에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왜 하필 나일까'라는 자책, '내가 뭘 잘못했길래' 하는 억울함....
그런 생각을 끝도 없이 하다가 어느 순간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처럼 열심히 살았고, 식습관도, 생활습관도 보통은 되는 것 같은데...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니었다. 그냥 운이 나쁜 것이었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약한 부분이 있었던 거구나...
모두가 강한 세상은 없으니까, 남들은 다른 약한 부분이 있겠지... 나는 갑상선이 약해서 먼저 나타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걱정하고 스스로 자책하는 나의 성격이 어쩌면 병을 키우는데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전긍긍하느라 내 몸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을 바꾸고 나서 마음도 바꾸려 노력했다.
화가 나고 나만 노력하는 것 같아 억울할 때가 있다. 예전엔 그런 상황이 화가 났다면 이제는 내가 살기 위해서, 나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무리 상대를 위해 맞춰준다 해도 그것 역시 내 마음 편하기 위해서 그런 거라 생각한다.
아프고 나면 남을 위한 일도, 나를 위한 일도 할 수가 없다. 건강할 때, 지금 내가 살 수 있는 하루를 즐기면서 오늘 찾을 수 있는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자책과 후회, 반성으로 과거에 묶여 살았다면 이제는 현재를 살려고 노력한다.
흔히들 가벼운 암이라 말해도, 당사자인 나로서는 '내가 당장 내일 없어진다면?'이라는 질문을 하게 했던 문제다. 수술 초기보다 느슨해지긴 했어도 예전처럼 걱정만 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오늘, 내일을 위해... 가령 오늘 조금 바보같이 살았더라도 그것을 다독이려고 한다. 또 감사한 줄 모르고 살았던 주변을 둘러보려고 한다.
완치 판정까지는 앞으로 3년 반이나 더 남았다. 이제는 그냥 함께 가는 동반자라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을까. 완치 판정을 받는다고 해서 내가 수술 전과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다른 곳이 아픈 것은 아닐까 걱정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좀 더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살아야지 싶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나는 참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었다.
병으로 인해 잃은 것들도 많지만 여전히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님의 글처럼 예전엔 미처 몰랐던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남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을 이제야 알았나 싶으면서도 지금이라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암이 내게 준 것은 바로 이것, 지금을 살아야 하는 나를 일깨워 준 것이다.
#에세이스트#갑상선암#감상선#암진단#나를찾아가는길